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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4년 10월
평점 :
책의 내용에 앞서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읽으며 순간순간 든 생각이나 느낌을 정리해 보자면...
작가는 이 책을 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공부를 했을까... 하는 것이었다.
창경궁 대온실은 100년도 넘게 이어져 온 기나긴 역사 속 건물인데 그 건물과 그 안에 담긴 역사를 풀어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조사와 연구와 검증을 했을까.
<클라우드 쿠쿠랜드>의 엔서니 도어 작가가 700년의 역사를 아우르는 방대한 이야기를 하나로 귀결시키는 거대한 서사가 주는 그 감동을 나는 김금희 작가의 <대온실 수리 보고서>에서도 비슷하게 느꼈다.
1909년에 지어진 창경궁 대온실을 수리하는 이야기로 시작하여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 역사의 세월 속에 겪었던 이야기들과 낙원하숙의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맞물려 거대한 서사를 이끌어가는 작가의 힘이 놀라웠다.
마쓰이에 마사시 작가의 글을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처음 그의 소설을 읽고는 '아... 이렇게 섬세하고 세밀하게 표현하는 작가도 있구나'하는 생각을 했었다. 미려하게 써 내려간 글은 마치 작가가 써놓은 글대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느낌마저 들게 만드는 힘이 있었는데 김금희 작가 역시 이번 <대온실 수리 보고서>에서 그런 경험을 했다. 매혹적인 문장들이 얼마나 많은지... (게다가 마쓰이에 마사시의 첫 소설이 건축에 관한 소설이었는데 소재 면에서도 비슷~)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면밀함이 돋보였던 글이었다 생각한다.
힘들더라도 때론 자신의 상처와 고통을 정면으로 직시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주인공 영두는 잊고 싶었던 낙원하숙의 기억들을 온실 수리라는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맞닥뜨리게 된다. 묻어두었던, 회피했던 과거의 상처를 대온실 수리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고 재건하게 된다.
창경궁 대온실 수리에 참여하게 된 영두. 하지만 창경궁과 함께 자연스럽게 떠오른 기억은 그리 반갑지 않은 외면하고 싶은 상처였다.
석모도 출신인 영두는 중학교 시절 할머니와 친분이 있는 안문자 할머니가 살고 있는 서울 낙원하숙에서 할머니의 손녀 리사와 함께 생활하게 된다.
대온실 수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영두의 상처였던 낙원하숙에 관한 과거 이야기, 일본인이었던 문자 할머니(마리코)의 과거와 묻혔던 진실이 대온실 수리 과정에서 하나씩 밝혀지게 된다.
"아니란다, 영두야. 그건 인간의 시간과는 다른 시간들이 언제나 흐르고 있다는 얘기지."
할머니는 딩 아주머니네를 다녀오던 어느 날처럼 나를 말간 눈으로 바라본다. 마치 그렇게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돌릴 수 있다는 듯이. 그때는 할머니의 진심을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이제 나는 이해할 수 있다. 세상 어딘가에는 지금이 아닌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스미와 산아가 서로 손을 흔들며 버스 정류장에서 헤어질 때 나는 완성이라고 여겼던 보고서를 다시 이어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산아와 함께 원서동을 천천히 걸어 낙원하숙 앞에 섰다.
"이모 나무 좀 봐!"
한때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서늘해지던 곳이지만 이제는 많은 이들의 각자 다른 시간을 거느리고 있는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별처럼 느껴지는 집. 나는 잎을 다 떨구고 가지를 층층이 올려 나무로서 강건함을 띠는 벚나무를 올려다보다가 기쁘게 뒤돌아 다시 섬으로 향했다.
숨겨진 비밀, 밝혀지는 진실 속에 아픔이 치유되고 회복되는 과정을 보며 건축에 있어 보수와 재건이 필요하듯 우리의 인생도 필요에 따라 보수하고 재건하는 시간이 필요함을 느끼게 한다.
어린 시절 창경원으로 놀러 갔던 기억이 있다.
사람의 심리 묘사와 섬세하며 면밀한 표현들이 탁월했던 <대온실 수리 보고서>로 인해 창경궁 대온실을 가게 된다면 작가가 표현했던 그 문장들이 절로 떠올려질 것만 같다.
이 가을, 마음 뻐근해지는 감동과 함께 다시 한번 꺼내 읽고 싶어지는 책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