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개척하는것...

신도 버린 사람들
나렌드라 자다브 지음, 강수정 옮김 / 김영사 / 2007년 6월

[지금 여기의 세계사] 라는 책을 통해 인도에는 카스트 제도 이외에 불가촉천민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세계사 시간을 통해 배운 인도에는 카스트 제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지만 불가촉천민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카스트 제도를 알고 있지만 그 카스트 제도 안에도 들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정말 놀라웠다. 카스트 제도 안에 들 수 없기에 인간으로서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 그저 인도라고 하면 힌두교와 소가 많은 나라, 카스트 제도만을 알뿐인 우리에게 인도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불가촉천민이라 불리는 달리트들이다.

이렇듯 이 책은 달리트 즉 불가촉천민이 인도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책이다. 그들은 그들의 더러운 발자국을 지우기 위해 허리춤에 빗자루를 매달고 다녀야 하며 우물에서 물을 길어 마실수도 없다. 또한 사원에 들어가 신께 기도드릴 수도 없다. 이유는 신성한 곳이 더럽혀진다는 것이다. 이들이 이렇게 천하게 태어난 것은 카르마 즉 전생에 지은 죄 때문이며 이생에서 달리트로 태어난 것을 업으로 삼아야한단다. 그래서 늘 그들은 아웃카스트로 남게 되며 그들과 닿는 것만으로도 오염이 된다고 인도인들은 생각한다고 하니 인도인이 아닌 나로서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이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천민이 있었고 노비가 있었지만 인도만큼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내가 그 시대를 살지 못했기에 정확하게 이렇다 저렇다라고 얘기할 순 없지만 이 책에 나오는 불가촉천민의 실상을 보면서 아직도 세계에는 불공평한 처사에 어떠한 말도 하지 못하고 그냥 순응하며 사는 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누가 내게 ‘이게 니 운명이야’ 라고 해도 그저 웃고 넘길 수 있는 거지만 달리트들은 수세기를 걸치면서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그 운명이 가혹하면 가혹할수록 순응하기보단 거기에 대항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 모습이 조금 낯설다. 물론 카스트 제도 안에서 카스트를 지키기 위해 불가촉천민들에게 운명을 강요한 것은 어쩌면 그 사회를 지키기 위한 당연한 결과였을지 모르지만 불가촉 천민들 스스로 그 운명에 순응해버리는 사실이 너무도 가슴 아팠다.

바뀌어야한다는 사실, 누구도 그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야하는 그 사실에 의문을 품으면서도 지금의 업이기에, 전생의 죄이기에, 내세엔 더 좋은 카스트를 받기위해 참아야한다고 가르치는 그들의 모습을 누가 비난할 수 있겠는가? 바바사헤브의 가르침이 없고 그가 그렇게 투쟁하지 않았다면 아직도 불가촉천민에 대한 대우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바바사헤브의 투쟁으로 헌법상 불가촉천민에 대한 차별이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전통사회에 남아있는 불가촉천민들에 대한 생각은 쉽게 바뀌질 않고 있다.

달리트로서 교육은 꿈도 꿀 수 없었던 예전에 비하면 지금은 그나마 나은 편일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더 많은 달리트들이 이제는 자신의 처한 상황을 운명이라 생각하지 않고 그것이 불합리한 상황이라고 내세보다는 현세를 더 중시해야한다고 생각하기를 원한다. 또한 기존의 카스트들도 그들만의 편협한 카스트 제도에 더 이상 머물지 않고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힌두교 사회를 한순간에 바꿀수는 없겠지만 달리트들이 스스로 노력하고 인도의 지식인들이 카스트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가장 보편적인 지식이 달리트들에게는 너무나도 생소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인도사회 전체엔 이 진실이 너무도 가혹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인도가 변해야한다. 그들이 지금껏 전통으로 여겨왔던 모든 것을 바꾸자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인간이 인간을 노예처럼 부리고 개나 돼지만도 못한 삶을 전생의 업으로 당연히 여기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이제는 깨달아야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80일간의 세계문화기행]에도 카스트 제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카스트제도에 대한 질문은 결례라고 한다. 또한 이 책에선 외국인은 카스트가 없기 때문에 인도에서는 제일 낮은 신분이라고 하니 상식으로 알아두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