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신중하게 말하자면, 어떤 의미에서는 공감하지 않아야 더 잘살 수 있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공감’을 모든 좋은 것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한다. ‘공감’이라는 용어를 마치 도덕, 친절, 연민의 동의어처럼 사용한다. 사람들에게 공감을 촉구하는 많은 탄원들은 우리가 서로에게 더 친절하면 상황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한다. 나도 여기에는 동의한다!그런가 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공감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즉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가서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내는 행위가 공감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의미라면 나는 공감에 반대하지 않는다. 사회지능은 다른 종류의 지능과 마찬가지로 도덕적 행위의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우리는 이런 종류의 ‘인지적 공감’을 마치 선을 행하는 원동력처럼 과대평가하곤 한다. 그러나 타인의 욕망과 동기를 정확하게 읽어내는 능력은 성공한 사이코패스의 특징이며, 잔학 행위와 착취에 이용되기도 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능력에 관한 한, 그 능력이 어떤 것이든 장단점을 논할 수 있다. 그러니 공감에 대해서도 한번 똑같이 따져보자.
정치인들은 공정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정적을 겨냥한 ‘새로운’ 법을 만들기도 한다. 이를 일컬어 법률전쟁lawfare이라고 부른다.9
프랑스 시인 빅토르 위고가 말한 "때를 맞이한 아이디어보다 더 강력한 것은 없다"라는 표현을 종종 거론하곤 한다. 하지만 그러한 때도 누군가 아이디어를 내놓아야만 찾아온다.
우리는 좌파건 우파건 그 어느 쪽에서도교조주의에 굴복해서는 안 되며,개인의 자유, 학문의 자유, 상호 관용의 가치를 굳게 믿어야 한다.이러한 믿음이 없다면 정치적으로는 분열되었지만기술적으로는 통합된 이 지구에서 오랫동안 살아가기어려울 것이다
현대 세계의 통치자들은 자신이 법의 지배를 지지한다고 확신 있게 주장하려면 판사를 존중해야 한다. 법원은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법은 공정해야 한다. 이것이 어떻게 달성될 수 있고 또 달성되어야 하는지는 이 책의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실제적인 질문들이다. 하지만 우리 일반 시민들은 법의 지배를 요구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 우리는 법이 무엇인지 그리고 법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해야 한다-알라딘 eBook <법, 문명의 지도> (퍼난다 피리 지음, 이영호 옮김)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