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까지 해서 춘천시립도서관의 논술 관련 코너에 있는 책은 한번씩 다 빌려 보았다. 오늘 빌린 논술 관련 도서는 <창의적인 생각, 체계적인 글>(손세모돌, 한국문화사), <논술행 기차를 바꿔타자>(고길섶, 문화과학사), <글쓰기 전략과 실제>(임성규, 박이정), <통합교과와 생각하기 논술>(김슬옹·허재영, 토담), <삐딱하게 보고 뒤집어 생각하라>(김슬옹, 미래M&B), 그리고 <난, 논술로 갔다>(문승기, 한우리북스)이다.


책꽂이에 꽂혀 있는 순서로 보자면 <난, 논술로 갔다>는 이미 빌렸어야 했다. 그러나 직감으로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우선 표지의 ‘서울대 법대 합격! 논술로 뒤집은 비결’은 얼마나 낯간지러운가. 어떤 책일까,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목차건 본문이건 한번 훑어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빌리고 싶은 책을 다 빌려도 한 권이 남았다. 반납할 때를 위해 내가 빌릴 수 있는 최대권수를 채우곤 했었기에 이번에도 한 다스를 채우기 위해 별 생각없이 집어들었다.


저녁 먹기 얼마 전에 반쯤 읽고, 저녁 먹고 얼마 후에 ‘에필로그’가 끝나는 259쪽까지 다 읽어치웠다. 슬프다. 비애감이 휘몰아친다. (슬픔과 비애에 대해서는 약간의 덧붙임이 필요하겠다. 나는 춘천의 아무개고등학교 국어교사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나랑 같이 공부했던 학생 하나가 지난해, 그러니까 2006학번으로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 아마 이 책의 필자와 동기(同期)가 될 것이다. 나는 이 책의 필자가 왜 이런 책을 썼는가를 이해할 수 없다. 제자 같은 학생이 당당하게 이름을 걸고 하는 일을 ‘이해할 수 없음’이 교사인 나의 슬픔이고 비애이다.)


‘나누어주는 삶을 위해’(188쪽), ‘부정에 희생당하는 사람들’(187쪽)을 위해 꼭 판사가 되겠다는, 그래서 ‘무조건’(170) 서울대 법대를 가야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거듭하고 끝내 뜻을 이룬 이 책의 필자여. 물으면 안 될 것 같은 질문을 하는 나의 슬픔과 비애를 이해하시라.


“이 책을 진정 당신이 썼는가?”


여러 말 할 것 없이, 이 책의 4부-논술·구술 공부법-부터만 보자. 4부 이후는 그 앞의 것과 문체가 완전히 다르다. 동일 필자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다. 혹 동일 필자라면, 그는 누군가가 준 자료를 다듬거나 보태는 정도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 않고야 ‘한우리’라는 학원의 차시별, 학기별 프로그램 또는 질문법 등을 이처럼 상세히 제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의 뒤쪽 논술문에 대한 예시와 프로그램이 전무하거나 허술한 것에 비해 본다면 이것은 필자의 부정직 아니면 불성실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어쩐 일인가 해서 서지(書誌) 사항을 찾아봤더니 이 책을 펴낸 곳이 ‘한우리북스’였다. 어찌 보면 이 책의 주인공은 필자가 아니고 ‘한우리’라는 학원인 것처럼 읽힌다.

 

또, 필자가 논술의 비결이라고 여러 페이지에 걸쳐 알려준 것 역시 전혀 비결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런 것은 학원 등에서 나오는 논술 자료집 또는 시중의 논술참고서에 숱하게 나와 있고 이 책의 말투 역시 그런 교재들의 그것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2006학년도 서울대 논술 문제를 풀이하는 과정의 설명도 참고서에 나와 있는 유형과 전혀 다르지 않고, 또 대단히 추상적이다. 필자가 작성했다는 답안의 화제들 역시, ‘논술로 뒤집’어 ‘서울대 법대’에 ‘합격’한 논술문이라는 것에 나는 회의적이다. 그 정도의 문제의식과 주제 설정, 논거 제시로 ‘뒤집’을 수 있었다면, 다른 학생들의 논술문은 도대체 어느 정도였단 말인가? 하나마나 한 이야기를 건조하게 나열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9천 8백원을 주고 이 책을 사는 독자들을 위해 수능 성적 10점 이상을 커버했다는 필자의 논술문을 함께 실어주는 것이 도리일 터. 그러나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왜 그런가 하는 것은 이 책의 필자가 더 잘 알 것이다.


‘부끄럽지만, 과감히 공개’(165쪽)한 ‘서울에서의 40일’ 일기는 정말로 쓸데없이 ‘과감’했고, 지금 생각하면 스스로도 많이 ‘부끄’러울 것 같다. 하루 종일 논술에 매달려 살고, 비빔밥을 먹으면서도 논술문의 조화를 생각하던 필자의 일기치고는 내용과 형식 모두 조악하기 그지없다.


… 아, 헛되이 수십, 수백의 아름드리 나무를 베어넘긴 자들이여! 정말로 ‘부끄럽지만, 과감히 공개’할 것은 진정 이 책의 어디까지가 ‘문승기 지음’인지를 말하는 것이다. 그것이 문승기의 자존심을 찾거나 찾아주는 일이 될 것이다.(2007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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