이회영의 난초화 그레이트 피플 46
홍민정 지음, 이지후 그림 / 밝은미래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으뜸책  그레이트 피플

이회영의 난초화

 

 

글 홍민정 그림 이지후  밝은미래

 

글 홍민정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기자,방송작가, 학습지편집자로 일했습니다.

2012년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뽑혀 동화작가가 되었고 제 24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창작부문 대상, MBC창작동화대상, 푸른문학상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쓴 책으로 <초딩의 품격>,<아무 말 대잔치>,<엄마 출입금지>,<우리는 바이킹을 탄다>,<문신의 나라 무신의 나라>,<편지로 우애를 나눈 형제 정약전과 정약용>,<김만덕의 가마솥> 등이 있습니다.

 

그림 이지후

중앙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했습니다.  현재 회화 작업을 하며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할동하고 있습니다. 그린 책으로는 <세상을 뒤흔든 위인들의 좋은 습과>,<게으름뱅이 탈출학교>,<나를 바꾼 그때 그 한마디>,<에디슨과 발명 천재들>,<일기가 나를 키웠어요>,<정정당당 공룡축구>,<삼각형으로 스피드를 구해줘!> 등이 있으며 그레이트 피플 시리즈에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있지만 이름이 많이 알려진분도 그렇지 않은 분도 계시죠~

이회영이라는 이름도 솔직히 저는 낮선느낌이 ㅎㅎ;;

 

그레이트피플의 새로나온 이야기

오늘은 "이회영의 난초화"를 소개 합니다~~

 

 

차례를 보시면 많이 들어봐서 익숙한 단어들이 보이시죠?

이회영 선생님과 연관이 있으리라고는 솔직하게 이번에 알게되었어요.

 

 

등장인물이 소개 됩니다.

만물상 할아버지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셨어요~~ 은퇴후 황학동에서 만물상을 여셨내요~~

수지와 선우 9홉살 친구들이고 수지는 선우의 단짝 친구이자 황학동 만물상의 단골손님이에요. 선우는 만물상 할아버지의 손자이고 아주 밝고 명랑한 친구에요 ㅎㅎ

황보감 할아버지는 황학동엣 3대째 한의원을 하고 계시고 황학동의 허준이라고 불리시내요

꽃돼지 아주머니 황학동에서 손맛 좋기로 유명한 꽃돼지네 분식집 주인이세요~~

털보삼춘 책에 대해서는 모르는것이 없는 만물박사로 헌책방의 주인이에요.

 

 

황학동 만물시장에는 없는 게 없어요~~~

주방거리,가구거리,중고 가전제품가게,중고악기점 등등 ㅎㅎ

만물시장 깊숙한 곳에 황학동 만물상이라는 가게가 있어요. 없는 것 빼고 다 있어요 라는 문구가 적혀있죠 ㅎㅎ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셨던 할아버지는 선우의 할아버지시고 만물상의 주인이세요.

선우화 지수는 학교가 끝나면 할아버지의 만물상에 들러 오늘은 어떤 새로운 물건이 있는지 확인하는것이 일과지요 ㅎㅎ

 

없는 거 빼고 다 있는 만물상 천천히 둘러보며 구경하면 정말 재미 있는데 ㅎㅎ

의외로 좋은 물건이 있을수도 있으니까요 ㅎㅎ

 

갑자기 황보감 할아버지가 인삼을 도둑질한 도둑에 대해서 이야기 하시면서 달려오세요.

금산에서 6년동안 집안에서 기른 인삼은 무사한지 걱정도 되시면서 이회영의 마음을 알겠다고 하시죠~~

수지와 선우는 이회영이 누구인지 도둑은 또 뭔지 궁금해 하는데..ㅎㅎ

 

 

이회영 선생님은 1867년 서울 저동에서 명문 양반집의 넷째로 태어나셨어요.

어려서부터 유학을 익히고 신학문을 배우기를 즐겨 하셨고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고 생각하셨어요.  당시 우리나라는 일제의 야욕으로 많이 어려운 상황이였어요. 1905년 일제가 강제로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빼앗아가서 이회영은 해외에 이를 알리고자 헤이그특사를 보내는 일을 추진했어요.  그리고 신민회라는 항일 비밀결사 단체를 만들었고 1910년 강제병함으로 온 가족과 집에 있는 노비들과 함께 전 재산을 정리하고 만주로 망명을 하게 되죠. 1932년 66세의 나이로 순국하기 까지 오직 나라의 독립만을 생각하셨던 분이세요.

전 재산을 들여서 만주에 신흥무관학교를 지어서 수많은 독립군을 배출시키시기도 하셨어요.

 

이회영선생님은 1932년 만주로 떠나기 전에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나서 누구나 자기가 바라는 목적이 있네.

그 목적을 달성한다면 그보다 더한 행복이 없을 것이네. 그리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그 자리에서 죽는다 하더라도 이 또한 행복이 아니겠는가? 라고 하셨어요.

 

너무 멋진 말씀을 하시고 숙연해 지내요...

 

 

 

 

이 책은 이회영선생님의 독립운동에 대해서 이야기가 되기도 하지만 당시의 우리나라의 상황에대한 설명도 같이 되어 있고 그리고 어휘에 대한 설명도 뒷쪽에 따로 설명이 되어 있어서 모르는 어휘는 뒷쪽을 찾아가며 읽어 볼수 있어요.

 

이회영 선생님은 오성과한음에 나오는 한음의 10대손이라고 하내요.

조상대대로 높은 벼슬을 지니고 성품도 훌륭하셔서 나라에서도 그리고 사람들에게도 존경의 대상이였다고 하내요.

 

이회영선생님이 젊었을때 명성황후가 일본의 손에 무참히 죽음을 당하셔서 항일 의병을 위한 돈을 마련하고자 개성에 인삼밭을 가꾸기 시작하였는데 수확을 앞두고 개성 경찰서의 일본인이 인삼을 훔쳐가서 힘들게되었지 그런데 그놈이 일본경찰을 부추겨서 허가 없이 인삼을 길렀다며 히회영을 경찰서에 가두게 했는데 이회영은 포기하지 않고 그 일본인을 크게 꾸짖고 나중에는 법정까지 가서 재판을 받았는데 그 재판에서 이겼다고 하내요.

이 소식을 들은 고종은 역시 이항복의 후손답다며 칭찬하고 벼슬까지 내렸다고 해요.

물론 그 벼슬은 이회영선생님이 거절하셨다고 하내요.  그 이유는 나라를 위해 더 큰일을 하기 위함이었다고 해요.

 

이회영 선생님이 살았던 시기는 청과 일본, 러시아가 서로 우리나라를 탐내며 다투었던 시기로 일본은 점점 더 집요하게 우리나라에 욕심을 부렸어요.

일본배 운요호를 강화도에 무단으로 접근시켜서 우리가 먼저 공격하게 유발하고 그 사건으로 책임을 요구하고 결국에는 불평등한 강화도 조약을 맺었어요.

이늘 그래서 근대화된 조약이라고 해서 강제로... 불평등하게 이루어진 조약이라고 해서 늑약이라고 하지요.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읽으면서도 화가나고 막~~~~ 막말이 !!!

 

 

만주로 가족을 모두 데리고 망명을 하면서 생할하다 보니 이회영선생님은 독립운동을 위한 자금 마련이 어려워졌어요. 가지고 있던 자금도 금방 없어지고....

그래서 이회영 선생님은 묵란도를 그려서 그것을 팔아서 독립운동의 자금을 마련하게 되요.

 

묵란도는 먹으로 그린 난초그림을 말해요.  조선의 선비들은 당시 사군자를 즐겨 그렸어요. 매화와 대나무 국화 난초 그림이였지요.

배고프고 힘든 타국에서 독립을 위해 독립자금을 구하기 위해 그렸던 묵란도 어떻게 보이시나요.

선 하나 하나 글귀 하나 하나에 나라의 독립을 위한 당참과 힘이 느껴지는듯 해요..

 

항일 비밀 결사 단체인 신민회의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어요.

1907년 이회영 ,전덕기,안창호,김구,신채호,이동녕 등이 함께 만든 항일 비밀 결사 단체로 빼앗긴 국권을 되찾고 자주적인 독립 국가를 세우는 것이 목표였어요.

가장 중요한 사업을 교육으로 보고 평양에 대성학교, 정주에 오산학교등을 세웠어요.

1910년 안명근은 일제의 초대 총독 데라우치를 암살하려다가 실패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 일이 신민회의 존재를 드러나게 하고 결국 신민회는 일제에 의해 해체가 되고 말아요.

 

 

이회영 선생님은 독립운동가이자 아니키스트였는데 아나키스트는 무정부주의자란 뜻으로 정부가 힘으로 개인의 자유를억압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여 지배하느 사람도 없고 지배당하는 사람도 없는 것을 꿈꾸는 사람을 말해요. 그래서 이회영 선생님은 임시정부를 만드는것을 반대하셨어요.  1924년 중국 베이징에서 조선 무정부주의자연맹을 만들었지만 자금의 부족과 일베의 감시가 심해서 활동을 오래 하지 못했다고 하내요.

 

이회영선생님은 상하이로 가서 남화한인청년연맹을 만들고 일본,중국,타이완 사람들이 참여한 테로 조직 흑색공포단을 만들어요.  이름만들어도 정말 오싹하죠~~

 

일본영사관을 폭파하고 일본 화물선을 파괴시키는등 일본을 공포에 빠뜨렸어요.  그무렵

이봉창은 일본 도쿄에서 황제를 향해 , 윤봉길은 중국 상하이 행사장에서 일본군에게 폭탄을 던졌는데 일본은 그것이 이회영 선생님이 계획한 것으로 생각하고 쫒기 시작해요.

상하이에서 더이상 독립운동을 하기 어려울것 같다는 생각으로 이회영선생님은 만주로 향하는 데 아쉽게도 소식을 전해들은 일본이 미리 나와서 이회영선생님은 체로되고 뤼순 감옥으로 끌려가셔서 모진 고문을 당하고 돌아가시게되요...

그때가 66살.....에고....

참 대단하신 분이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 한 평생 이렇게 다 올인할수 있다니....

지금 이렇게 한국이란 나라의 존재도 모두 흔적조차 없는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으로 내가 있음을 감사해야겠어요.

 

 어려운 단어에 대한 설명이 뒷쪽에 소개가 되어있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