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의 일 (양장)
이현 지음 / 창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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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1인 호정은 의사선생님과의 상담을 통해 '강은기'에 대해 기억해 낸다.
호정의 반에 강은기가 전학생으로 온다. 은기는 단톡방에도 페이스북에도 인스타에서도 찾을 수 없는 친구였다.

그날의 일도 그냥 떠올랐다. 가라앉았던 것들이 저절로 수면 위로 떠오르듯이. p.19

그럴 때마다 내 안에 도사리고 있던 무언가가 꿈틀거린다. 정말로 피부로 느껴진다. 꿈틀. 그걸 토해내고 싶기도 하고, 비명이라도 질러 버리고 싶어진다. 하지만 나는 더욱 크게 입을 다문다. p.35

깊은 호수에 잠긴 것 같았다. 물결하나 없이 잔잔한, 고요한. 햇살을 가득 받아 따뜻한, 그리고 환한. 손끝만 움직여도 공기가 물결이 되어 은기에게 전해질 것 같았다. 여기, 호정이가 있어, 라고. p.91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말해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다른 사람의 눈길만으로 아파지는 것들이 있다. 돌이킬 수 없으면서 사라지지도 않는 것들이 있다. 사라진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p.131

중국에 태권도장 체인을 내기 위해 부모님과 떨어져 할머니 손에 커야했던 호정. 사업 실패 후 부모님께서 다시 만둣집 일을 해 가족이 함께 모여살기까지 어린 호정이 부모와 떨어져 견뎌야 했던 시기, 초3 때 친구들을 만둣집으로 초대했지만 부모님의 냉대로 받은 상처의 기억들을 호정은 은기와의 만둣집 데이트를 하며 떠올린다.

가정 폭력이 부른 비극, 아버지를 살해한 아들 p.200

모든 것과 단절되었던, 주민등록증이 벌써 나와있었던, 수원에서 전학을 해야했던 강은기에 대한 소문이 학교에 퍼지게 되고, 공식커플이 되어버린 호정이 또한 큰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호정은 사랑하는 가족에게 친구들에게 상처를 준다.

문득 가야 할 곳을 깨달았다. 은기에게 가야 했다. 자전거를 돌려주어야 했다. 모든 것을 되돌려야 했다. 은기라는 애는 없었던 때로, 내 마음은 얼어붙은 호수와 같아 몹시 안전했던 때로. p.284

저체온증으로 사흘만에 깨어난 호정은 우울증으로 입원해 상담받으며 이야기의 앞부분과 연결된다.

어떤 계기, 그 말이 내 안의 그 애를, 아픈 나를 슬프게 학다. 손 쓸 겨를 없이 눈물이 쏟아지곤 한다. 아픈 나는 꽤 위험한 구석이 있다. 나는 그 애가 무섭다. p.301

마음의 상처도 눈에 보이면 좋겠다. 그러면 어디를 어떻게 다쳤는지 볼 수 있을 텐데. 곪아 가고 있다는 것도. 아물어 가고 있다는 것도. 상처는 결국 흉터가 되겠지. 있따금 흉터로 인해 상처의 기억이 되살아나겠지만 그래도 더 이상 아프지는 않겠지. p.334

나 사실은... 좀 아팠어. 그치만 괜찮아지고 있어. 괜찮아지려고 해. 너도... 그랬으면 좋겠어. p.345

호정은 나래와 화해하고, 강은기를 찾아 마지막으로 작별인사를 나눈다.
호정과 은기가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를 다독여주며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모습을 보며 아픔을 치유한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그 상처는 무의식으로든 의식적으로든 자신의 모든 행동의 이유이자 삶의 이유가 된다.
성장소설은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치유와 성장을 준다.

실제 <호수의 일>은 독자에게 손글씨로 쓴 편지이다.
모든 이야기는 결국 우리에게 쓰는 편지...
그렇게 작가는 우리에게 손편지를 보냈다.

우리 사이의 호수는 꽤 넓어서 서로의 얼굴을 알아보기 어렵습니다만, 그래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대가 거기 있습니다. 우리에게 서로가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대. 거기 있어주어서.
-작가의 손편지 중에서-

아무렇지 않다고 억눌러 꽁꽁 얼려 놓았던 자신만의 차가운 호수를 녹여 따뜻하게 흘러넘치는 호수가 되게 만들어 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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