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 -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가 된 문장들
박범신 지음 / 열림원 / 2014년 2월
평점 :
품절


박범신은 <은교>라는 작품에서 명대사를 남겼다.

'너희의 젊음이 너희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얻은 벌이 아니다.'

또한 박범신이라는 작가를 지칭하는 표현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영원한 청년작가, 박범신'

 

그래서일까. '청년'이라는 단어와 참 잘 어울린다 싶다. 이 작가.  

또한 박범신 작가의 글에는 유독 이 단어가 많이 등장하기도 하고.  

젊게 늙고 싶다던 그의 소망은 이 단어를 선택함으로 자주 드러나곤 한다.

 

늙은 청년이 장소마다, 시간마다, 기록하고 기록한 글귀들을 엮어 만든 <힐링>을 읽었다.

힐링이라는 단어는 꽤 포괄적인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박범신 작가의 글귀들을 총망라해줄

책 제목으로는 다소 역부족이다 싶다. 너무 좋은 글귀들을 감싸 안아주는 제목치고는 너무 밋밋하다.

 

박범신이라는 작가를 소설로 만났을 때보다, 그가 쓴 짧은 글귀들로 그를 만나는게 더 재밌었다.

그리고 그가 진짜 젊은 감각을 유지하려는 글쟁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힐링> 속 박범신의 글들, 그 가운데 몇 편을 타이핑했다.

 

 

 

 

 

 

#
불우했던 화가 고흐가 그랬지.
생은 걸어서 별까지 가는 것이라고.

모처럼 날씨가 좋아 햇빛 따라 걷는다.
봄이 어느새 가고 있다.
봄은 화려하지만 산만하고 황홀하지만 가볍다.
젊은 당신들이 가진 욕망은 봄에 가깝고
내 욕망은 요즘 대부분 가을의 깊은 갈망에 닿아 있다.
걸어서 별까지 가고 싶다.
고흐처럼. 

 

 

 


#
논산에선 가난한 밥상, 쓸쓸한 배회로 산다.
최소한의 식사로
더 멀고 쓸쓸한 길을 배회하는 것이다.

서울에 사는 당신들, 너무 많이 먹는다. 그러면서 배고프다, 배고프다, 아우성이다.  

논산에선 먼 도시의 사람들이 아우성치는 소리 더 환히 들리다. 더, 더, 더라고 아우성치는 소리.  

배불리 먹으면서, 그러나 더, 더, 더라고 아우성치는 당신. 무엇이 진실로 결핍돼 있는지 모르는 불쌍한 당신. 

 

 

 


#
세상이 너무 시끄럽다.
침묵의 말들을 알아듣는 사람이야말로 지혜롭다.
목청껏 떠들기보다 침묵하기가 사실은 훨씬 힘들다.
제발 호숫가 이 외딴집까지
세상이여, 따라오지 마라, 따라오지 마라.
나는 지금 내가 그리운
나의 고요한 본성에 담겨 있고 싶다.
이곳엔 그리운 나에게 가는 길이 가깝다. 

 

 

 

 

'이곳엔 그리운 나에게 가는 길이 가깝다'는 문장, 이 한 줄이 압권이다.

'그리운 나에게'라는 표현도, 그리고 그 곳으로 가는 길이 '가깝다'고 표현한 것도 그렇고.

뭘 먹고, 어디서 지내면 이런 글이 나오는거지. 이런 표현이 나오는거지.

 

다른 이는 박 작가의 다른 부분에서 감동 받을지도 모른다. 근데 나는 이 줄.  

이 맨 마지막 줄이 유독 마음에 콕 박혔다. 그리운 나에게 가는 길이 가까운, 그 지름길을 알고 살아가는 작가,

그가 지키고픈 유일한 길은, 따라오지 마라고 말하며 꾹꾹 숨겨두고 싶은 길은 논산의 작업실을 말하는 것이겠지.

그런 작업실에 멋드러진 의미 하나 부여하고 작품활동 이어가는 박범신 작가가 참 부럽다.

 

 

 


#
관계에서, <끝>이라고 쓰는 것이 사실은 제일 무섭다.  

마침표는 문장에서만 사용할 것이지 삶이나 사랑에서 사용할 것이 아니다. 

 

 

 


#
가을 숲이다.
숲속에 앉아 있으면 나도 한 그루 나무 된다.
혹한을 견뎌내야 하는 소명이 가득 차 있으므로
가을 숲은 여름 숲보다 오히려 더 풍성하다.
어떤 나무는 비바람에 꺾여 있고 어떤 나무는 늙어 쓰러진 채 죽어 있다.
그래도 그 사이사이에서 새로 어린 나무들이 자라므로
숲은 영원하다. 그게 희망이다.
역사가 그럴 것이다.
 

 

 


#
예전엔 목표가 꿈인 줄 알았다. 아니다. 꿈은 목표 너머에 있다.  

의사가, 국회의원이, 대통령이 꿈이랄 수는 없다. 그건 목표에 불과하다.  

의사가 되면, 국회의원이 되면, 대통령이 되고 나면 어떤 세상을 만들어갈지, 그 이상이 꿈이다.  

목표 너머의 비전이 없는, 내 기득권을 위한 출세는 더럽다.  

오로지 내 한 몸 잘 먹고 잘 살자고 꾸는 꿈이라면 젊은이여, 차라리 꿈꾸지 말라.
 

 


 

 

기득권을 위한 출세는 '더럽다'. '내 한 몸 잘 먹고 잘 살자고 꾸는 꿈'이라면 꿈꾸지 말라.

무섭게도 말한다. 하지만 여러번 곱씹으며 읽어보니, 참 와닿는다. 무섭지만 진실이다.

무섭지만 맞는 말만 했다. 잠시잠깐의 만족을 위해 내 양심을 '겉멋만 잔뜩 든 꿈'과 맞바꾸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직업과 꿈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통해 '무엇을', '어떻게', '왜' 하려는지에 대해 계획을 세워봐야 겠다.

이미 나에겐 직업이 주어졌고, 이제는 그 직업 안에서 무엇을 어떻게 왜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이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
숲이 물안개로 젖어 있다. 새벽이다.
다음 행선지로 떠나려고 가방을 꾸린다.
순례자는 순례하는 동안만이라도
죄를 짓지 않는다고 여긴다.
흐르는 건 길이 아닐 게다.
흐르는 건 나 자신일 뿐이다. 

 

 



#
평생 아침에 이르는 게 제일 힘들다.
주관적 골방에서 객관적 광장으로,
몽환적 죽음에서 실존적 생존으로 나가는 것이
아침이기 때문이다.
이 짓은 도무지 내공이 쌓이지 않는다.
삶에서 죽음으로
죽음에서 삶으로
빠져나가는 일이 아침이다.
 

 

 


#
외딴집에서 신문, TV 안 보고 한 주일 넘겼더니 시간이 어느덧 머물러 있다.  

알겠다. 내 마음이 그동안 분주했던 건 시간이 빨리 흐르기 때문이 아니라, 바쁘게 사는 세상을 너무 열심히 들여다 보았기 때문이란 것을.  

남들이 달려가는 삶의 속도 때문이었다는 것을. 남들의 '질주‘만 조금 덜 쳐다봐도 놀랄 만큼 행복의 길이를 늘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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