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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푸가 - 철학자 김진영의 이별 일기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6월
평점 :

이별의 푸가- 김진영
철학자 김진영의 이별일기라고 적힌 이별의 푸가. 2017년 [현대시학]에 일부 연재했던 원고라 한다. 86개의 짧은글로 이루어져 있는데 모두 이별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별에 대해 이렇게 많이 쓸 수 있다니 이별의 말엔 끝이 없을 것 같다던 소설가 김연수의 추천사가 머릿속에 맴돈다.
첫 번째 산문집인 <아침의 피아노>를 먹먹하게 읽어서 이번책도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아침의 피아노에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더 듬뿍 담겼다면 이 책은 이별의 아픔과 그 때의 마음에 대한 글이 담겨있다. 이별로 인한 수 많은 감정들을 글로 표현했는데 하나의 이별에서 이 많은 감정을 느낀 건지 아니면 수 많은 이별을 겪은건지 궁금해진다.
우리는 결국 사랑을 마지막까지 지키지 못했다는 패배감. 물론 수많은 장애가 있었으나 우리의 이별은 결국 우리 모두가사랑을 마지막까지 이어갈 용기가 없었다는 무능력에 대한 증거일 뿐. 이룰 수 없는 사랑은 없다. 우리가 포기했을 뿐. 그 사실을 나는 숨길 수 없다. 나는 열패감에 빠진다. 26p
후회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과거에 대한 후회. 사랑의 시간 안에서 이루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아쉬움. 또는 그의 마음을 다치게 했던 일들에 대한 후회. 그러나 또 하나의 후회가 있다. 그건 헤어진 뒤의 후회다. 28p.
산다는 건 시간 속을 지나간다는 것이다. 시간 속을 지나간다는 건, 매 순간 우리가 우리를 떠난다는 것. 우리 자신을 지나간다는 것이다. 매 순간 존재하는 단 한 번의 우리와 매 순간 이별하면서 매 순간 다음 순간의 우리로 달라진다는 것, 그것이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산다는 것, 그것은 매 순간 우리 자신과 이별한다는 것이다. 139p
이 책을 읽는 내내 이별은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내가 겪었던 이별도 생각 해 보고, 주변사람들의 이별도 생각해 봤는데 한 문장으로 정의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별은 과정이 아닐까. 사전에서는 서로 갈리어 떨어짐. 이라고 정의하고 있지만 이 정의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것 같다. 슬퍼하고, 억울해하고, 답답하고, 화나다가도 허전해하고, 후련하고, 기뻐하고, 다시 생각하며 추억하고, 몰래 지켜보고, 모른 채 하고, 잊었다 말하고 이 외의 수 많은 과정이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이별하는 게 아닐까 싶다.
'호기심'이라는 꼭지에서 이별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사랑이 다 지나간 뒤의 이별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이 다 이뤄지기 전에 찾아드는 이별이라고 한다. 책에서는 전자의 이별이 있을 수 있는지 묻는다. 누군가는 우리는 웃으며 헤어졌어요. 미련없이 서로 사랑했으니까요.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는 있으나 오랜 뒤에 그를 마음껏 사랑하지 못했었다는걸 깨닫게 될 것 이라 했다.
당시엔 슬퍼하지 않고 쿨하게 헤어지고 힘들어 하지 않는 내 자신이 그렇게 대견했다. ' 난 이별을 해도 이렇게 멀쩡하다고! 해야할 일도 척척 잘 하고 잘 살아!' 라며 누구보다 바쁘고 즐겁게 살았지만 어느순간 찾아오는 헛헛함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왜 내가 이별하고도 괜찮았는지 깨달았다. 나는 사랑을 할 줄 모른다. 사람들과 가깝게 지낼 줄 모르는 사람이라 떠나도 괜찮았던 거였다. 이제 알겠다. 맘껏 사랑하고 이별에 아파하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별을 겪고 난 뒤에 사람이 얼마나 더 단단해 지는지를. 20대에 이 책을 읽어서 다행이다.
이별에 아파하고 있거나 이별이 대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다. 여기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