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소아기 감정양식
Leon J.Saul / 하나의학사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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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자면,
우리는 과거 부모와의 관계에서 경험한 감정을 성장 후 이성과의 관계에서 되풀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부모와 아동은 동일시와 대상관계라는 두가지 심리적 관계를 맺는다.

 우선, 아동은 부모가 자신의 요구를 해결해줄 대상으로 보고 기대하게 되는데 이를 대상관계라 한다. 이 과정에서 얼마나 충족감 또는 결핍감을 느꼈는가에 따라 이후 심리적 양상도 달라진다. 충족감이 지나쳐도 의존적이 되지만 심하게 결핍되면 분노나 죄책감 등 다양한 문제를 낳게 된다. 

 또한 아동은 부모 중 어느 한쪽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향을 가지게 되는데 부모의 부부관게가 불행할 경우 동일시 대상으로서 건강한 역할 모델을 하기 어려우며 이로인해 아동에게 다양한 감정적 문제가 발생한다.   

나의 아버지는 매우 특별한 사람이었다. 이기적이고 변덕스러우며 언제든 폭력적으로 돌변할 수 있는 위험한 사람. 어머니와 우리 자매들은 오늘 또 어떤 바람이 불지 그 방향을 주시하며 전전긍긍했다. 불행한 사람들은 자기 보호에 급급하기 때문에 주위의 피해자들에게 나눌 온정이 없다. 어머니는 자상하셨지만 우리를 사랑하셨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황야에 서있는 허름한 판자집처럼 집 안에서 늘 바람이 불었다. 어린 시절 따뜻하고 즐거운 기억이 별로 없다. 나는 불기가 있는 곳이 그리웠다.    

아버지는 자주 불 같이 화를 냈고, 우리를 물건처럼 취급하는 말과 행동을 하셨다. 나는 그가 미웠다. 하지만 한편으로 화를 내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화를 내면 그가 나를 정말 죽일 것같았다. 그리고 때때로 보이는 감정적인 나약함들- 때린 뒤에 과자를 사오거나 우리를 웃기려 하는 등-을 보면 그가 불쌍했다. 내가 아버지를 불쌍히 여긴 것은 사실이었을까? 아니면 그 자식으로 살아남기위해 감정적으로 타협하려 한 것일까? 잘 모르겠다. 어쨓거나 그 불쌍히 여김은 내 안의 적개심이 강한 만큼 같이 자라 서로 상반된 방향으로 충돌했다. 그리고 분노하는 나자신에 대한 죄책감으로 발전했고, 죄를 지은 나를 다양한 방식으로 벌하는 자학증세로 나타났다. 부모에 대한 분노, 죄책감, 그리고 자학으로의 발전은 특수한 사례가 아니라 대부분의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정양식이다. 다만 나는 그것이 좀 더 압도적이었던 거다. 

내 경우 자학은 20년간의 폭식-거식증과 비뚤어진 이성관계로 나타났다.  

좋은 남자를 사랑할 수가 없었다. 지독한 연하거나 결혼이 안되는 남자를 골랐다. 내게 불행을 가져다 줄 것같은 남자에게 이끌렸다. 행여나 좋은 남자를 만나면 그가 나쁜 남자가 될때까지 불평하고 공격해서 서로를 증오하며 헤어지게 만들었다. 

읽고 울고 울고 또 울었다.
아버지만 보면 또 눈물이 나온다. 그 또한 다른 부모가 만든 희생자가 아닌가.

이 책을 통해 얻은 이해가 나를 그리고 또 다른 희생자들을 자유케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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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 & 디에고 리베라 - art 003 다빈치 art 18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신성림 옮김 / 다빈치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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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프리다 칼로라는 이름을 처음 만난 것은 몇년전 같은 제목의 책을 보면서 였다. 그뒤 몇번의 스침이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이 책을 사게 한 것은 알라딘의 책소개에 떠오른 프리다 칼로의 초상화 표지였다. 화려하기 그지없는 색채와 강렬한 표정, 그리고 정교한 선의 묘사 등이 나를 사로잡았다. 아마 리뷰에서 쏟아진 찬사들도 크게 마음을 움직였을 것이다.

요즘 푸코의 <감시와 처벌>을 읽으면서 푸코의 천재성과 그것이 기반하고 있는 서구의 두터운 지적 전통에 좌절감을 느끼는 나로서는 서구 것과는 다른 출발점을 볼 수 있으리란 기대에 들떴다. <감시와 처벌> 자체가 담고있는 바도 17,18세기이후 형성된 서양의 기계적 문명에 대한 비판이지만 그 밖에도 주위에서 우리의 지향점은 서구적 모더니티가 아니다. 역사는 더이상 진보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 목소리가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대신할 무엇이 무엇인지 내용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다. 다양한 모색이 있을뿐. 아마도 그것이 이제부터 내가 찾아가야 하는 것이리라.

그런 문화적 가능성의 작은 단초를 찾으리란 마음으로 책을 기다렸다. 르클레지오의 책은 일정수준에서 그에 대한 답이기도 했고, 또한 미흡한기도 한 것이었다.

우선 화보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리베라의 강력한 벽화의 힘을, 프리다의 처절하고 적나라한 채색화를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이전 고려원판의 세배값을 줘서 아깝지 않았다. 르클레지오의 유연한 필력도 즐거운 독서에 한 몫했다. 리베라와 프리다와의 관계를 생존본능에 가까운 근원적인 공생관계로 묘사하고 그들의 예술적 향로와 힘의 원천을 그 관계속에서 찾은 점도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나 르클레지오의 서술은 프리다 칼로라는 여인에 대한 나의 호기심을 채워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여성으로서 그녀가 왜 디에고 리베라를 사랑하게 되고, 나이차와 여성편력에도 불구하고 계속 사랑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도 트로츠키나 니콜라 머레이처럼 매력적인 구혼자가 있었음에도 왜 그녀의 최종적인 선택이 그였는지. 사랑은 설명할 수없는 것이다. 그러나 전기작가의 시점에서라면 그녀가 누구를 사랑했다는 단순한 사실의 서술이상의 치밀한 자료제시와 감정분석이 뒤따랐어야 하지 않을까?

또한 결정적으로 그녀가 어떤 주위 영향속에서 예술인으로서의 발전하게 되는지 그 과정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 가장 치명적이었다. 리베라가 화가로서 성장하는 과정이 생생했던 만큼 이나 프리다에 대한 서술이 모호하고 단정적인 것이 눈에 띄었다. '그녀는 거의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그리고 몇년에 무슨 그림을 그렸다.'르클레지오의 서술은 계속 이런 식이다. 화가로서의 그녀의 예술관이 누구의 영향을 받으며 형성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녀의 화가로서의 성숙기는 리베라와 계속 해외를 여행하고 있는 고독한 시기였다. 당연히 남편 리베라의 지대한 영향 속에 화풍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리베라의 영향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녀의 작품세계는 대단히 독자적인 세계를 만들고 있다. 이러한 차이점과 유사점에 대한 비교분석 역시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1938년 이후 거의 완성된 그녀의 예술세계에 대한 서술외에 이전의 과정이 전혀 드러나 있지 않은점은 정말 큰 아쉬움이었다.

르클레지오의 다른 작품을 읽은적이 없어 그라는 작가에대해 이 전기만으로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이책에서 목적한 바가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라는 두 작가의 삶을 충실히 재현하고, 그 관계에 기반한 작품세계를 통해 멕시코에서 일어난 위대한 반서구적 문화혁명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면 이것은 잘 될뻔한 어설픈 결과물이거나 괜찮은 불발탄이었다고 해야 할것같다.

다만 내게 외롭고 높고 쓸쓸한 프리다 칼로의 세계에 대한 이미지를 심어주고,그를 제대로 맛보게 해줄 다른 책을 찾아보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켰다는 점은 이책의 성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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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평전
최석태 지음 / 돌베개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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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사람의 가장 큰 고민중 하나는 아는 것은 너무 적고 가르쳐야 할 내용은 너무나 다양, 방대하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맘 먹고 공부하지 않으면 수업은 정치사가 중심이 되고 정말 풍부해질수 있는 문화사 쪽은 간단히 대충 넘어가버린다. 우리의 '근대'가 형성되는 일제시대는 지금의 우리 문화의 정체성과 고민이 출발하는 지점으로 정말 소홀히 하고 싶지 않았다.

<이중섭 평전>은 그런 내게 참 고마운 책이었다. 역사비평에서 나온 '전통과 서구의 충돌'이라는 근대문화 형성기와 함께 우리의 근대성에 대한 고민과 반성을 할 수 있었다. 물론 나역시 위에 서평을 쓰신 주경야독님의 글에 공감한다. 이중섭의 '민족성'에 대한 더욱 치밀한 분석과 검증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치밀한 분석과 검증이 어찌 한 사람의 연구로 가능할 것인가? 이는 책의 한계라기 보다는 이제껏 제대로된 근대 미술사 연구 하나 없었던 우리 미술계의 한계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처음 한 30페이지를 읽으면서 참 감사하다는 마음이 무럭무럭 일었다. 이중섭을 둘러싼 동시대인들에 대한 자세한 조사 연구와 아름답고 풍부한 도판의 수록... 저자의 성실한 연구 자세에감사드린다. 이 토양이 독자를 비롯한 더 많은 이들에게 이후의 더욱 정치한 연구를 가능케 하는 빚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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