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예수인가? - Why Jesus Why 시리즈 1
조정민 지음 / 두란노 / 201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왜 예수인가 - 조정민, 삶으로 십자가를 지다


배움터하는 친구들과 같이 읽고 싶어서 선택한 책이었다. 조정민 목사님이 뭐 어떤 분인지 잘 알지 못했지만 어쨌든 ‘이단’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고, 신앙서적의 홍수 속에서도 이 책이 나쁜영향력을 미칠 그런 책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제목이 와 닿았다. <왜 예수인가>라는 제목이 괜히 붙지는 않았을 터. 내가 줄곧 믿어오고 고백해오던 예수님이라는 존재에 대해 이 저자는 어떤 논리들로, 어떤 이유로 예수님일 수밖에 없는가를 증명할 지 궁금했다. 

 


은 혜로 읽었다.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불꽃같은 은혜는 아니었다. 책을 덮으면 또 다시 내 옛모습에 사로잡힌 채 매 시간시간을 버텼지만, 그래도 이 책을 다시 펼쳐서 읽으면 저자가 말하는 예수님의 존재감이 뭉근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감사했다. 책을 읽고도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한다면 참 슬펐을텐데, 계속해서 각성할 수 있게, 책을 덮고 평상시처럼 살아갈 때 찔림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아서 감사한 마음으로 읽었던 것 같다. 

 


12가지 키워드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1강 종교이상에서부터 12강 부활까지, ‘왜 예수인가’에 대한 대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아 내의 새벽기도가 과연 진짜 교회로 가는 것은 맞는가, 아내는 어째서 교회 일에 그토록 열심일까. 이런 궁금증으로부터 시작된 교회탐방이 저자의 신앙생활의 시작이었다. 언론인으로 오랜 시간 기자생활을 해온 그는 교회를 뭔가를 파헤칠 장소로 생각하고 찾았다. 하지만 종교 이상의 무언가라는 느낌을 받은 뒤, 자신의 상태를 인지하고 신앙생활을 시작, 더 나아가서는 오십대가 훌쩍 넘은 나이에 목사가 되기 위해 신대원에도 들어간다. 죄인인 우리를 위해 예수님이 돌아가셨다는 그 놀라운 사실이, 그 복음이 우리의 어떠함도 원하지 않고 그저 주어진 것이란 사실이 놀라웠던 것이다. 여느 종교처럼 기독교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면 그저 ‘종교’로만 끝났을 테지만, 그 복음이라는 것이 노 마일리지를 주창한다는 사실은 종교 이상의 것을 느끼게 해주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였다. 

 


이중 전의. 십자가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조정민 목사님이 설명해준 단어다. 우리의 죄가 십자가를 통해 예수님에게 전가되고, 예수님의 의로움이 나에게 옮겨진다는 뜻이었다. 액세서리의 하나처럼 십자가를 목에 거는 행위에 ‘종교인이다’라는 자부심을 절대 갖지 말라는 충고는 십자가라는 숭고한 이름을 패션 소품으로 치부할 가능성이 다분한 나 같은 이십대 여성에게는 뜨끔한 충고로 다가왔다. 패션 소품이면서 한편으로는 ‘나는 기독교인이예요’라는 티를 내고 싶었던 어리석은 행동을 돌아보게 된다. 드러내는 십자가가 아니라, 목에 거는 십자가가 아니라 삶에서 지고 갈 십자가를 기억하라는 말이 참 인상적이다. 삶으로 드려지는 예배는 사실 책 뿐만 아니라 여러 설교에서도, 찬양의 가사를 통해서도 많이 접했던 말이다. 누가 기도하라고 하면 술술 뱉을 수도 있을만큼 귀에 익숙하고 입에 익숙한 문장이기도 했다. “삶으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이렇게. 

 


말 만 뱉으며 신앙생활 잘 하고 있다고 섣불리 판단했던 내 모습이 어찌나 어리석게 느껴지는지. 내 신앙생활을 돌아볼 수 있었던 책이어서, 걱정하고 우려하며 첫 장을 펼친 것과는 달리 책을 통해 신앙생활의 기초 마인드를 다시 다잡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조정민 목사님은 마흔이 넘은 나이에 예수님을 영접했고, 오십이 넘은 나이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신앙생활을 얼마만큼 했느냐, 언제 시작 했느냐 따위는 전혀 소용이 없다. 나중된 자 먼저되고, 먼저된 자 나중된다는 말씀을 기억하라며, 새로 온 친구들의 신앙이 너보다 더 훌륭할 수 있다는 엄마의 말이 한번 더 떠오른다.
내 신앙에 자만하지 말아야겠다. 이렇게 적고 있으면서도 내 신앙이 부족하고 모난 모습 투성이라는 생각은 여전히 변함없지만, 어쨌든 작은 일에 우쭐대거나, 작은 행위에도 큰 은혜 받은 듯이 지나치게 만족하고 자만하는, 안심하는 안일한 크리스찬은 정말이지 되고 싶지 않다. ‘왜 예수인가’에 대한 대답을 기억하고, ‘왜 예수일수밖에 없는지’를 고백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책 속에서 발췌

 

━ 

이것이 바로 영적 세계의 비밀입니다. 인간은 인간만이 구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냥 인간이 아니라 인간 이상이어야 구원할 수 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물 밖에 있는 사람이 구할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죄인은 죄인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죄인이 아닌 분이 죄인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죄 없는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셔야 했습니다.  

인간 이상이 되어야 인간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인 존재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유대인이 믿건 안 믿건, 세상 사람들이 믿건 안 믿건,  

십자가 사건은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이 직접 짊어지신 고난의 사건이었습니다.  

이것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내가 지금 무슨 주장을 하든 다 소용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 사건이 현재 우리와 밀접하게 상관있는 일임을 알게 됩니다.  

이 사실을 아는 순간 어떤 사람은 눈물을 쏟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헌신을 다짐할 것이며, 어떤 사람은 새벽기도에 나오겠다고 결심할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순서가 바뀌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새벽예배에 나오고 헌금을 하고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구원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구원은 우리가 그런 결정을 하기 전에 이미 우리 모두에게 베풀어진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이 사실이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듭니다.  

내가 믿겠다고 결정하기도 전에 이미 구원이 베풀어졌고, 내가 어떤 수고와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이미 구원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예수님의 실체입니다. 그분이 먼저 일방적으로 나를 찾아와서 아무것도 아닌 나에게, 정말 형편없는 나에게 구원을 베푸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하나님은 선과 악을 판단하는 것이 죄의 시작이자 곧 죽음의 길임을 말씀하셨고, 그래서 선악과를 금한 것입니다.

십 자가 사건은 예수님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능력이 무한하지만 스스로 무장해제해 버린 사건입니다.  

세상 사람은 능력이 있으면 권력을 잡고 높은 자리에 앉아서 지시하고 억압하려 하지만, 예수님은 그와 정반대의 길을 선택하심으로써 죄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권력의지는 끝없이 상향 욕구를 불태우지만 십자가는 끝없이 하향을 지향합니다.

 




 

교회는 십자가 위에 세워졌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개인적으로 십자가를 져본 적이 없다면,  

십자가를 통과한 적이 없다면, 십자가 앞에서 내가 죽어 본 적이 없다면, 어떻게 교회를 세울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나 는 우리 모두가 교회만 들어오면 눈물이 핑 돌았으면 좋겠습니다. 교회가 세상에서 힘들게 살다 온 사람들을 마음으로 품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 세우시고자 한 교회입니다. 서로 독려하며 사랑의 길을 걷는 교회 공동체 말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조직도, 어떤 단체도, 어떤 기구도 무엇을 표방하건 권력의지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결국 권력의 길을 가게 되어 있습니다.  

오직 교회만이, 예수님이 불러낸 사람들만이, 예수님이 몸값을 완전히 지불하고 죄로부터 풀어 준 교회 공동체만이 사랑의 길을 끝까지 걸을 수 있습니다.

 

 


 

리더가 되는 일보다 누구의 팔로어가 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인간은 누구도 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열심히 따라가면 또 누군가는 그런 나를 모델 삼아 팔로어로 따라올 뿐이지요. 우리는 그런 사람을 리더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리더십보다 팔로어십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팔로어가 되지 못하면 리더도 될 수 없습니다. 제대로 된 팔로어가 아니면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  

내가 그동안 수많은 리더들을 만났지만 깨닫게 된 것은 예수님을 제대로 따르는 사람만이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나서야 합니다. 아이들도 리더가 아니라 '예수 팔로어'로 키워야 합니다.  

제대로 된 사람을 따라가는 것부터 배우지 않으면 리더십이 바로 설 수 없습니다. 

 

 


<Why Jesus>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