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한 내일들 - 자기 삶의 단독자로 선 90년대생 10명과의 대화
유선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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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8. 유선애 『우리가 사랑한 내일들』 : 한겨레출판


지금의 나는 시스템 밖에서의 삶을 살고 있다. 언젠가부터 내가 꿈꿔온 온전한 나의 세상이다. 시스템으로부터 호명되고 부여받은 자리와 명함이 얼마나 손쉽게 사라질 수 있는지, 그 신기루의 정체를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문장이 굉장히 기억에 남는다. 생존은 어느 세대, 누구에게나 중요한 일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당연히 생존을 제1의 목표로 살아간다. 물론 나 역시 먹고사는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나 이상하리만치 나는 ‘생존’이라는 단어가 퍽 천박하게 느껴진다. 그저 먹고, 싸고, 자고, 또다시 일어나 노동을 하고, 먹고, 싸고, 잠들기를 반복하다가 때가 되어 은퇴를 하고 외로이 죽음을 맞이하는 삶이란 저주가 아닌가. 저자는 시스템과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선망하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혁명이 불가능한 세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혁명이 아닐까라고 말한다. 모두가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꿈을 꾸며, 같은 직장을 원한다면 우리가 기계와 다를 게 무엇인가. 거수 보행이 금지되고, 반바지를 입을 수 없으며, 실내에서조차 실내화(슬리퍼)를 신지 못하던 회사 생활을 생각하면 현재 내가 일하는 환경은 감히 천국과 비교할만하다. 물론 모두가 나와 같진 않겠지만, 스스로 좋아하고 사랑할 수 있는 일, 의미 있는 일을 하고 각자의 미감과 세계관, 도덕적 기준과 윤리를 양보하지 않으며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을 탕진하고 욜로 하는 대신, 복잡하고 어려운 자기 기준 아래 오늘을 사는 사람들. 그들은 오늘을 제대로 살지 않으면, 오늘을 미루면, 내일도 없다는 진리를 일찌감치 깨달은 사람들이다. 그들이 사랑한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 시스템의 안과 밖에 편견을 두지 않고 ‘어느 위치’의 ‘누구처럼’ 되기 원하지 않는 사람들, 오롯이 ‘되고 싶은 나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저자 유선애는 기획 기사 3.8 세계 여성의 날 특집 ‘90년생 여자 사람’에서 다양한 직업을 지닌, 젠더 감수성의 정도가 각기 다른 33명의 1990년대생 여성들과 ‘대한민국에서 20대 여성으로 사는 일’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때마침, 1990년대생, 밀레니얼 세대를 호명하고 새로운 청년 세대를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많은 세대론 안에 저자가 만난 90년대생들은 없었다. 그것이 평균 연령 28.4세, 각자의 방식으로 커리어를 일구며 자기 삶의 단독자로 살아가는 1990년대생 여성 10명과의 대화를 한데 묶은 이유라고 한다. 이 책은 세대론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될 일이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20~30대 많은 여성들이 왜 이토록 이들을 사랑하고, 지지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고민하다 보면 새 세대의 가장자리를 더듬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프로듀서 예지를 시작으로 나 역시 관심 있게 바라보는 소설가 김초엽, 뮤지션 황소윤, PD 겸 MC 재재, 다큐멘터리 감독 정다운, 배우 이주영, 사이클 선수 김원경, 패션 모델 박서희, 영화감독 겸 작가 이길보라, 작가 이슬아까지 10명의 90년대생을 대표하는 여성들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건너 뛴 세대와의 소통 길을 열 수 있다.


돌이켜보니 10명의 여성 모두 사랑하기를, 존엄하기를 선택한 사람이란다. 미워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낭비하지 않는, 손쉬운 비관과 혐오를 거부하고 어려운 낙관을 실천하는 사람들과의 대화였다며 그의 말을 품고 있다가 외롭고 추운 날을 보내고 있을 누군가에게 들려고 주고 싶다는 저자의 말은 인터뷰집을 읽는 내내 고스란히 전달되어 세대 간의 이해가 아닌 공감으로 자리 잡는다. 세대 간의 갈등은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역시 마흔 줄에 접어들며 이제는꼰대소리를 피하기 힘들게 되었다. 그나마도 내가 세대 간의 갈등과 격차를 줄이기 위해 있는 일이란, 이해하지 못할 생각들을 함부로 이해하려 하거나, 공감하지 못할 일들을 공감하는 척하는 아니다. 나는 그저 그들의 말을 듣고, 들어줄 뿐이다. 어쩌면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고 당연히 공감을 못하겠지만 나는 여전히 우리의 앞날을 책임질 그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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