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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1 ㅣ 대한민국 스토리DNA 27
김진명 지음 / 새움 / 2020년 7월
평점 :
3250. 김진명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1~2』 : 새움
서울지검 특수 부장 최영수로부터 받은 한 통의 전화는 경찰 출입 기자 권순범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1978년 폭행치사로 수배 중인 잔나비파 두목 박성길이 자신의 수배를 풀어주겠다는 조건으로 받아들인 살인 교사는 신원미상의 교통사고로 막을 내리고, 약속대로 박성길의 수배는 자연스레 해제된다. 언뜻 조폭이 연루된 살인 교사 정도로 넘어갈 수 있는 이 사건을 베테랑 기자 권순범은 쉬이 지나치지 않는다. 형사 박준기와 함께 사건을 조사하던 권순범은 사고가 일어난 북악스카이웨이가 평소 교통사고가 좀처럼 일어나지 않으며 지난 십 년간 인명 사고도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거주지가 미국이며 주소지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는, 연고자도 목격자도 없는 피해자 이용후를 수배자인 조폭 두목을 이용해 살인 교사까지 내렸다는 점에서 권순범은 이 사건이 평범하지 않은 사건임을 직감한다.
너무나 말끔히 정리된 이 사건은 작은 실마리조차 남기지 않은 채 권순범의 기억에서 잊혀 가는 것만 같았다. 후배 강인호는 최근 문제가 된 동국물산 강회장의 아들이 이슈된 사건에 권순범의 도움을 요청한다. 원정 도박, 조폭과 야쿠자, 거대 자본의 이동 등 일련의 사건들을 쫓던 권순범은 동료 기자로부터 미국에 거주하던 물리학자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박정희 대통령의 핵개발 계획 중심에는 물리학자 이용후가 있었다. 단서를 쫓던 권순범은 서울지검 특수 부장 최영수의 도움으로 이용후를 일 년간 모셨다는 신 마담을 만나기 위해 삼원각으로 향한다.
정치, 언론, 외교, 남북문제와 일본, 미국의 정치 개입, 폭력과 범죄, 핵 그리고 이어지는 전쟁까지 빠른 템포의 소설에서 재미를 줄 수 있는 요소는 모두 들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우리 민족의 한을 잘 버무려 시원한 결말로 끝을 맺으니 자칫 볼품없는 뷔페가 될 뻔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다행히 떨어진 입맛도 살려내는 맛있는 비빔밥이 되어 출간 1년 만에 300만 부 판매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김진명 작가의 초기 소설로 조금 딱딱한 면이 없지 않고, 아직 문체도 다듬어지기 전이지만 재미 면에서는 전혀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기에 시대를 대표하는 소설로서 또한 오랜 시간 스테디셀러에 이름을 올렸다는 점에 수긍이 가는 소설이다. 특히 이 소설에서 김진명 작가가 던진 신의 한 수라면 역시 민족의 한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은 연간 국내총생산 1조 7천억의 세계 경제 순위 10위, 군사력 순위 7위에 이름을 올린 한국이지만 소설이 출간된 당시만 해도 경제나 군사 규모가 지금 같지 않던 시기인데다 일본 침략과 강대국들의 틈새에서 눈치 보며 억압 받던 지난 역사의 한을 소설에서나마 통쾌하게 풀어갔다는 점이 성공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기억에 따르면 밀레니엄 축제가 한창이던 00년에 이 책을 처음 접하고 올해 새움 출판사의 『대한민국 스토리 DNA』 선집으로 다시 만나 재독하게 되었다. 재독이라 스토리를 대충 기억하고 있다곤 해도 여전히 재미있는 소설임에 부정할 수 없었다. 오늘은 소설의 리뷰와는 별개로 선집에 대해 잠시 언급하고자 한다. 나도 여러 선집들을 가지고 있지만 대체로 많은 선집들이 출판사의 설명과 같이 기존의 문학 평가에 따라 민족이나 국가, 근대성, 모더니즘, 분단 등 거대이념을 중심으로 하며 ‘애국’이나 ‘계몽’에 방점을 찍는다. 재미 면을 최우선 한 선집은 만나보기 힘들고 대신 의미에 집중하는 선집들이 많은 것이다. 반면 『대한민국 스토리 DNA』는 ‘자유연애’나 ‘사랑’ 등 대중적인 가치도 고려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책을 리뷰하며 처음으로 선집에 대해 언급하는 이유는 이제 막 독서를 취미로 시작한 라이트 리더에게 상당히 도움이 될 만한 선집이기 때문이다. 리스트를 보니 이광수의 『단종애사』를 시작으로 강경애의 『인간문제』, 염상섭의 『삼대』, 김승옥의 『무진기행』, 그리고 선집의 최신간이자 오늘 리뷰한 김진명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1~2』까지 주옥같은 국내 문학을 선보였다. 출판사에 따르면 이번 선집은 이야기성이 강한 소설을 골라 펴냈고, 드라마, 영화, 만화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의 원형(DNA)이 되는 작품 위주로 구성되었다고 하니 특히 국내 문학을 처음 접하는 라이트 리더에게는 좋은 국내 문학 길잡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