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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그라운드 니체 - 고병권과 함께 니체의 <서광>을 읽다
고병권 지음, 노순택 사진 / 천년의상상 / 2014년 2월
평점 :
언더그라운드 니체 - 고병권, 삐딱한 철학자 니체를 만나다.
“니체는 오랫동안 우리 곁에 머물렀다. 인문 독자들에게는 하나의 고유명사로 남았다. 누군가는 “니체가 이런 말을 했지”라고 그의 아포리즘을 젠체하며 인용하고, 또 누군가는 ‘니체’를 넘지 못할 산처럼, 읽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휩싸여 언제나 개론서만 뒤적이고 만다. 그 사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같은 책은 읽지 않았음에도 읽어버린 책이 되었다.”
출판사의 서평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단 몇 줄만으로 니체를 논할 순 없겠지만 이 짧은 도입부 문장은 니체를 처음 들어본 사람들에게도 그를 매력적인 사람, 더 알고 싶은 사람으로 만들기에 충분한 것 같다. 한 사람의 아포리즘 전체를 인용하며 그의 사상은 물론이거니와 말투까지 닮으려한다는 것, 그것은 학자든 작가든 누구든지 상당한 보람을 느낄만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톨스토이의 문장 전체를, 토시 하나 빠뜨리지 않고 외우려고 했던 적이 있다. 한 사람의 생각을 닮고, 그 어법마저도 닮으려는 의도는 기실 그 말을 한 사람처럼 되고 싶고, 또한 그렇게 살고 싶다는 뜻을 넌지시 드러내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톨스토이를 닮고 싶어 하는, 글 쓰는 직업을 가진 나라는 사람의 모습처럼, 니체를 닮고 싶어 하는 ‘사유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그 바람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책, <언더그라운드 니체>는 그렇게 니체를 알아가기에 좋은 지침서가 되는 도서다.
니체하면 나는 ‘니힐리즘’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허무주의를 일컫는 니힐리즘은 그가 뱉은 여러 말들과 긴요한 관계를 이루는데 인간의 양심이 내면에서 외치는 신의 소리가 아니라 인간 안에 존재하는 다른 인격의 인간들의 목소리일 뿐이라고 말하는 대목이나, 착한 사람은 결국 패배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부분을 통해 그가 일반화적인 생각을 가진 인물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니체의 이런 생각이 그를 막연하게 ‘비도덕적’인 사람으로 몰아갈 수 없기도 한 것 같다. 사람 안에는 분명히 악의 뿌리가 존재한다고 나는 믿고 있는데, 그런 인간의 본성을 니체는 간파하고 있는 것 같은 말들을 자주 내뱉기 때문이다.
도덕이 존재하는 이유는 아름다운 세상, 올바른 세상을 만드려는 목적보다 개개인의 생존전략이라 말하는 니체, 예쁘고 착하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속은 시커먼 검은색 투성이일뿐, 모두는 위선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는 그의 주장들 속에서 그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연유가 무척 궁금하기도 했다.
니체는 아포리즘을 자주 사용한다. 개 중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문장도 있지만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말들로 꾸려진 경우가 많다. 그래서 여러번 읽어보고, 또 주석을 이용하지 않으면 쉽게 알아챌 수 없는 아포리즘이 많다. 그가 ‘삐딱한 철학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나 그의 더욱 깊은 내면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말하는 아포리즘 하나하나를 분석하고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 같다.
저자 고병권 씨는 한국에서 니체를 연구하는 사람 중 한 명으로 철학도를 탐구하는 이들 가운데서는 꽤 명성이 높다고 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다가 중도에 포기한 나로서는 사실 니체를 본격! 해부! 이런 자세로 파헤치는 사람 또한 니체만큼 독특한 사람이겠거니, 생각했는데. 그의 책을 읽으면서 내가 알던 니체는 빙산의 일각일 뿐, 고병권 씨의 해석이 상상이상으로 폭넓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서광>이라는 작품을 유독 집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아쉬운 점은 내가 그 책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는 것이고, 그래서 <언더그라운드 니체>를 읽는데에 많은 부분을 어렵게 느꼈다는 점인 것 같다.
(어쨌든 뭔가를 읽기 위해선 그 내용의 바탕이 되는 텍스트까지 섭렵하는 자세가 절실히 필요한 것 같다. 이럴 땐 진짜 세상에 읽어야 할 텍스트가 너무 많아서 막막할 지경이다.)
니체의 <서광>이든, 국어사전적 의미인 ‘서광’이라는 단어의 뜻이든, 모든게 다 생소했다. 그래도 이번 기회에 알게 된 이 단어는 꽤나 마음에 든다. 그래서 앞으로는 자주자주 언급하게 될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에 동이 틀 무렵의 빛‘을 뜻하는 이 무한 긍정적인 단어를 기억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고병권 씨가 바라보던 니체를 떠올려봐야겠다. 니체, 그렇게 무책임하고 허무주의에 빠진 방탕자는 결코 아니었으니깐. 대학교 때 만났던 니체보다 졸업 후에 만난 니체가 더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어서 뭔가 득템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