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00엔 보관가게
오야마 준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소설] 하루 100엔 보관가게 - 오야마 준코, 잔잔한 감동이 오랫동안

 

 

<하루 100엔 보관가게>는 마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일본에서도 가장 일본스러운 어느 상점가 골목 끝에 자리 잡은 ‘보관가게 사토’라 불리는 곳. 앞을 볼 수 없게 되었지만 누구보다 탁월한 기억력과 다정스러운 모습으로 보관가게를 운영하며 누군가의 아픔, 혹은 그리움, 과거를 ‘보관’해주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처분’까지 도맡는 직업을 가진 가리시마. 그가 운영하는 가게 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에는 등장인물이 사람만이 아니다. 가게 입구에 걸린 ‘포렴’이나 ‘유리진열장’ 또는 어느 날 불쑥, 가게에서 삶을 시작해버린 아주 작은 하얀 고양이 ‘사장님’이기도 했다.

 

사람이 아닌 사물과 동물의 시선에서 바라본 인간의 삶은, 독자인 내게 나의 삶을 낯설게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사물에게 생명이 있다면 저런 생각을 하며 사람을 바라볼 수도 있었겠구나’하는 생각들이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그런 낯선 생각이 계속해서 재밌어졌다. 사람이기에 사람 그 이상의 존재로 무언가를 생각해보지 못했던 시간. 그 시간을 뛰어넘게 만드는 상상의 세계가 웃음과 감동을 선물했다. 역시나 소설의 힘은 위대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건, 비단 소설 속 신선한 화자들뿐만은 아니었다. 옮긴이라는 이름으로 이 책의 완성도를 한층 더 끌어 올린 번역가 덕분이기도 했다. 작가가 살리고 싶었던 부분을 톡톡 튀는 한국식 표현으로 상큼하게 표현해줘서 책 읽는 중간중간마다 웃음이 빵 터지기도, 눈물이 핑 돌기도 했었으니깐. 최근 우리나라 독자들이 이해할 만한 그런 문장, 혹은 문단들로 번역한 센스가 책에서 십분 발휘된 느낌. 사물의 시선으로 사람의 삶을 그리고, 그러다가 놀라거나 당황하거나, 또는 결국엔 이해하고 수긍하게 되는 모든 감정의 변화를 표현했던 텍스트들. 이것 또한 마음에 들었다. 가끔, 이렇게 작가와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는 번역가를 만날 때면, 작가가 전달하려는 이야기의 흐름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재밌는 표현을 쓴 번역가를 만날 때면, ‘소설 한 번 잘 읽었군’ 싶은 마음이 일렁인다. 이것 또한 소설이 안겨주는 위대한 힘일 테다.

 

[선물 받은 물빛 자전거를 접수합니다]와 [서류에 적힌 슬픔을 접수합니다], 특히 이 두 가지의 에피소드가 따뜻함을 넘어 뜨거운 감동을 안겼다.
[선물 받은 물빛 자전거를 접수합니다]의 경우, 자전거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었는데, 여기서 자전거가 자신의 주인으로 만나게 된 남학생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과, 보관가게 주인 가리시마의 차분하지만 정곡을 찌르는 진심어린 한 마디는 제3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마주하는 나에게도 동일한 ‘뜨끔’을 느끼게 했다. 자존감, 배려, 가족애 등 모든 부분에서 한층 더 성숙해지는 남학생의 변화, 그 감동적인 성장이 즐거웠다.
[서류에 적힌 슬픔을 접수합니다] 이야기에서는 앞부분의 다른 에피소드에서 기리시마의 보관가게를 이용했던 소녀가 다시 등장, 훌쩍 커 버린 이십대 후반의 여성이 겪는 슬픔에 대처하는 방법을 그려냈다.

 

보관가게의 주인이자 소설 속 화자들의 영원한 미스터리.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지만 전혀 불편함 없이, 구김도 없이, 자신의 삶을 보관가게를 운영하며 묵묵히 살아내는 사람. 오히려 가게를 찾는 손님들, 그런 보통의 사람들을 더 큰 사랑과 배려로 감싸 안는 사람, 기리시마. 덕분에 감동 곱빼기를 누린 시간이었다.
겉에서만 이 책을 봤을 땐 그냥 ‘일본 소설’이었다면, 모든 페이지를 다 넘긴 후에 다시 정의내려보는 이 책은, ‘힘 있는 소설’이다. 오야마 준코, 이 작가의 이름도 두고두고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히가시노 게이고, 무라카미 하루키, 오쿠다 히데오만 기억했던 내 편협한 작가관의 지경을 조금 더 넓혀준 소설. <하루 100엔 보관가게>였다. 

 

 

소설 속 한 문장

"3년 전에는 전통과자가게였습니다. 가게 이름은 '과자점 기리시마'였고, 간판에도 그렇게 적혀 있었어요. 전쟁이 막 끝나서 아직 설탕이 귀했을 시기, 샘에 밝았던 당시 주인은 냉큼 '사토'라는 단어를 물들인 포렴을 만들었습니다. 기술자에게 부탁할 돈이 없어서 직접 염색했어요. 납결 염색(천 위에 수지와 밀랍을 섞어 녹인 용해물로 모양을 그리고 누른 뒤에 떼어내는 염색법)입니다. 주위에선 반대했어요. 너무 노골적이잖아요. 그런데 효과는 대단했어요. 새하얀 '사토'에 이끌려 손님이 밀물처럼 몰려들었어요. 살벌한 시대에 단맛은 희망의 빛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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