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너에게 꼭 해야할 말은 없었다. 없는 줄 알았다. 말해야 할 것은 너와 함께했던 그 기나긴 시간 동안 다 하였을 테고, 그럼에도 말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굳이 말할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것은 말이 되어 나와버리는 순간 본질에서 멀어진다고, 말이 진심에서 가장 먼 것이라고. - P15
무언가를 알기 위해서 대답이나 설명보다 시간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고, 더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데 지금 이해할 수 없다고 묻고 또물어봤자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모르는 건 죄가 아닌데 기다리지 못하는 건 죄가 되기도 한다고. - P23
담이 하는 것은 나도 하고 싶었고, 담이 가는 곳에는 나도 가고 싶었다. 나쁘지도 올바르지도 않은 채로, 누가 누구보다 더 좋은 사람이다 그런 것 없이 같이 있고 싶었다. - P30
죽으면 알 수 있을까 싶었다. 살아서는 답을 내리지 못 한 것들, 죽으면 자연스레 알게 되지 않을까. 그런데 모르겠다. 살아서 몰랐던 건 죽어서도 모른다. 차이가 있다면, 죽은 뒤에는 모른다고 괴로워하지 않는다는 것 뿐. - P34
나는 나와 비슷하게 작은 구가 좋았다. 더 높거나 낮지 않게, 비슷한 눈높이로 세상을 보는 것만 같아서. - P41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상대를 끝없이 기다린다는 뜻일까 - P70
처음 만났을 때, 구와 나는 다른 조각으로 떨어져 있었다. 함께하던 어느 날 구와 나 사이에 끈기 있고 질펀한 감정 한 방울이 똑 떨어졌다. 우리의 모난 부분을 메워 주는 퍼즐처럼, 뼈와 뼈 사이의 연골처럼, 그것은 아주 서서히 자라며 구와 나의 모나고 모자란 부분에 제 몸을 맞춰가다 어느 날 딱 맞아떨어지게 된 것이다. 딱 맞아떨어지며 그런 소리를 낸 것이다. 너와 나는 죽을 때까지 함께하겠네. 함께 있지 않더라도 함께 있겠네. - P88
참기 싫다고. 참는 게, 싫어졌다고. 나한테 묻지 말라고, 내가 뭘 알겠느냐고. 난 정말 열심히 살고 있다고, 근데 여긴 열심히 사는 게 정답이 아닌 세상 아니냐고.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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