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게 뭐야, 내가 좋다는데 - 모로 가도 뭐든 하면 되지
이해범 지음 / 들녘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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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방황에 대한 책이다. 책의 마지막 장 - 인생 진짜 짧을 수도 - 에서 작가는 말한다. “난 방황을 사랑한다. 방황은 말한다. 이리저리 가보고 헤매면서 자신이 갈 수 있는 곳까지 가보라고. 아는 길만 가면 재미도 없고, 또 인생은 좀 헤매기도 해봐야 추억도 생긴다. 원래 추억이라는 건 즐거웠던 추억보다는 힘들고 험난한 기억이 오래오래 남는 법이니까.” 방황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이리저리 헤매어 돌아다님’, ‘분명한 방향이나 목표를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함’이라고 나온다. 사전적 의미를 보면 대체 작가의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책의 전반에 걸쳐 속도보다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가 책의 말미에 ‘방황’에 대해 이야기한다니. 그러다 책의 부제가 눈에 들어왔다. 『모로 가도 뭐든 하면 되지』 어쩌면 작가가 말하는 방향이라는 것이 현실적이며 이상적이라고 우리들이 말하는 피상적 방향에서 벗어나 오히려 보편타당성을 지닌 인식, 그러니까 본질에 보다 가까워지는 방향에 대해 말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칸트는 『윤리형이상학 정초』를 통해 의무의 개념이 결코 경험으로부터 도출될 수 없다는 사실은 의무로부터 생겨난 법칙이 단지 인간에게뿐 아니라 이성적 존재일반에게도 타당한 보편적인 법칙이라는 점에서 더욱 분명해진다고 밝혔다. 작가가 칸트의 이론을 인용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지난(至難)한 경험들이 피상적 방향을 향하며 그의 마음속에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 철학 개념이 자리 잡혔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통찰일 수도 있겠다.

프롤로그가 시작도 되기 전에 작가의 짧은 편지가 남겨져있다. “방황이라 생각했던 일도 돌이켜보면 방향 있게 가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짧은 편지의 첫 줄이 책의 시작부터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편지에서 ‘나의 책’을 기대하고 있다는 말을 남겼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오겠지, 나도 마음속으로는 몇 번이나 쓰고 지웠던 것이 ‘나의 책’이다. 그것이 문학일지, 비문학일지도 정해지지 않은 ‘나의 책’이라는 것이 무어길래 기대를 한다는 것인지. 책을 다 읽고서 작가에 대한 관점이 조금은 바뀌었다. 책이라는 것은 문장으로 시작해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고 생각했는데, 이해범 작가의 책을 읽고 나니 과연 우수한 문장이 좋은 책을 만든다는 보장이 있는가, 반대로 우수하지 못한 문장으로는 좋은 책을 만들 수 없는가에 대해 생각했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책에는 근사한 문장 대신 삶의 진정성이 있고 제법 그럴싸한 제시 대신 통찰이 있다. 10년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낚시만 하는 한량도 지난 시간 무언가를 얻고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낚시만 해온 지난 10년은 그에게 의미 있는 시간인 것처럼, 이립 5년 차의 작가에게 지난 방황의 시간들은 나름의 방향이 되어 삶의 목적지로 이끌고 있음을 믿는다.

대학에 가고 취업을 하고 적당한 나이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남들보다 많이는 아니더라도 괜찮은 직장과 적당한 급여가 사람의 급수를 정하는 세상이다. 근본적인 행복에 대해 생각조차 해보지 않는 우리는 10분위 분배율 속에 살아간다. 이 책이 독자에게 남기는 단 하나의 메시지를 꼽으라면, 그것은 올바른 방향 제시가 아닌, 현재 가고 있는 방향의 타당성에 대한 물음이다.

그런 날이 올지 모르겠지만 언제가, 나에게도 책을 집필할 기회가 온다면, 잘 지내고 있다고, 당신도 잘 지내고 있길 바란다고, 짧은 편지와 함께 ‘나의 책’을 건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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