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제국
에번 D. G. 프레이저 외 지음, 유영훈(류영훈)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최근에 읽은 에세이집에서 작가와 공감대를 형성한 부분이 있었다. 작가는 항상, 뭔가가 먹고 싶다고 했다. 내가 바로 그렇다. 오늘처럼 추운 날에는 뜨끈뜨끈한 샤브샤브가 먹고 싶고, 짭짤한 죽까지 만들어 먹고 나면 찐득한 핫초콜릿이 먹고 싶고, 그러고 나면 샤베트나, 하다못해 치클껌이라도 씹어야 한다. 어디에 뭐가 맛있더라, 하는 맛집 블로그도 운영했었다. 그런 나의 모습을, 작가는 '삶에 대한 의욕이 많은 사람'으로 긍정적으로 표현해 주었다. 생각해보면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도 성적 욕구는 채워야 했던 까뮈랑 나랑 다를 게 뭐란 말인가. 나는 절대로 자살하지는 않을 거라는 것 빼고.

그래서 이 책을 접하기 망설여졌다. 혹시나, 음식 속에 숨겨진 '흑역사'를 까발리는 책은 아닐까. 몇 년 전에 육식에 숨겨진 비밀에 대한 책을 읽고 고기와 우유, 계란도 먹을 게 못 된다는 생각을 했(고 어느새 망각의 동물인 나는 다시 고기를 입에 달고 살게 되었)던 터라 선뜻 책을 펴지 못했다.

다행히, 이 책은 우리가 알면서도 외면하고 싶어하는, 우리가 먹는 고기들이 어떤 환경 하에서 길러지고 이러한 문제가 인간과 지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조명을 중심으로 하지는 않는다. 대신 로마 시대와 그 이전 주나라, 상나라 시절부터 오늘날까지 우리 인간의 삶을 '음식'이라는 테마로 풀어낸다.

마르크스를 따라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을 나는 '투쟁'이라는 테마로 이해했다.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닥쳐올 전쟁은 '식량 전쟁'이 될 것이라고들 한다. 책의 서두에서 저자는 온 인류가 처한 식량의 문제에 대해 언급한다. 지구의 기온은 점점 농사짓기에 적합하지 않도록 변해 가고 있고, 토양은 점점 빈곤해져 가는데 식량을 소비할 인구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인류가 이를 직면하고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분류해보면 '음식의 제국'의 역사는 인간의 두 가지 투쟁, '자연 대 인간', '인간 대 인간'의 투쟁으로 풀어볼 수 있을 것 같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환경, 노동 등의 사회적 문제는 더욱 많아진다. 말 그대로 "복잡한 매듭을 물고 있는 것"이다.


"현대 경제에는 생산과 소비 사이에 복잡한 일련의 연결 과정이 있다. 다시 말해, 농부가 렌즈콩을 기르는 순간과 소비자가 이것을 먹는 순간 사이에 연료, 노동, 가공, 포장, 광고, 유통 등의 세세한 단계가 빼곡히 들어차 있는 것이다. 이 모든 비용을 계산하기란 매우 어렵다."


먼저 자연 대 인간의 투쟁을 살펴 보면, 인류는 보다 많은 생산량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관개를 통해 물을 대고, 질소를 비료로 활용하는 법을 익혔으며, DNA를 조작하여 더 많은 수확량을 얻는 쾌거를 올렸다. 그리고 이렇게 얻어낸 음식물을 절이고, 얼리는 등 오래 보관하는 법도 알아냈다. 한편 인간은 '고기'를 통하여 필요 이상의 단백질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이제는 귀족이 아닌 일반인들도 '고기 반찬'을 먹을 수 있는 시대에 들어섰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모든 노력들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킨 예수를 흉내낸 장난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더 많은 수확량을 얻기 위한 유전자 조작은 더 많은 화석연료와 더 많은 농약을 필요로 했다. 고기 한 근을 생산하는 데 이보다 더 많은 옥수수가 들어간다. 그리고 이러한 식습관은 '광우병'과 같은 질병의 원인이 된다. 이러한 부분들은 인간의 성과를 자랑하는 데 가려 상당 부분 무시되었다. 그리고 기술을 믿는 많은 사람들의 낙관론에도 불과하고 저자는 '한계에 다다랐다'고 진단한다.


"이제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식생활을 환경적 명령에 따라 바꿀 것이냐, 경제적 명령에 따라 바꿀 것이냐. 어느 쪽이 되었든 인류의 식습관은 변화해야만 한다.(p.232)"


어떻게 보면, 자연은 태초부터 '그냥 있었다'. 인간이 '살고자' 하는 데서 나아가 '더 많이 가지고자', 욕구를 확장시켜 욕망에 이르면서 '그냥 있는 자연'과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자연과 인간의 투쟁이 진행중인 가운데, 인간과 인간의 투쟁이 일어난다. 이 책에 나오는 인간의 유형을 세 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굶주림을 달래기 위해 '먹고 싶어하는 자', 미식의 즐거움을 향유하기 위해 '즐기고 싶어하는 자', 그리고 이 둘 사이를 오가며 '부를 축적하고 싶어하는 자'. 후추를 찾고자 시작된 식민지 시대와 몇년전 나를 메스껍게 만들었던 <정글>에 나오는 고약한 사업가의 이야기는 사실은, 현재 진행형이다. 공정무역에 앞장서서 '사랑받는 기업으로'까지 꼽히는 스타벅스의 공정무역 양이 사실은 5%, 벤티 사이즈의 한 방울에 그친다는 비유는 적절하다. 비단 스타벅스 뿐이겠는가. 식량 문제를 경제 논리로 해결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는 쉽게 풀 수 없는 난제다. 장사꾼의 이윤이 빈민층의 건강보다 우선시될 때 폭동이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영화 <레미제라블>의 문제는 오늘날도 반복된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저자는 이상적인, 그리고 비현실적인 답을 일방적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공정무역과 슬로푸드같은 최근의 트렌드를 귀띔한다.


"21세기의 핵심적 질문 가운데 하나는 '전통적' 농법을 쓰는 작은 농장들만으로 과연 도시 인구를 먹일 수 있겠냐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도시와 문명을 유지할 수 있느냐는 얘기다. 여기에 대한 대답은 우리의 도시, 경제, 식생활, 건강, 그리고 산다는 것과 먹는다는 것의 의미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 달려 있다."(p.300)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에 중요한 것은, 인간의 욕망까지 멈출 수 있는가하는 문제다. 전지구적인 경쟁에서 화합으로 어떻게 넘어가느냐가, 음식의 제국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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