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카 고타로(伊坂幸太郎) 지음 ★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6월10일 초판1쇄 발행


2008년 제5회 일본 서점대상

2008년 제21회 야마모토 슈고로상 수상


여기 한 남자가 있다. 온 세상이 추격하는 한 남자. 왜 자신이 쫓기는지도 모른 채 온 세상의 추격에서 벗어나려 안간 힘을 쓴다. 이사카 고타로의 2007년 신작 《골든 슬럼버》는 이 남자와 그 주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아이러니하게도 훤칠한 외모를 제외한다면 그다지 눈에 띄지도 않는 조용한 남자다. 이 소설은 어느 날 일본 미야기현 센다이시에서 발생한 총리 폭탄 테러 사건에서부터 출발한다. 그 지역 출신인 젊고 카리스마 넘치는 신임 총리가 자신의 고향에서 마련한 대대적인 환영 카퍼레이드 행사 도중 공중에서 접근한 모형 헬리콥터가 폭탄으로 둔갑하면서 폭살되고 만다. 정치적인 음모의 냄새가 강하게 풍기는 이 총리암살사건은 평범함이 지나쳐 조용하게 살아가고 있는 한 남자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놓는다. 그는 부지불식간에 총리암살용의자로 지목되어 국가 전체의 추격을 받게 된다. 예전 택배기사 시절 우연찮게 곤경에 빠진 여성 인기 아이돌을 구하면서 전국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이 있었던 그가 이번에는 정반대로 온 국민의 악의적인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살아남기 위해 처절한 사투를 벌인다. 《골든 슬럼버》는 줄거리를 알게 된 순간부터 소설보다는 영화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활자로 읽는 것보다는 영상으로 보는 편이 훨씬 어울릴 것 같은 이야기라고나 할까.


*   *   *


이사카 고타로의 작품은 《칠드런》, 《중력삐에로》에 이어서 세 번째다. 탁월한 이야기꾼인 이사카 고타로의 소설은 유난히 영화화되는 경우가 많다. 2006년 《칠드런》이 드라마 『의룡』의 주인공 사카구치 켄지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졌고 2007년 제작된 에이타 주연의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도 현재 우리나라에서 개봉중이다. 인터넷을 살펴보니 《중력삐에로》도 현재 카세 료, 오카다 마사키, 코히나타 후미요, 스즈키 쿄카 같은 쟁쟁한 배우들을 내세워서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모르긴 몰라도 이 작품 《골든 슬럼버》 역시 조만간 영화로 다시 만나게 될 것 같다. 팝 음악계의 전설인 비틀즈의 명반 「Abbey Road」에 수록되어 있는 동명 곡을 모티브로 써내려간 이 소설은 첫 페이지에  이 곡의 전체 가사가 나와 있을 만큼 곡의 내용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책을 읽다보면 국가권력에 의해서 평범한 한 사람의 인생이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면에서 자못 진지한 문제의식이 돋보이기도 하지만 이 소설은 출판사에서 대놓고 말하는 것처럼 철저한 오락소설이다. 그 말은 곧 책을 읽는 것을 뭐 대단한 인격수양이나 하는 양 내용이 가볍다느니 흥미위주라니 떠들어대는 사람에게는 맞지 않는 작품이라는 소리다. 과시용으로 책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그런 사람들에게는 어느 잘생긴 한 남자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이 클로즈업 되어 있는 책표지도 상당히 유치하게 비춰질 수 있겠다. (근데 사실 요즘 출판사들이 책표지를 너무 화려하게만 만들려고 하는 경향은 있는 것 같다. 몇 개월 전 아사다 지로의 《프리즌 호텔》 여름 편을 샀는데, 절판되어 안타깝게도 구할 수가 없었던 그 여름 편을 제외한 나머지 세 권은 예전 수수한 디자인인데 반해 새로 출간된 여름 편은 마치 만화책처럼 화려한 디자인을 하고 있어서 묘한 위화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   *   *


“인간의 최대 무기는, 습관과 신뢰야” 나에게 《골든 슬럼버》의 명대사를 뽑아보라고 한다면 단연 이 대목이다. 대학시절 단짝이었던 친구 모리타가 주인공인 아오야기 마사하루를 향해서 던진 말이다. 후반부에 방송국 PD의 핸드폰에 들어 있는 익살스러운 멘트를 듣고 아오야기는 혼잣말로 인간의 최대 무기는 아무리 어렵고 힘든 순간에도 웃음을 웃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라는 나름 멋진 말을 하지만, 그래도 난 습관과 신뢰가 인간의 최대 무기라는 친구 모리타의 얘기가 더 마음에 와 닿는다. 매일 매일을 습관처럼 살아가는 직장인으로써 그래도 누군가를 신뢰하는 가운데서 희망을 찾을 수밖에 없는 한 인간으로써 그것이 우리의 최대 무기라는 말에 백퍼센트 동의하는 바이다. “뭐든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해, 사는 것도 도망치는 것도” 꼴사나워도 상관없으니까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 결코 포기하지 말고 악착같이 살아가야만 한다. 주인공 아오야기의 주변 사람들은 국가 전체의 반역자가 되어 쫓기는 아오야기에게 이런 말들을 전해준다. 소설 중반부 이후에 서서히 드러나는 사실들로 미뤄볼 때 아오야기를 암살범으로 누명 씌울 후보로 지목한 채 진행된 총리암살계획은 오랜 시간 공들인 작품이었다. 이런 가운데 아오야기의 주변 사람들도 조금씩 신변의 위협을 받게 되는데 그 와중에 어쩔 수 없이 국가권력에 굴복해서 아오야기를 함정에 빠뜨리는데 일조하게 된 사람들조차도 하나같이 입을 모아 그에게 생존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 이미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이 아니게 된 상황에서도 아오야기는 이 사람들의 말대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으려 애쓴다. 작가 이사카 고타로는 어쩌면 《골든 슬럼버》라는 소설을 통해서 우리에게 살아간다는 것의 소중함을 전하고 싶어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   *   *


만약 현실에서 나에게 이 책의 주인공 아오야기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어떨까? 내가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 누군가에 의해서 누명을 썼다는 사실을 밝힐 수 있는 방법은 없고 설령 그 사실을 밝혔다 하더라도 엄청난 권력을 가진 배후 세력에 의해서 쉽게 조작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아오야기처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내 결백을 밝혀낼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을까? 솔직히 그렇다고 확신하기는 어렵다. 그건 국가라는 존재가 마음만 먹는다면 나 같은 한 사람 정도는 쉽사리 매장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실은 반대로 국가는 그 국가라는 울타리 안에서 살고 있는 국민들을 철두철미하게 보호해야할 막중한 의무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국가라는 눈에는 보이지 않는 존재 안에서 그 국가를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재산과 목숨을 지켜야 할 의무가 국가에게는 있는 것이다. 단지 소설 한 권의 이야기일 뿐이지만, 이 소설 속에서 비춰지는 국가의 모습이 만날 경제선진국이니 OECD 가입국이니 떠들어대면서도 외국에 나가서 온갖 고초를 겪는 자기 나라 국민들 하나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모습과 겹쳐져서 씁쓸한 기분이 들게 한다.


2008/09/20 블로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