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로 간 스파이
이은소 지음 / 새움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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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5. 이은소 『학교로 스파이』 : 새움


소학교에서 그가 배운 남한의 움막촌에 사는 사람들, 다리 밑에서 잠을 자는 아이들, 껌을 파는 아이들, 학비가 없어 학교를 가는 아이들, 구걸하는 아이들, 배를 곯는 아이들. 해주는 점심으로 옥수수 개를 먹으면서도 통일이 되면 남한 아이들에게 옥수수를 나누어 주리라 다짐했다. 감정 거세 훈련을 받기 전이었던 림해주는 아직 연민이라는 감정을 느낄 있었다. 열네 살에 5과에 선발되어 조선소년단에 입단하여 깃발 앞에서 선서를 하고 붉은 넥타이를 둘렀던 림해주가 모든 훈련을 마치고 남한 땅에 발을 디뎠을 그곳은 적어도 그가 알고 있던 남한이 아니었다. “인도에는 사람도 많고, 인도 가장자리에는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이 고층 건물이 빡빡이 있다. 밝고 환하다. 눈이 부신다. 밤이, 밤이 아니다.” 이것이 그가 처음 서울을 마주하고서 느낀 감정이다.


그토록 바라던 임무에 실패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 했던 림해주에게 다른 임무가 떨어진다. ‘임해주라는 새로운 이름, ‘선생님이라는 새로운 신분. 임무에 실패한 남파공작원 림해주는 그렇게 임해주라는 인물로,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을 이끄는 선생님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언젠가 훈련을 받으며 자신이 먹던 옥수수 개를 나누어 주고픈 연민은 아련한 감정으로 자리 잡았을 , 해주에게 2 학생들을 상대하는 일은 지난 어떤 훈련보다 혹독한 일이 되어버린 오래다. 훈련에서는 들어보지도 못한 언어들이 난무했고 배고플 알았던 그들은 남아도는 음식을 어쩔 몰랐다. 북한에서는 없어서 먹을 음식들이 남한에서는 동물에게도 먹이지 않고 버려져 갔다. 꺼지지 않는 불빛은 하루를 쓰고도 도시는 어두울 줄을 모른다.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할 없을 만큼 이기적이다. 땅에 도덕, 윤리, 예의, 질서, 규칙 따위는 사라진지 오래인 것만 같다. 특히 스승을 존경할 모르는 학생들을 마주하는 해주는 감정을 추스르기 힘들다.


해주의 임무는 남한의 아이들이 북화 되는 것이다. 해주의 가르침으로 인해 남한의 아이들이 스스로 북을 향해 가는 . 그것이 해주의 새로운 임무다. 그러나 질풍노도의 시기 2 지나는 남한의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은 어쩐지 북에서의 혹독한 훈련보다 힘들다. 과연 해주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칠 있을까.


언젠가부터 2병이란 말이 일상적 단어가 되어있다. 병맛에 더해 허세 찌든 모습을 보고 있자면 같은 나라에서 같은 시기를 지나온 나로서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매일매일 새롭게 생겨나는 단어는 정말 내가 사용하는 언어가 맞는지 의아할 지경이다. 어디 그뿐인가,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그들을 이해하고 동화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이은소 작가는 2병과 남파공작원이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소재를 적절히 버무려 유쾌하면서도 묵직한 감동이 느껴지는 소설 『학교로 스파이』를 선보였다. 독특한 조합은 읽는 내내 호기심을 자아낸다. 주인공 임해주(정천) 학교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시작된 남한에 대한 오해는 점차 이해로 변모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사상과 신념이 흔들리고 이윽고 그는 민주주의의 특성에 눈을 뜬다. 어제까지만 해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던 많은 것들이 이제는 일상이 되어간다.


이은소 작가의 『학교로 스파이』를 읽고서 나는 이우환 화백의 <선으로부터>라는 작품을 떠올렸다. 조금은 불규칙해 보이는 선들은 한걸음 떨어져 멀리서 바라보면 하나의 패턴이 된다. 다시 가까이 다가가면 제각각인 선들은 하나의 객체로서 자유롭다. 겉으로는 도덕도 윤리도, 예의, 질서, 규칙 같은 것들도 없어 보이던 남한의 학생들은 저마다 다른 색을 내고, 다른 소리를 내지만, 막상 한걸음 가까워지거나 조금 멀어지며 함께한 그들에게선 나름의 질서가 있다. 그리고 남한의 질서를 느끼며 오해가 이해로 변모하는 순간 이미 해주는 정천이 아닌 온전한 해주로서 작용한다. 해주와 석주가 아이들을 지도하며 그들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끈끈함이 생긴다. 그것은 비단 해주와 석주 사이의 일만은 아니다. 학생들과의 끈끈함은 감정을 잃은 해주의 마음에 생기를 불어 넣는다. 소설은 3자의 입장이 되어 우리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임해주를 통해 이미 잊고 지낸 분단의 현실과 민족애에 대해 깊은 질문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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