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가능성 - 나에게로 돌아오는 그림 독서 여정
조민진 지음 / 아트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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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마다 저자가 소개하는 한 권의 책과 그림, 그리고 저자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언젠가는 게으르게>에서는 톰 호지킨슨의 [언제나 일요일처럼]과 함께 저자는 17년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퇴사한 이후의 삶을 얘기한다.
그는 '더 끌리는 일을 더 자유롭게 실컷 하고 싶은 욕망' 때문에 회사를 관뒀다. 그리고 이 말을 덧붙인다. '회사 대신 내가 스스로를 완벽하게 구속하겠다는 시도. 자유로워졌지만 자유롭지 않다.' 깊이 공감했다. 

나의 마지막 학기, 취업계를 내고 주 5일 근무를 했던 3개월. 그때 깨달았다. 이렇게 살 순 없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5일 내내 같은 일을 하며 살 순 없다. 그렇게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은 채로 2년 반쯤이 지났고 나는 지금의 내 삶에 꽤 만족한다. 그러나 나 또한 마냥 자유롭지는 않다. 내 마음대로 살기 위해선, 내가 규칙을 새로 만들어야 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만큼,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해야만 하니까. 그럼에도 사람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이라고 두려워할 것 없다. 그런 길을 가는 사람만이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과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다룬 <괜찮아, 다 같이 고독한 거야> 편이 가장 좋았다. 저자는 이 글의 마지막을 '돌아보면 인생은 결국 혼자 한 여행일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끝맺는다. 나는 여기에 내 생각을 조금 덧붙인다.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은 그저 여행지일 뿐이다. 나는 태어난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나와 함께한다. 내 여행의 시작점과 종착지는 모두 나다.'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고, 읽어야 할 책 목록이 늘어났다. 아는 책이 나오면 반가웠고, 모르는 책이 나오면 궁금해졌다. 그렇게 그의 얘기를 듣다가 마지막에는 결국 그를 응원하게 되었다. 자기 안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알고, 마음이 이끄는 곳으로 나아가는 사람의 뒷모습에서는 늘 빛이 난다.



책에서 수집한 문장들,

p. 17
편안한 것이 우아한 것.

p. 49
청아한 소리 자체가 고통의 다른 모습이니까요.

p.148
인생은 받아들이는 만큼 풍요로워진다.

p.154
삶은 결국 깊이를 드러내는 예술이다.

p.224
분명한 건 다시 열정적으로 살기 위해 과감한 결정이 필요했다는 사실이다.

p.231
시간을 '쓴' 날이, 시간을 '누린' 날보다 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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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방 - 나를 기다리는 미술
이은화 지음 / 아트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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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거나 전시를 보는 건 정신적인 여행이자 내적인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집에서 의자에 앉아 등받이에 기댄 채 편안하게 책을 읽었지만, 도슨트와 함께 세계 곳곳의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작품에 담긴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다.

'뮤지엄 스토리텔러'인 저자는 60점의 명화를 발상, 행복, 관계, 욕망, 성찰의 방에 열두 점씩 전시한다. 몇백 년 된 작품부터 최근 작품까지 다양한 작품이 담겨있으며 작품에 관한 이야기와 작가에 관한 짧은 설명도 덧붙인다. 너무 가볍지도, 그렇다고 너무 무겁지도 않은 문장들은 예술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사람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책을 읽다 보니 책에 담긴 명화들을 두 눈에 담고 싶단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종이에 프린팅된 이미지로 보는 것과 눈앞에서 보는 건 전혀 다르니까. 실제로 보면 어떤 느낌일까. '비너스의 탄생' 앞에 서면 무엇을 느끼게 될까. 어떤 관객처럼 나도 발작을 일으키며 기절하게 될까. 

아는 작품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작품이 처음 보는 작품이었다. 이 책을 읽는 일은 음미와 동시에 공부였다. 그것도 흥미롭고 재밌는 공부. 내가 만든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작품을 만든 작가도 있었고, '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 싶은 작가도 있었다. 

작가의 삶에 관해 생각했다. 그의 몸은 사라지지만, 작품은 그 이후에도 남아있다. 나는 무엇을 남기고 갈 수 있을까. 나는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그리고 내가 여전히 '과정'에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을 다시 했다. 무엇이 되지 않은 상태가 좋다. 정해진 게 없기에 덜 의식하고 더 자유로울 수 있으니까. 


p. 55
"색채를 통해 나는 우주와 완전히 동일해지는 느낌을 경험한다. 나는 정말 자유롭다."

p. 74 
크리스토는 이 작품을 경험한 사람들이 물 위를 걷는 느낌을 가질 수 있길 바랐다. 

p. 189
자연을 온전히 관조하고 느끼기 위해서는 홀로 머물면서 그 홀로 있음을 의식해야만 한다. 

p. 259
나는 사물이 아니라 관념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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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 - 50주년 기념 에디션
린다 노클린 지음, 이주은 옮김 / 아트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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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내 나이대의 남성 예술가보다 여성 예술가가 훨씬 많은데, (예대만 봐도 그렇다) 과거에는 왜 남성 예술가가 더 많았을까, 의문을 가졌던 적은 있지만 '왜'인지 알아보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논문이 궁금증을 해소해주었다. 


1971년, 린다 노클린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


책은 미술사에 젠더 관점을 도입한 그의 논문 발표 50주년을 기념하며, 그의 논문과 '30년 후' 스스로 재평가하는 글을 함께 담는다. 그러나 5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미술계가 남성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저자가 언급한 작가 '루이즈 부르주아'에 관해 알아보다 이런 기사를 발견했다. "경매시장에서 여성 작품은 여전히 찬밥... 불균형은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제목이었다. 

'17년 주요 옥션에서 여성 예술가의 작품은 경매가 총액의 7.5%에 불과하다.'


그는 논리적이고 구체적으로 원인에 관해 분석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여성이 예술적으로 탁월해지거나 성공하는 것은 당시의 현실에서는 제도적으로 막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팀 버튼의 영화 '빅아이즈'가 떠오르기도 했다.)



P.33

여성은 비록 실제는 아니더라도 잠재적으로는 자신을 남성과 동등한 주체로 생각해야 하고, 자기연민에 빠지거나 혼자만 꽁무니 빼는 일 없이 기꺼이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직면해야 한다. 누구나 동등하게 성취할 수 있으며 사회 제도적으로도 개인의 성취를 적극 보장하는 평등한 세계를 만들기 위해, 여성은 감정적으로나 지적으로 높은 수준에 이르도록 노력하면서 상황을 지켜보아야 한다. 


P.47

미술가를 지망하는 여성에게는 남자 모델이든 여자 모델이든 상관없이 누드모델이 전면적으로 제공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P.56

여성 미술가는 주위 사람들의 격려나 박수도 받지 못했고 교육 시설도 마음껏 자유롭게 이용하지 못했으며 작품 가격도 제대로 받지 못했는데, 


P.62

여성은 항상 결혼과 직업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듯 보인다. 이를테면, 성공의 대가로 고독을 얻거나, 직업을 포기한 대가로 성관계를 하고 동반자를 얻는 것이다.


P.87

명확한 사고야말로 진정한 위대함이며,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남자든, 여자든 도전에 필요한 위험을 감수할 만큼 용감한 자가 미지의 세계를 향해 약진하게 될 것이다. 


P.89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 라는 질문은 1970년 여성해방운동이 절정을 이루던 시기에 제기되어 그 시대의 정치적 에너지와 낙관적인 태도를 공유했다. 

...

이 시기에 미술 분야에서 일어난 여성운동의 지향점은 무엇이었을까? 주된 목표는 '위대함'의 전통적인 개념, 즉 위대하다는 것에 대한 완전히 남성 중심적인 이해를 바꾸고 대체하는 것이었다. 


P.115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 우리는 과거의 업적뿐만 아니라 미래에 놓여 있을 위험과 어려움에 대해 알아야 한다.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그들의 작품이 보이고, 글로 읽히도록 우리의 모든 재능과 용기를 발휘해야 한다. 이것이 미래를 위한 우리의 과제이다. 




성을 과하게 구분하거나 이성을 증오하는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여자나 남자나 같은 사람인데, 남자는 이렇고, 여자는 이렇다며 적대시해야 할까? 누군가에게 문제가 있다면 그건 성별 때문이 아니라 개인의 인성의 문제이며, 정말 중요한 것은 성별에 대한 편견을 가지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 의식의 저편에 성병에 대한 편견이 짙게 깔려있음을 발견할 때마다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낀다. 그리고 편견을 완전히 걷어내는 일은 정말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내가 사는 곳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덜어내기 위한 노력은 분명 필요하고, 갑자기 바뀔 순 없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모두가 모두를 온전히 동등하게 바라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그의 말대로 '이것이 미래를 위한 우리의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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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일가 - 교토 로쿠요샤, 3대를 이어 사랑받는 카페
가바야마 사토루 지음, 임윤정 옮김 / 앨리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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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커피 일가>는 3대가 대를 이어 운영하는 교토의 카페 '로쿠요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누군가는 그곳을 '사람과 사람이 접촉함으로써 또 다른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촉매제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그런 곳은 어떤 곳일까. 내가 모르는 그 시절, 낭만의 냄새가 흠뻑 들이 쉬어진다. 책을 읽는데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벨벳 골드 마인'이 떠오르기도 했다.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퍼즐 맞추듯 재구성되는 이야기. 단순히 커피 얘기뿐만이 아니라 음악과 삶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책을 펼칠 때마다 가보지도 않은 '로쿠요샤'에 머물다 온 기분이었다. 칵테일 바에서 잠깐 일했던 게 떠오르기도 했다. 내가 만든 칵테일을 마시며, 내가 선곡한 음악을 듣고 좋아하는 손님들과 음악 얘기, 사는 얘기를 나눴던 날들이.

개인적으로 카페의 창업자인 미노루의 셋째 아들, 오사무의 얘기가 특히 흥미로웠다. 나도 락음악에 빠져셔 기타를 배웠던 시절이 있었는데, 겨우 1년 배웠지만.
오사무는 커피를 하면서 음악을 했다. 나는 그의 모습에서 나를 자주 발견할 수 있었다.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고, 서로 다른 두 작업에서의 공통점을 발견한다던가 두 작업이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며 발전한다던가 하는 부분에서 말이다. 아래에 오사무의 문장들을 첨부한다.

P.129
'지하 점을 중심으로 한 오사무의 생활은, 음악에도 새로운 경지를 가져오고 있었다.'

P.134
'어디까지나 큰 축은 바꾸지 않지만, 결코 변화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P.140
'자신이 있을 자리가 몇 가지 있다는 사실로 음악의 신선함을 유지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P.142
'오사무는 일상에서 한숨 돌리는 시간, 말하자면 '생활에 구두점을 찍는 장소'를 제공하는  일에서 서서히 기쁨을 발견했다.

새벽의 집에서도 지하철에서도 읽었지만 가장 어울렸던 곳은 아무래도 카페였다. 카페에서 이어폰을 꽂고 재즈를 들으며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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