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다 이라(石田衣良) 지음 ★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5월25일 초판1쇄 발행
2003년 129회 나오키상 수상
작가 이시다 이라의 이름을 먼저 알게 된 것은 나가세 토모야와 쿠보즈카 요스케 주연으로 TBS가 2000년에 제작한 TV드라마 《이케부쿠로 웨스트게이트파크 : IWGP》를 통해서였다. 일본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대부분 이름을 알만한 천재 각본가 쿠도 칸쿠로가 각본을 담당한 이 드라마는 드라마 자체로도 많은 인기를 누렸지만, 지금은 거물급이 되어 있는 야마시타 토모히사, 츠마부키 사토시, 사카구치 켄지 같은 대스타들의 풋풋한 신인 시절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4teen》은 이 드라마의 원작자인 이시라 이라가 2003년 발표해서 일본의 대표적인 문학상인 나오키상까지 수상한 작품이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14살 소년들의 모험담을 그리는 작품으로 '4teen'이라는 숫자와 영어의 조합으로 제목을 정한 것은 주인공인 4명의 십대와 그들의 나이인 14살을 동시에 표현하기 위한 작가의 센스 있는 선택이었다고 한다. 수많은 성장소설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소재를 두개만 꼽아보라고 한다면 바로 우정과 섹스일 것이다. 전형적인 성장소설의 형태를 띠고 있는 소설 《4teen》가 선택한 소재 역시 이 우정과 섹스다. 너무나 뻔한 소재 선택이지만, 솔직히 우리의 성장과정에서 이 두 가지를 뺀다면 도대체 무엇이 남게 될까? 그것 말고도 얼마든지 할 얘기가 많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 역시도 이 소설 속 주인공들과 같은 나이였던 시절에는 쓸데없는 일로 함께 시시덕거리던 친구들과 모여서 어떻게 하면 여자의 은밀한 그곳을 직접 볼 수 있을까에 대한 궁리로 시간을 보냈던 나날이 적지 않기 때문에 소설 속 네 명의 주인공들이 마치 그 시절의 나와 내 친구들인 것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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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4teen》의 주인공 네 명은 겉으로 보기에는 서로 닮은 구석라고는 없다. 1인칭 시점인 이 소설에서 이야기를 진행하는 화자인 데츠로는 남들보다 음악과 책에 조예가 깊다는 점만 빼면 모든 면에서 보통인 평범 그 자체인 소년이며 공부 잘 하는 친구 준은 두꺼운 안경을 쓴 겉모습에서부터 모범생 분위기를 팍팍 풍기지만 의외로 강단 있는 성격의 소유자다. 마을 근처에서 가장 높은 초고층 아파트에 사는 나오토는 집이 엄청나게 부자지만 남들보다 몇 배는 빨리 늙는 조로증에 걸려 머리카락에는 벌써부터 백발이 군데군데 섞여 있고 엄청난 먹보에다 그에 걸맞은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는 다이는 매일 술에 절어 사는 아버지를 두고 있는 가난한 빈민촌 출신이다. 어느 한군데 비슷한 구석도 없어 보이는 이들 네 친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함께 어울려 다닌다. 작가인 이시다 이라는 나이가 들면 현실적인 문제들로 인해 자의든 타의든 간에 어쩔 수 없이 비슷한 레벨과 환경에 있는 사람들끼리 어울릴 수밖에 없는 어른 세계와는 달리 어떤 계산과 선입견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을 받아들일 줄 아는 아이들의 순수함을 이렇게 외모도 가정환경도 다른 네 명의 친구들을 통해서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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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살 네 친구들의 눈에 비친 세상은 무서울 정도로 냉혹하고 현실적이지만, 이들은 항상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눈앞에 닥친 장애물을 하나씩 뛰어 넘으며 그들에게는 아직 너무나도 크고 두려운 15살이라는 또 다른 신세계를 향해 차츰 전진해 나간다. 지병인 조로증 때문에 병원입원을 밥 먹듯이 하는 나오토의 생일선물로 세 친구는 불량스런 여고생과의 원조교제를 주선하기도 하고, 허황된 영웅심에 빠져 모든 일에 허세를 부리는 뻥쟁이 왕따 유즈루의 유일한 친구들이 되어 주기도 하며 홀로 삶의 마지막을 정리하고 싶어 하는 행방불명자 할아버지에게 자신들의 불꽃놀이 명당자리를 양보하기도 한다. 주인공인 데츠로는 폭식과 단식을 반복한 끝에 대인기피증 증세까지 보이는 같은 반 여학생 루미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당당하게 남자친구로 그녀의 옆에 있어 주고 조숙한 준은 불굴의 의지로 매 맞는 유부녀를 남편의 손아귀에서 구해내기도 하며 못 말리는 식탐의 소유자 다이는 출렁거리는 뱃살에도 불구하고 모든 여학생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게이 친구의 짝사랑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들이 책 속에서 겪는 일들은 평범한 중학생에게는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특별한 사건들 투성이이며 거기에 대처하는 소년들의 행동은 14살이라는 나이를 잊어버릴 만큼 멋들어진다. 이와 같은 네 소년의 소영웅적인 모습이 자칫 소설 자체를 너무 비현실적으로 몰고 갈 수도 있겠지만, 중간 중간 비춰지는 아이다운 유치한 발상들이 다분히 소영웅적인 이들의 행동과 절묘한 균형을 이루며 이야기의 흐름을 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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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처음으로 경험한 2박 3일의 신주쿠 자전거 여행 끝에 집 근처 공원에 모여 앉아 하나씩 비밀 이야기를 풀어 놓는데, 모범생 준이 모두를 향해서 이런 고백을 한다. "이대로 좋은 고등학교와 대학을 거쳐 일류기업에 들어가서, 다른 사람 칭찬을 듣는 그런 인생. 그 어디에 내가 있는 걸까? 주변 사람 모두를 속이며 사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잠이 오질 않아." 참 나, 나야말로 이 대목을 읽고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일류기업까지는 아니더라도 책 속에서 준이 내뱉은 이 대사는 지금 현재 내 모습과 내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 말이었다. 14살 소년의 고민이라기보다는 작가 이시다 이라의 의중이 깊숙이 배어 있는 듯한 이 말은 매일 매일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의 연속인 나와 같은 사람의 마음을 꿈틀거리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개구쟁이 네 소년의 좌충우돌 고군분투 모험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처럼 ‘과연 나는 현재 잘 살고 있는 건가?’ 하는 결코 대답하기 만만치 않은 질문과 맞닥뜨리게 된다. 하늘이라도 날 수 있다는 14살 무렵, 누구라도 미래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 봤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때 그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과거의 내가 꿈꿨었던 미래의 모습에 내 자신이 지금 현재 얼마나 가깝게 접근해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2008/09/24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