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중에스무살 #창비

사람은 두 번 태어난다. 생물학적 출생과 사회적 출생. 사회적 인간으로 태어나기 전까지, 모든 인간은 보살핌이 필요하다. 온전히 무력한 존재. 19년 간의 돌봄, 그 이후에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 태어난다.

10달이 지나면 사람으로 태어난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다운 사람으로 사람 속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되려면 19년이 걸린다(고, 대개 사회적으로 약속되어 있다.)

그래서 스무 살은 신생아와 닮은 구석이 많다. 열아홉 살까지 고민하던 범주가 무참히 파쇄되어, 스무 살에 마주하는 문제에 덮여 버린다. '해결'되거나 '망각'되지 않고 '덮여 버리는 것'이 문제다.

그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나'를 무척 당혹스럽게 만든다. 물건처럼 내 뜻대로 하지 못하는 '연애'가 그렇고, 삶의 방향 정하기도 그렇다.

연애는 놀라웠다. 나 자신을 이만큼 또렷하고 짜릿하게 실감할 수 있는 길이 존재하다니. -p.27

연애는 나를 살피는 과정이다.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지, 너의 무엇이 애틋한지, 너를 보는 나의 어떤 점이 생경한지, '나' 안에 있었으나 인식하지 못했던 감정과 사고 방식을 깨닫게 만든다.

이곳에서 한 시간을 일하면 아메리카노 한 잔과 조각 케이크 하나를 살 수 있는 돈을 번다. 엄마는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고깃집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한 시간에 갈비탕 한 그릇을 살 수 있는 돈을 번다. -p.34​

스무 살의 문제는 '경제적 현실'을 직면하게 된다는 데에 있다. 사회인이 되기 전에는 절박함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가정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 경우라면 경제적 현실을 일찍부터 마주하고, 어릴 때부터 현실 채비를 하는 사례가 많다. 그렇지 않다면, 스무 살이 되어서야 '나의 생'과 그 삶을 꾸리기 위한 '돈'을 교환해야 한다는 것을 경험한다.

그때 깨달았다. 삶은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서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제자리걸음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때론 후퇴하기도 한다는 것을. 한차례 내린 비에 쑥 자라는 풀처럼 나는 한순간에 철들고 있었다. -p.43​

그렇게 부딪혀서 포착한 '진실의 티끌'은 거대한 진리처럼 오해되기도 한다. 세상은 양분되어 갈등하고, 죽도록 버둥거려야 버티는 삶이 있다는 것을 이해할 때가 온다. 그리고 비극의 주인공처럼 삶을 저주하며, '그럭저럭 괜찮아 보이는 삶'을 향한 길만 찾아 걷는다.

했는데 못 하는 것보다 안 해서 못 하는 게 모양새가 나았다. -p.60

그럼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뭐지? 그땐 몰랐다 하더라도 이제는 알아야 했다. 엄마에게 발언권을 주지 않고 오로지 내가 묻고 내가 답해야 했다. 내가 원하는 건 뭐지? -p.87​

그러다가 문득 깨닫는다. '보이기 위한 삶은 내 삶이 아니라'는 것을. 그제서야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보기 시작한다. 내 안에 심긴 19년의 씨앗의 정체를 살피고, 화해할 수 없었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생산성이나 목적 없는 행위가 부끄러운 짓이라는 생각이 언제 어떻게 내게 새겨졌는지는 모르겠다. -p.94

"나를 보잘것없다고 폄하하는 것도 내가 우월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일 수 있어요. 자기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기 때문에 자기 탓을 더 많이 하는 거죠." -p.205​

이 작품은 스무 살이 겪을 법한, 사회인 최초의 성장통을 그려낸다. 고등학생이 읽기엔 다소 멀게 느껴질 수도 있다. 대학생이 읽는다면 처한 상황에 따라 읽히는 폭이 다를 듯하다.

가족, 연애, 교우, 학업, 아르바이트, 꿈. 사회인에게 중요한 핵심 분야를 고르게 다룬다. 이 소설은 스무 살의 삶으로 그 분야들을 적절하게 엮어냈다. 그 점이 탁월하다.

사회인으로 태어나서 해야 할 첫째 과업은, 바닥을 딛고 있는 감각을 인식하는 것이다. 스물을 앞둔, 스물을 살고 있는, 스물을 갓지난 이들에게 도움이 될 소설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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