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름은 어디에
재클린 부블리츠 지음, 송섬별 옮김 / 밝은세상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받고 보니 표지 아래쪽에

"오해 마시라.

이 소설은 죽은 소녀를 다룬 추리물과 전혀 다르다."

라고 적혀 있다. 

그리고 1장을 펼치면 첫 문장이


"내가 죽게 될 도시에 대해 처음 알게 된 사실이 뭔지 알아?"

라고 쓰여있다. 그러니까 책의 주인공이 곧 죽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걸 주인공이 알고 있다?

그렇다. 책 속의 주인공 앨리스 리는 자신이 죽게 된다는 걸 알고 있고 자신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책에서 할 예정이다.

본문 내용에서처럼 누구인지도 모를 사체를 통해 죽은 자를 분석하고 추측하는 대신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독자로 하여금 책 속 주인공 본인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을 취한다는 점이 이 책의 포인트다.




살인 사건은 분명 일어났고 그걸 해결하는 수사나 범인을 추적하는 추리소설이 아니라 <네 이름은 어디에> 작가인 재클린 부블리츠는 조금 다른 관점으로 사건을 접근하고 있다.

직접 피해를 당한 주인공이 자신이 겪었던 상황과 감정들을 누군가에게 전하는 방식으로 풀어놓은 소설이라는 점에서 일반 추리소설과는 관점 자체가 확연히 다르다.

그래서 색다르고 이색적이고 인상적이며 책을 덮고 났을 때에도 긴 여운이 남는 소설이었다.

갈수록 무서워지고 범죄도 대담해지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세상 속에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여성들이 얼마나 많을까... 주목받지도 못하고 금세 잊히는 희생자들.

오히려 범죄를 저지른 범인들은 오래오래 회자되고 각인되어 입에 오르내리는 세상을 보며 작가는 이 책에서 말하고 싶어 한다. 피의자가 아닌, 피해자를 기억하길





<네 이름은 어디에>의 주인공이자 피해자인 앨리스 리는 위스콘신의 작은 마을에서 600달러와 라이카 카메라 하나를 들고 무작정 뉴욕으로 온다. 같은 날 호수 멜버른에서 사랑의 아픔을 가지고 뉴욕으로 온 루비.

이 둘의 접점은 전혀 없으나 앨리스 리가 허드슨 강가에서 강간당한 후 살해당한 현장을 처음 목격하는 것이 루비가 되면서 둘은 하나의 끈으로 연결되어 끝까지 이야기를 끌어간다.

나이도 다르고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이인 앨리스와 루비지만 그녀들의 공통점은 꿈을 안고 뉴욕으로 왔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미래를 꿈꾸며 찾아온 도시 뉴욕에서 꿈을 채 피워보기도 전에 죽어버린 앨리스. 사랑이라고 믿었던 사람에게서 배신을 당하고 여전히 외롭고 갈팡질팡하는 루비의 삶에 앨리스의 죽음이 깊숙하게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결국 앨리스의 죽음을 통해 루비는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앨리스를 죽인 범인도 찾게 되고.

비록 만난 적 없고 대화를 실제로 나눈 적 없는 두 사람이지만 이 둘의 이야기가 잔잔한 울림과 감동을 준다.

책 중간중간에 아름다운 문장들도 많고 기억해 두고 싶은 문장들도 많았다.

강간, 살인, 피해자 신분 미상

어떻게 보면 잔혹하고 미스터리한 스릴러 소설이 될 수도 있는 소재이지만 전혀 상반되게 서정적이며 가슴 아프게 파동을 주는 소설로 만들었다. 그래서 너무도 인상적이었던 <네 이름은 어디에>

범죄가 일어나는 곳에서 대부분의 희생자들은 여자와 노약자들이다. 작가는 이러한 사회적 비판과 함께 살인사건이라는 소재를 통해 죽은 자의 입장에서 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추리소설보다 아름답고 인상적이며 몰입하며 읽었던 책이다.


<협찬도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