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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눈사람
조영훈 지음 / 마음향기(책소리)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이별이라는 단어를 참 많이 겪게 된다. 그 이별이 한순간의 이별일수도 있지만 영영 이별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별을 하고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이별을 하고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게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 겪어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일이다.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내가 알았던 다시 만나고 싶은 누군가가 이 세상에 없다는 걸 알게될 때 그 허탈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이 책은 31세의 가장이 위암을 선고 받으면서 시작된다. 위암을 선고받고 아무 희망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보내는 가장은 조금 시간이 지나고나서 자신의 부인 또한 암임을 알게 된다. 자신이 죽어도 딸을 책임질 수 있는 아내가 있어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내마저 암에 걸리니 딸을 어떻게 해야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딸을 자신과 아내의 친한 친구에게 맡기며 죽음을 맡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주인공이 암을 선고받고 나타내는 감정들이 왠지 나를 닮아있었다. 특히 울고 싶을때 그럴때 TV에선 우연처럼 비가 내리는데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 그리고 암을 선고 받으면서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는 부분들이 그러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중간쯤 읽었을 때 유희도 선우도 살기위한 몸부림이 너무 적다는 것이 화가 났다. 자신의 아이 꽃별이를 놔두고 가면서 어떻게 그렇게 살기위해 아등바등하는 모습이 그려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5살 아이를 놔두고 가는 부모의 심정을 나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그 아이를 봐서라도 살아야겠다는 희망을,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보여야하지 않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부모는 아니지만 5살 아이가 부모없이 세상을 살아야하는데 그러한 부분들이 그려지지 않은 모습이 조금은 서운함마저 든다. 오히려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만 비춰주는 것이 나는 더 아쉽다. 좀 더 살기위한 몸부림을 쳤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말이다.
나는 예전에 아버지가 암을 선고 받으셨을 때 처음엔 참 담담한 마음이었다. 그다지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아서 더 그랬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버지가 쓰러지시고 병원에 입원하신 모습을 봤을 때 그때의 마음은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가 없었다. 처음엔 아버지가 그냥 단순한 감기처럼 쉽게 털고 일어나시기를, 그 다음엔 정말 기적이라는 게 있어서 그 기적이 우리 가족에게 찾아오기를, 마지막엔 하루만 정말 조금만 더 아버지가 살 수 있는 시간이 있기를 빌고 또 빌었다. 암이 초기에 발견되면 쉽게 고칠 수도 있지만 그 당시 아버지는 초기가 아니었으므로 죽음을 준비해야하는 시점이었다. 물론 기적이 일어나기를 우리 가족 모두가 바랬지만 말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참 무서웠다. 그래서일까? 예전엔 누가 업어가도 모를듯이 잤었는데 아버지가 아프고나서는 조그만 소리에도 깼다. 혹시나 아버지가 내가 자고 있는 사이 몰래 가시는 건 아닌가 싶어 어찌나 조마조마하던지... 그래서 자다 몇 번씩 깨서 아버지 주무시는 모습을 보곤 했던 것 같다. 그 습관이 지금도 남아 있어서 깊게 자지 못하는 것 같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정말 실감이 안 났다. 오히려 담담했었다. 사실처럼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문상을 오셨던 분들이 하나같이 말씀하시길 처음엔 모른다고... 시간이 지나면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게 점점 더 많이 느껴질거라고들 하셨다. 그런데 웬걸 아버지를 묻고 지나면 지날수록 내가 아버지께 잘해드리지 못했던 것들이 왜 그리도 생각이 나던지... 밥을 먹을 때도, TV를 볼 때도, 아버지와 관련된 사물 하나하나를 볼 때도 아버지 생각이 나서 울었다. 고집을 부렸던 것, 아버지 말씀에 대들던 것, 살아계신 동안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했다는 죄책감. 늘 아버지를 생각하면 마음 한켠이 아프다. 그래서 4년이 지난 지금도 아버지를 생각하면 눈물부터 난다. 내가 불효자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더 그런 것 같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정말 인정할 수가 없었다. 시신을 보며 그냥 아버지가 잠에서 깨어나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버지 무덤을 보면서도 집에 와선 다시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아버지를 생각했다. 오지 않을때면 돌아가신게 아니라 어디 멀리 여행을 가셔서 못오시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었다. 그저 어느날 갑자기 아버지가 내 앞에 나타날 것만 같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계속 부인하고 싶은 생각이 더 들었던 것 같다. 지금도 아버지를 닮은 분을 보면 혹시나 내가 모르는 곳에서 살고 계신 건 아닐까 하는 생각조차 드는 걸 보면 말이다.
예전에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자식이 먼저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그런데 부모가 돌아가셔도 가슴에 묻게 되는 것 같다. 아직 나는 부모가 아니기 때문에 비교할 수 없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아버지의 죽음으로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이 있다면 그건 자식만큼이나 부모 또한 그만큼 소중한 존재임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누군가 그런말을 했다. 겪어보지 않고서는 모른다는... 책으로 보고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들음으로써 어쩌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정말 겪어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죽음이다. 그리고 내 주변에 내가 정말 사랑했던 사람들이 떠나가는 것을 보는 것이다. 이 책은 내게 그런 생각을 하게 해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