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일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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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국장편소설을 처음 접했던 적이 기억난다. 독특한 소재에 이끌려 집은 작품이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몰입되기 보다는 지쳐가는 마음이 더 커졌다. 분량도 어마어마했고 등장인물도 엄청났으며 담고있는 작품의 주제 또한 방대했다. '이거 도대체 뭘 말하려고 하는거지' 싶을 정도로. 그래서 그 후론 중국 소설에 대한 편견이 슬그머니 자리잡았던 것 같다. 그래서 위화의 소설 <제7일>의 첫 장을 펴보기 전까지 계속 반신반의했다. 이번에도 중국소설을 선택한 것이 실패로 끝나면 어떻게하지, 하는 생각 때문에.

근 데 이 소설은 상당히 촘촘했다. 독자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지도 않는 작품이었다. 되려 '좋은 책 한번 잘 읽었다' 싶은 마음이 생기게끔 했다. 오밀조밀하니 하나의 주제만을 드러내는 이 소설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단 몇 장만 넘겼는데도 얼른 끝까지 읽고 싶었다. 동일한 책을 읽고 서평을 써둔 이웃 블로거의 글을 읽으니 그녀도 이 책을 처음 펴본 뒤에 밤새도록 읽었다고 했다. 그럴말한 매력이 충분히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며칠만에 뚝딱, 읽으면서도 그 여운만큼은 며칠만에 홀라당 날려버리지 않기 위해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곱씹으며 읽었다. 대학교 강의시간에 배우던 '삶과 죽음'이라는 문제를 한번 더 생각할 수 있게 해준 책이라고나 할까.

 

 


나 는 나의 죽음 뒤에는 곧장 천국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고속열차를 탄 듯이 내가 나의 죽음을 인지하는 순간, 그렇게 나는 곧장 '천국'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디딘 존재가 될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만약, 양페이처럼 나도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단 며칠이라도 방황하는 순간이 찾아온다면? 그 시간을 나는 어떻게 보낼 수 있을까? 나는 어떤 이들을 만나게될까. 별의별 생각들이 다 스치기 시작했다. 철학 강의를 듣다보면 죽음이라는 단어를 교수님들이 자주 언급하신다. '사는 것은 죽기 위해서'라는 말도 자주 하셨다. 결국 죽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삶이라고 말씀하시던 어느 교수님은, '그러니 매일매일이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고 살아!'를 입에 달고 사셨다.

 

 


양 페이가 걸었던 길, 죽음으로 걸어가는 그 길 위에 내가 선다면 나는 어떤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가장 마지막에 내가 찾아서 만나게 될 사람은 누굴까. 사십 대 초반의 남자에게 나를 대입시킨 채 한참동안 내 죽음 이후를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책 의 구성은 독특하다. 양페이. 그가 죽었다. 작품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인 그가 죽어서 이승과 저승 사이를 방황하는 장면부터가 작품의 시작이다. 이승과 저승 사이는 마치 꿈속과도 같은 장소였다. 보이다가도 희미해지고, 들리다가도 먹먹해지는, 그렇게 양페이는 어딘지 모르는 공간들 속에서 익숙했던 장소들을 급작스럽게 만나기도 하고, 낯설면서도 익숙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찾으며 자신의 지난 삶을 차근차근 회상한다. 7일이라는 시간 동안.

 

죽 음 이후 그는 땅에 묻혀야 했다. 영원한 안식을 취해야 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안식을 선사해줄 무덤이 없었다. 묻힐 곳이 없는 자들이 맴도는 장소에는 뼈만 앙상하게 남아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분간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하루하루 더욱 말라갈 뿐이었다. 


작 품의 구성은 첫째 날부터 일곱째 날까지, 각 장이 하루의 시간을 담고 있다. 양페이는 각각의 날들 속에서 소리소문 없이 자신을 떠나버린 아버지를 만났고, 열렬하게 사랑했던 전 부인을 만나기도 했으며, 엄마 없이 자란 자신에게 엄마와도 같은 사랑을 부어준 리 아줌마를 만나기도 한다. 과외를 할 뻔한 어느 소녀의 부모와, 자신이 묵던 셋집 옆방에서 지내던 커플을 만나기도 한다. 죽음을 인지한 뒤의 7일 간, 그는 그렇게 알고 지내던 사람들의 죽음을 접하며 ‘나’의 죽음뿐만 아니라 ‘타자’의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죽음 속에서 조금은 늦은, 사랑의 마음들 또한 확인하게 된다.

양 페이가 깨달은 사랑이야기 중에서 가장 내 마음을 뜨겁게 달군 건 단연 아버지와의 이야기였다. 아버지 양진뱌오가 친아버지가 아니라는 것, 기차 화장실에서 태어나 철로로 떨어진 양페이를 거두면서 자연스레 맺어진 부자관계라는 것을 먼저 밝히면서도 작가 위화는 그 어느 이야기보다 애틋하게, 그 어느 부자관계보다도 돈독하게 이들 사이를 그려냈다. 친부모를 찾았음에도 그들에게 가지 않고, 다시 양아버지에게로 돌아온 양페이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될만큼, 그렇게 작가는 이들 사이를 진하고 깊게 그렸다. 부자관계의 끈끈함을 드러내는 문장들 중에서 양진뱌오의 극진함을 잘 드러내던 부분은 99쪽이다. 

 

 

내 가 혼자 걸을 수 있게 된 뒤에는 손을 잡고 다녔다. 주말이면 아버지는 공원에 데려갔다. 공원 안에 들어가서야 아버지는 안심하고 손을 놓은 뒤 나를 따라 사방으로 뛰어다녔다. 나와 아버지는 마음이 잘 통해서 공원의 샛길을 걷다가도 아버지가 손을 뻗기만 하면, 나는 보지 않고도 알아채고 곧장 내 작은 손을 건넸다.

그 러다 철길 옆 작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버지는 예민해졌다. 안에서 밥하는 동안 내가 밖에서 놀겠다고 하면 끈으로 당신 발과 내 발을 묶었다. 나는 그렇게 아버지가 그어놓은 안전지대에서 자라났다. 내가 오갈 수 있는 곳은 문 앞 정도였다. 행여 기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려고 앞으로 나가면 안에서 곧장 경고가 들려왔다.

"양페이, 돌아와!"

99쪽

 

 

그리고 그런 양진뱌오의 성격을 또한 잘 드러낸 문장은 245쪽.

 

 

아 버지는 빈의관 대기실에 들어갔다. 내가 처음 그곳에 갔을 때처럼 화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수의며 유골함, 묘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한 사람씩 가마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아버지는 앉지 않고 계속 그곳에 서 있다가 대기실에 직원이 한 명쯤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2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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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페이가 만난 사람 중에 '슈메이'라는 여자가 있다. 남자친구가 자신을 속였다는 배신감에 자살시도를 하다 진짜 죽어버린 비운의 여자. 가난함을 달고 살면서도 가난한 남자친구 곁을 결코 떠나지는 않았던 순정파 여자. 슈메이는 철은 없지만 지고지순한 사랑을 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철없음도 다 받아주던 우차오는 표현하는 것 이상으로 속이 깊었던 남자였고. 이들의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를 한걸음 물러서서 지켜보던 양페이는 슈메이의 마지막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다.

 

 

 

A52 가 세 번 불린 다음 우리는 슈메이의 번호 A53을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모두 함께 고개를 숙인 채 슈메이가 플라스틱 의자를 떠나는 걸 느꼈다.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머릿속으로 슈메이가 웨딩드레스 같은 긴 치마를 끌며 안식의 땅으로 가는 게 보였다. 하지만 그녀가 가는 것만 보일 뿐 가마가 있는 방과 무덤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온갖 꽃이 만발한 땅으로 가는 게 보였다.

294쪽

 

 

오 해했던 남자친구의 진심을 확인한 후, 미안하면서도 슬프고, 슬프면서도 고마운, '너에게 사랑받으며 살았고, 사랑받으면서 죽을 수 있어서 행복해'라는 모습으로 화장터에 들어가던 슈메이의 모습, 화장되는 순간에는 가장 평안한 마음으로 잠들 수 있었던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양페이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꽃길로 걸어가는 모습처럼 묘사했다. 죽음을 '끝'으로만 생각한다면 절대 그릴 수 없을 그림들. 하지만 죽음이라는 존재가 사실은 더 평온하고 더 넓은, 더 밝은 세상으로 가는 길이라는 걸, 우리 모두가 만나는 공간이라는 걸 느끼는 순간 양페이의 눈에 비친 죽어가는 사람들은 더이상 불행한 이들이 아니었다. 우차오에게 건네던 양페이의 마지막 말이 인상적이다.  

 

"가자, 저기 나뭇잎이 너한테 손을 흔들고 바위가 미소 짓고 강물이 안부를 묻잖아.

저곳에는 가난도 없고 부유함도 없어. 슬픔도 없고 고통도 없고, 원수도 없고 원망도 없어.

저기 사람들은 전부 죽었고 평등해."


7일 간의 시간동안 죽음을 이해하게 된 그, 사랑의 이면들을 알게 된 그는 한층 성숙해진 양페이로 업그레이드 된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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