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1년에 제정된 제국헌법은 보수주의자들에게 국민의 통치를 실질적으로 억압할 수 있는 절차적 무기를 가져다줬다. 보수주의 국왕은 시민 투표 결과와 무관하게 내각을 임명할 권한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간접선거로 선출하는 상원Bundesrat은 엘리트 집단이 장악했다. 또한 독일 연방제 내에서 최고 권력은 여전히 분명하게 비민주적이었던 각각의 주들에 주어져 있었다.
앞에서는 듣기 좋은 말을 하면서 뒤에선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 악의 없는 웃음을 보이면서 다른 마음을 품는 사람들이 흔하고 흔했다. 그런 모습은 어쩌면 인간이 지닌 보편적인 성질인지도 몰랐다. 그런 의미에서 명숙 할머니는 인간이라기보다는 고양이 같았다. 움직이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걷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을 대하는 방식도 그랬다. 고양이 중에서도 결코 인간의 무릎에 앉지 않고, 인간에게 치대지 않는 고양이라고 해야 할까. 늘 인간에게서 등을 돌려 앉고, 인간이 자신을 보지 않을 때는 멀리서 바라보다가도 눈길을 주면 외면하는 척하는 고양이.
그렇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사람이 사람을 기억하는 일, 이 세상에 머물다 사라진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기억되고 싶을까. 나 자신에게 물어보면 언제나 답은 기억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내가 기원하든 그러지 않든 그것이 인간의 최종 결말이기도 했다. 지구가 수명을 다하고, 그보다 더 긴 시간이 지나 엔트로피가 최대가 되는 순간이 오면 시간마저도 사라지게 된다. 그때 인간은 그들이 잠시 우주에 머물렀다는 사실조차도 기억되지 못하는 종족이 된다. 우주는 그들을 기억할 수 있는 마음이 없는 곳이 된다. 그것이 우리의 최종 결말이다.
색과 분위기가 유희적으로 유동하는 위태롭고 불안정한 균형상태, “인상주의”기술은 더욱 발전해 명확해져갈 것 같은데 인상주의는 왜 반대로 갔을까?#문학과 예술의 사회사4 #인상주의
읽을 때마다 새로운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나를 보는 엄마의 표정에서 엄마 또한 내게 거리감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예전처럼 며칠씩 서로 말도 붙이지 않을 정도로 신경전을 벌일 만한 일이 우리에게는 더이상 없었다. 큰불이 나기 전에 꺼버렸고, 상대에게 작은 불씨를 던졌다는 것에 문득 무안해지기도 하는 사이가 된 것이었다. 그건 우리가 그만큼 친밀한 사이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다. 서로에게 큰 상처를 입혔다가 돌이킬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우리는 눈빛으로 공유하고 있었다. 우리는 더이상 끝까지 싸울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정말 끝이 날까봐 끝까지 싸울 수 없는 사이가. 우리는 싱거운 이야기를 나누면서 산을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