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사람 - 교유서가 소설
김종광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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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1세기 농촌

21세기 '토지'를 읽는 듯했다. 배경은 안녕시 육경면 역경리. 바람 잘 날 없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이웃들의 이야기. 여느 곳처럼 그 안에서 생겨나는 갈등, 화해 그리고 소통. 21세기 농촌의 모습을 현실적이고 객관적으로 바라보지만, 그 시선에는 온기가 가득하다. 부정부패나 조류독감 같은 사회문제는 날 서지 않은 자세로 풍자한다. 여러 단편이 엮인 소설집이나, 겹치는 인물과 장소가 빈번하게 등장해 사실상 하나의 큰 이야기 속 작은 이야기 모음에 가깝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김사또-오지랖, 이장사-공주댁, 차돌-학생댁 부부와 십대 친구인 성빈-팔방미, 여성 이장 이덕순이 있고, 그 외에도 예리한 기억댁, 노래 잘하는 다방댁 등이 있다.

2. (농촌소설이 아닌) 시골소설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이 소설이 대중, 미디어, 도시가 원하는 소비를 위한 시골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힐링, 자연, 치유의 농촌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농촌을 그렸다. 스스로 사관이 되어 2015년부터 2020년 봄(코로나 이전)까지의 시골을 기록하고 남긴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시골 이야기와는 무드가 다르다. 다시 말하면 반전 매력이 넘치는 소설이다. 부조화 속 조화로움이 돋보이는 그래서 더 매력적인 소설이다.

소설 속 인물들의 말과 언어 사용은 몰입감을 높인다. 토속적 사투리와 세속적 신조어가 물에 물감 풀어진듯 자연스레 섞여있다. 선득선득, 검질기다, 가뭇없다, 고시랑대다, 생게망게하다, 으르락딱딱대다, 무르춤하다, 아퀴 짓다, 에멜무지로, 흰소리, 무두질, 짯짯이, 지청구 먹다, 자심하다 등 평소 잘 쓰이지 않는 단어들을 찾아가며 읽는 재미가 있다. 공손수, 하꼬방, 파락호, 어지자지 등의 어원도 익힐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사자성어의 잦은 사용 역시 눈에 띈다. 전전반측, 독야청청, 와신상담, 백골난망, 수구초심 등 단편마다 한 두 개씩은 꼭 사용되어 작품의 분위기 조성을 돕는다.

해학적인 에피소드와 '웃픈' 사연들도 인상적이다. 확실히 기존 농촌 또는 시골소설에 비해 조금은 더 현대적이고 그러면서도 시골스러움은 잃지 않았다. 출판사 서평은 이 소설의 '핍진성'을 강조한다. 즉 '텍스트에 대해 신뢰할 만하고 개연성이 있는, 즉 그럴듯하고 있음직한 이야기로 독자에게 납득시키는 정도'가 높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최신식 보일러 설치, 떨어진 은행 열매 처리, 이장 선출, 가금 처분, 코피로 인한 병원 방문, 노래 대회 등 주제부터 남다르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겨움까지 얹혀져 핍진성은 극대화된다.

3. 시골의 현재

작가가 가감없이 보여주는 역경리의 시간은 과거가 아닌 현재다. 그래서 받아들이기 쉽고 이질적이지 않으며 흐르는 시간 자체는 무의미하다. 시대성이 묻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현재라 더욱 소중하다. '시골의 현재'를 그리고자 한 작가의 의도가 느껴지는 그런 소설이다. 그래서인지 소설의 시점이 자유분방하고 역동적이며 전환도 빠르다. 무턱대고 읽다간 놓치기 쉽상이다. 자유로운 시점 전환도 시골의 현재를 보다 생생하게 전하는 역할을 한다.

이 책의 제목 '성공한 사람'과 '시골의 현재'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성공한 사람, 훌륭한 사람'이란 단편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정신 차려. 책 읽다가 미친 돈키호테처럼 되기 전에!" 성공하고 훌륭해지는 것만이 전부가 아님을 깨닫게 하는 문장이다. 주인공 성빈이 내적 성장을 이루는 이 일련의 과정은 성공에 대한 독자 자신의 가치관을 되돌아보게 한다. 책이란 무엇인지, 어떤 사람이 성공한/훌륭한 사람인지, 그것이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 시골의 현재를 사는 성빈의 해맑은 물음은 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경험을 선사한다.

4. 입체적인 인물묘사

시골을 배경으로 하는 만큼 노인이 다수를 차지하지만, 십대부터 고령의 노인까지 등장인물의 연령대는 천차만별이다. 성별, 직업, 지위 모두 각양각색이라 읽는 맛이 난다. 만약 이들이 이야기마다 따로 놀고 공통분모가 없었다면 읽기에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소설 속 인물들은 당연하다는 듯 어우러지며 실제로 역경리에 초대된 듯한 느낌을 준다. 때론 억지스럽고 구차하지만 그러면서도 이웃을 위하는 마음을 가지고 감동을 주는 일을 하는 역경리 주민들. 입체적인 그들의 개성 넘치는 이야기들을 읽고 있자면 시골 풍경을 가만히 보고 있는 것 같다.

-성공과는 거리가 멀다. 잘 버텨낸 정도. 참 이상한 일이구나. 성공했냐고 물으니까 자꾸 실패한 일만 떠오르네. - P91

꼰대 너무 미워하지 마. 우리집엔 꼰대가 없어서 그런가 난 꼰대들이 재미있더라. 꼰대들하고 얘기하면 그분들 자체가 하나의 책 같거든. 성공한 책인지 훌륭한 책인지 그건 알기 어렵지만 아무튼 한 권의 책 같아.
팔방미가 성빈의 오른쪽 뺨을 꼬집어 비틀기까지 했다.
-정신 차려. 책 읽다가 미친 돈키호테처럼 되기 전에! - P109

너무 빨라 믿을 수 없는 세월은 묵지도 않고 어김없이 손돌바람을 불러왔다. - P205

난 그냥이라고 말하는 새끼들이 제일 싫어. 뭐가 그냥이라는 거야. 생각해보면 다 까닭이 있다고! 생각하기 싫어서 그냥, 하기 싫어서 그냥, 귀찮으니까 그냥, 쪽팔리니까 그냥. 충청도 사람들이 가장 심하게 욕먹는 게 뭔지 알아? 그 모호한 태도야. - P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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