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생기는 기분
이수희 글.그림 / 민음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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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언니가 있다. 15년 동안 외동딸로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자란 언니. 15년 만에 태어난 동생. 15살의 나이 차이가 나는 언니와 나. 일반적인 가정에서는 보기 드문 케이스였다. 자매지만 15년이라는 간극으로 언니와 나는 각자 외동딸처럼 자랐다. 어느 정도 자라났을 땐 언니는 이미 성인이 되어 독립을 했기에 자매지만 함께한 시간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동이 아님에도 외동처럼 자라 형제가 많은 집의 친구들이 부러웠었다. 언니랑 싸웠다며 투덜대는 친구들의 푸념을 듣노라면 '나도 언니랑 싸워봤으면 좋겠다'싶었다. 언니와의 나이 차이가 워낙 많이 나다 보니 우린 집안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형제들 간의 다툼 이런 것도 겪어본 적이 없었다. 한 마디로 싸울 레벨조차 되지 못했다.

이제는 내가 두 딸을 둔 엄마가 되었다. 두 딸은 5살 터울이 나는 자매지간인데도 함께 잘 놀고 서로 잘 통하는 걸 보면서 내가 어릴 적에 누리지 못한 것들을 두 딸들은 함께 누린다는 생각에 절로 흐뭇하게 바라보게 되곤 한다. 형제, 자매, 남매 지간이라면 흔한 풍경일 텐데 그걸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부러움의 한 풍경이 되기도 한다. 언니가 있지만 언니와 지지고 볶고 싸우고 투닥거리는 걸 경험해보지 못한 나는 내 딸들을 통해 형제간의, 자매간의, 남매간의 일상적인 풍경과 정을 느끼곤 한다.

내가 초등학교 때 언니는 결혼을 했다. 그렇다 보니 우린 여느 자매들처럼 함께 일상을 나누는 시간이 없었다. 엄마처럼 늘 챙겨주는 언니와는 멀리 떨어져 지내지만 우린 여전히 친하고 싸워본 적이 없는 그런 자매지간이다.

나는 동생의 입장이고 언니가 되어 본 적은 없기 때문에 언니의 마음을 생각하거나 헤아려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내 딸들이 태어나고 자라나는 것을 보면서 언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한 번도 언니가 그런 말은 하지 않았지만 15년 동안 외동딸로 살다가 갑자기 동생이 태어났을 때의 혼란과 충격은 얼마나 컸을까... 싶다.

얼마 전 폭우가 내리던 날 구조해 온 아기 고양이가 우리 집에 생활하게 되면서 기존에 살고 있던 우다다 패거리들이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는 것을 느낀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고 예쁜 짓만 골라가며 하는 두부는 가족 모두의 마음을 빼앗기에 이르렀고 아무래도 집에 있는 다른 아이들은 소홀해지게 마련이니까. 그런 섭섭함이 아이들의 눈빛에서, 행동에서 느껴지더라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들고 집에 있는 아이들에게 더 애정을 쏟고 여전히 사랑한다고 불안해하지 않게 해줘야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기가 태어났으니 그것도 15년 만에 태어났으니 얼마나 예쁘고 눈에서 꿀이 떨어졌을까... 아기는 손도 많이 가니 당연히 언니는 살짝 뒷전이 되었을 것이다. 엄마는 과거를 돌아보며 내게 그런 말을 했었다. 그때 언니가 많이 섭섭했을 거라고. 게다가 사춘기 시기인데 아기가 태어나 아기에게만 신경을 썼으니... 말은 안 했지만 얼마나 속상하고 섭섭했을까... 하고 말이다. 그때를 생각하면 늘 미안한 마음이라고 했었다. 엄마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렇겠다 싶었다. 미워할 만도 할 텐데 언니는 어려도 한참 어린 동생을 많이 사랑해 줬고 지금도 여전히 사랑해 주고 있으니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이다.

"동생이 생기는 기분"은 이수희 작가의 4컷 만화로 이루어진 책이다. 단순한 그림체에 소소한 에피소드들이지만 나는 이 책의 내용들을 보면서 특별한 감정이입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을 통해 언니의 마음을 조금 더 헤아리게 되었고 언니는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책장을 넘겼었다.





작가와 동생은 10살 터울이지만 그래도 함께 자라면서 많이도 싸우고 같이 놀고... 함께 성장한 이야기들을 기록하고 있다. 싸우다 보면 서로 앙금이 남기도 하고 서먹해지기도 하기에 이 책에서는 동생과의 멀어진 거리를 좁히고자 하는 언니의 마음도 적혀 있어 따스함을 전해준다.

우리는 가족이니까 쑥스러워 표현하지 못하고 가족이니까 당연히 알겠지~ 하는 마음에 그냥 묵혀두고 지나치는 수많은 감정들이 얼마나 많은가. 현재 그리 사이좋은 자매는 아니지만 그래도 서로 안부를 묻고 용건 없이도 전화를 해서 수다를 떨 수 있는 사이이길 글에서나마 바라는 언니의 마음을 보면서 우리도 가족이니까 좀 더 표현하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4컷 만화와 중간중간에 솔직하게 쓰인 이야기들이 잔잔한 감동을 전해주는 책이다. 가볍게 읽을 수 있으나 형제, 자매, 남매를 둔 이들에게는 공감을 넘어 가끔 묵직하게 다가오는 부분도 있을 책이다. 동생이 있고 언니나 오빠가 있는 이들에게는 요즘 유행하는 "라떼는 말이야~~"처럼 그 시절을 추억하며 떠올리기에 충분한 책이다.



우리는 사이좋은 자매가 될 수 있었다. 그럴 수 있는 순간들이 함께 자라는 과정 곳곳에서 울리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은 지났고 동생은 자랐다. 나의 사춘기가 끝났을 때 동생의 사춘기가 시작된 것처럼, 우리는 수학 시간 칠판에 그려진 평행선처럼 각자 끝없이 길게 자라고 있었다. 그래도 다시 그때처럼 전호ㅘ벨이 울렸으면 좋겠다. 너의 이름을 확인한 나는 부드러운 표정을 지을 것이다. 오늘 학교는 어땠냐고, 무슨 일이 있었냐고, 언니는 오늘 이런 일이 있었다고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고 싶다. 그리고 가끔은 우리만 아는 농담에 동시에 웃음을 터트리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통화하자, 수진아. 언니가 이제는 잘할 수 있어.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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