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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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 김중혁, 삶, 그것의 흔적에 관하여

 

 

 

1.

 

아주 아주 긴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임팩트한 단막극 한 편을 보는 듯했다. 평소 선호하는 소설 장르는 결코 아니었지만 오로지 작가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된 작품 선정.
예전에 기업 사보 기획을 맡았을 때 사보 페이지네이션 중에 유명 소설가들의 에세이를 싣는 코너가 있었다. 유명한 작품을 펴낸 굵직한 경력들의 작가들이 섭외 대상 1순위였고, 그때 사보 작업을 진행하면서 김중혁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다. 같은 팀 직원이 김중혁 작가에게 에세이를 청탁했는데 흔쾌히 오케이, 거기에 그가 직접 그린 꽤 수준 높은 자화상까지 더해져 사보 에세이 페이지가 유난히 돋보였던 기억이 난다.

‘글만 잘 쓰는 게 아니라 그림까지 잘 그리는’ 만능 예술가의 면모였다. 자기가 쓴 글이 어떤 페이지 구성과 만났을 때 더 돋보일지를 계산하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얼굴 보며 작업한 건 아니지만 한 권의 사보를 완성하기 위해 ‘함께 일했던’ 김중혁 작가의 이름은 그렇게 내 머릿속에 첫 번째 각인.
그 이후에는 영화평론가 이동진 씨가 진행하는 팟캐스트의 게스트로 책 이야기를 들려주던 작가 김중혁을 다시 만났다. 글 잘 써도 조리 있게 말하는 데는 약한 사람을 더러 봤던 터라 라디오에서 만나는 김중혁 작가는 또 어떤 모습일까 내심 기대했는데 기대한 것 이상으로 유쾌했고 박학다식한 사람이었다.
한 명의 작가를 알아가고, 좋아하고, 존경하기까지 1년 반 정도의 시간이 걸렸고, 차근차근 알아온 터라 그가 쓴 작품을, 앞으로 쓸 작품을 더 큰 신뢰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2.

 

추리소설이라고 하기엔 조금 뭣하고, 연애소설은 더더욱 아니고, 느와르로 치기엔 그다지 액션스러운 모습은 묘사되지 않은, 정체는 불분명하나 묘한 여운을 주는, 그런 작품이다.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이라는 제목 때문에 처음에는 ‘에세이인가?’ 싶었다. 그러다 첫 페이지에 나온 주인공 이름을 보고는 그게 아님을 금새 알아차릴 수 있었다. '구.동.치', 주인공 이름이다. 전직 형사고, 현재 직업은 탐정. 그가 맡은 주요 업무는 의뢰인이 죽은 후 그가 생전에 부탁했던 자신의 정보들을 지워주는 일이다. '흔적을 없애 드립니다'라는 카피가 참 잘 어울릴만한 그런 직업이었다. '죽은 뒤인데 어차피 상관이 없지 않나요'라고 묻는 이들도 꽤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 뒤의 자신 모습이 여전히 떳떳하고 또 깨끗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구동치를 찾았다. 그리고 의뢰했다. '지워달라고'.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의뢰를 받으면서 그들의 과거를, 또한 그들의 흔적을 지워주는 탐정 구동치. 그리고 그를 둘러싼 주변인물들의 이야기.

단순한 설정, 평범한 인물들, 완벽하게 세상과 동떨어진 캐릭터는 아무도 없었다. 어쩌면 내 주변에 이런 직업을 가진 인물이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계속 끊이질 않았으니. 누군가의 과거를 불법적인 과정을 거쳐서라도 반드시 지워야 하는 남자와 의뢰인들이 맡긴 흔적을 뺏고 또 빼앗으려는 살아있는 자들의 몸부림이 소설의 큰 맥락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3.

 

소설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이 하나 있다. 구동치라는 캐릭터가 조금만 더 입체적이었으면 했다는 점. 전지적 작가시점이어서 모든 등장인물의 내면을 알 수 있긴 했지만, 구동치의 대사에서나, 그가 보이는 좀 더 적극적인 행동을 통해 '구동치'라는 한 인물이 더 정감이 갔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시니컬하고 할 말만하고, 제 하고픈 말은 따박따박 논리정연하게 뱉는, 그 외에는 어떤 이들과도 섞이기 싫어하는 그런 성격의 주인공은 독자에게는 그닥 매력적이지는 않다는 생각도 들었고.

어쨌든 소설 읽으면서 나도 이야기 속 의뢰인들처럼 내가 죽은 후에 꼭 지우고 싶은 건 뭐가 있을지, 그리고 나한테 소중한 건 또 뭘지, 차근차근 생각해볼 수 있었다. 딱히 물질적인 것 가운데서는 '반드시 없애야 해' 이런 건 없는 듯 했다. 나는 다만 과거에 저지른 실수나 잘못, 죄 같은 과거 어느 시점의 상황, 내 선택을 지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좀 더 했었다.

그러고보면 누군가의 과거를, 그러니깐 이미 시행해버린 어떤 일들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지우고 없앤다는 게 참 어려운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들기전에 평소에 행동 하나하나, 남기는 흔적 하나하나 신중해야함도 저절로 생각되는 것 같고.

김중혁 작가에 대한 큰 흥미만큼은 소설이 제 몫을 하지 못했다. 작가에 대한 지나치게 큰 기대와 신뢰 때문인지, 재밌게는 읽었으나 '진한 여운'은 조금 느끼기 어려웠다. 영화화 한다면 관객 300만 정도를 기록할... 그 정도. (그러고 보니 요즘 자꾸 읽는 책들이 영화화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 소설은 영화화하면 대박나긴 어려운 이야기일듯... 작가님 미안요!)

김중혁 작가의 섬세한 표현을 그래도 배웠고, 읽었고, 느낄 수 있어서 나름 유익했다. 세상을 적당히 조롱하고 풍자하는 캐릭터 설정도 조금 통쾌했고. 마음에 드는 몇몇 구석이 있으니 전반적인 평가는 not bad. 김중혁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을 찾으러 서점 사이트에 다시 들어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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