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의 모태를 찾아서 - 한국인의 삶.얼.멋
조자용 지음 / 안그라픽스 / 2001년 1월
평점 :
절판


 50년대 60년대 우리나라 문화를 사랑하고 찾았던 조자용선생,예용해선생...중고교때 배웠던 한국의 미(주로 중국영향을 받은 불교 문화재들...우리나라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중 70%)가 뭔가 고답적이고 눅눅하다고 느꼈었는데... 이런 분들의 글을 보고 느끼면서 우리문화가 뭔지에 대해서 생각하고,깨닫게 됩니다. 또한 조자용선생은 그림,도기,기와를 전문적으로 수집하시기도 하였습니다...도깨비 기와를 많이 수집했을 때의 일입니다.다음과 같은 글에서는 휴...하면서 여러 생각이 듭니다(감히 범접할수 없는)...마음이 참으로 아파옵니다.

 148쪽...1963년 여름 초등학교 5학년 맏딸 에밀라가(조선생님은 1947년 우리나라 처음으로 미국유학간 30명중의 한분입니다.하버드대학에서 구조공학을 전공하시고 기득권을 버리시고,재건을 위하여 우리나라에 들어 오셔서 늦게 우리나라문화에 눈뜨게 되셨고 큰 따님이름은 미국에서 나서 미국이름인듯 합니다) 별안간 세상을 떠났을 때부터 도깨비를 집안에서 몰아내라는 주위의 비난이 대단했다. 그 애는 도깨비 기와를 고양이처럼 귀여워하던 아이였다 과로에다 딸까지 잃은 충격으로 나는 병이 났다. 나를 잘 아는 친한 사람들까지 내 정신에 이상이 생겼다고 수근거렸었다. 그런 일 저런 일로 마음이 자꾸 약해졌지만 집안 식구 도깨비들은 달랐다. 늙으신 어머님과 아내, 둘째 딸 은희, 모두 나를 격려해 주었다. 집에는 냉장고나 tv는 고사하고 라디오 한 대도 없었다. 1년 가도 옷 한벌 해주지 못하고 영화 구경 한 번 가는 일도 없었다. 그렇게 살 바에야 무엇 때문에 가정을 가지느냐고 비웃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내가 도깨비기와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우리 가족의 인내심 덕분이었다.(신동아 1965년)

 참 맘이 아픕니다. 우리 나라 전통 문화재를 사시기 위하여 대구 집까지 파셨다고 하는데요...(조선생님은 평생 집다운 집은 이후 없으셨습니다)...건축쪽 일 하시면서 돈도 많이 벌고 취미로 하셨으면 가족들에게도 많이 베푸셨을 텐데요...(변호사,사업 등 일을 하시면서 우리나라 문화에 큰 일을 하신분들도 꽤 되죠).....휴... 이런분들의 뜻을 이어서  지금 우리나라 문화에 대해서 진지하게 연구하는 후학들이 몇분이나 될지 걱정되네요...

 조선생님의 우리나라 전통문화는 제 주관적으로 표현하면 막걸리 한잔 걸치고 굿을 보면서 한바탕 같이 어울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신나는 문화...흥이 절로 나는 문화... 예전 각설이의 육자배기같은 거죠... 작년에 왔던..... 여기까지만 알지만요.....

 야나기 무네요시의 민예론만 있던 시대, 서구문화가 지상최대였던 시대(오리엔탈리즘 이런 비스무리한것도 없었겠죠^^)에 사셨으면서도, 50년대후반,60년대에 이미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고민했던 선생님의 글들... 훗날 70년대 80년대 민중문화의 주춧돌이 되셨던 조선생님의 문화론...주로 도깨비, 호랑이 민화에 기반을 둔...를 체계화하는 것은 후학들의 일이 될거 같습니다.

 <요즘 알라딘에서 10여년 눈팅(이상한 국적불명 언어네요 ㅜㅜ)만 하다가, 이런 책들은 꼭 소개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중심으로 주말을 이용하여 간추리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눈팅하시다가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