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가 정말 예쁘다. 시공사 세계문학전집은 처음 보는데 M, Y, E, P 출판사 세계문학전집보다 훨씬 마음에 든다. 유일한 단점, 아니 아쉬움이라 하면 양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양장이 아니기에 겉표지의 그림 부분 재질이 독특할 수 있었을 것이다.
피츠제럴드라 하면 몇몇 단편들과 ‘위대한 개츠비’밖에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밍웨이와 어깨를 (거의) 나란히 한다는 점에 약간의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의문은 이 '밤은 부드러워'를 읽으며 완전히 해소된다. 모든 소설은 곧 작가 자신의 이야기다. 어떤 작품에나 작가는 자신의 모습을 담을 수밖에 없으며(자신의 모습을 담는다는 것은 자신의 세계를 보는 관점을 담는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이 작품은 ‘위대한 개츠비’보다 물리적 양이 많은 관계로, 피츠제럴드의 세부적인 모습이 더 많이 담겨 있다.(일례로 나보코프는 소설 속에서 자전적, 도덕적 요소를 찾지 말라고 '비웃듯이' 말하곤 하지만 그런 시니컬한 세계관, 가치관마저 그의 작품에 담겨 있다.) 피츠제럴드의 분신인 딕은 니콜도, 로즈메리도 사랑한다. 이게 진짜 사랑이었는지 아닌지, 진정한 사랑은 무엇인지 같은 문제는 차치하고 보자. 니콜과 로즈메리는 피츠제럴드의 여인의 특성을 조금씩 나눠가졌다. 그 과정에서 피츠제럴드는 자신을 미화시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름의 생존본능일 것이다. 미화하는 방향과 방식이 ‘위대한 개츠비’와는 다르다. 일단 서사의 중심축이 전환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고, 피츠제럴드가 작품 속에 재현하는 ‘남자로서의’ 삶의 모습도 다르다. 이 책을 읽어볼 독자가 있다면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같이 읽어봤으면 좋겠다. 잃어버린 세대의 대표 작가인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 그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그대로 담겨 있다고 평가받는 ‘밤은 부드러워’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분량마저 거의 비슷하다. 조금 더 비개인적인 소재를 통해 개인적 세계를 구현하고자 했던 헤밍웨이와 개인적 경험의 심화를 통해 인생실험을 하고자 했던 피츠제럴드. 당시의 시대상과 사람들의 내면, 피츠제럴드와 헤밍웨이의 차이와 연관성에 대해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