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하와 칸타의 장 - 마트 이야기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5
이영도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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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7. 이영도 『시하와 칸타의 : 마트 이야기』 : 현대문학


XX 하수처리장에서 태어난 그녀를 사람들은 시하라 불렀다. 열아홉의 시하는 쥐라도 잡을 요량으로 덫을 설치했지만 덫에 걸린 쥐가 아닌 요정이었다. 식용이 아닌 요정을 보고 심드렁한 시하는 거주지 헨리 동물원으로 발걸음을 향하고 헨리 동물원의 주인이자 마지막 인류를 보살피는 드래곤 헨리에게 거래를 요청한다. 요정의 힘으로 식용 버섯이라도 재배하려는 시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폐허가 땅은 이상 인간에게 배부름을 허락하지 않는다.

마트 퀸과 마트 무리들은 시하를 초대한다. 인류의 마지막 노래와 시들을 완벽하게 암송할 있는 유일한 인간 시하는 그러나 인류의 부활을 꿈꾸며 오염되지 않은 땅을 찾는 그들의 제안을 거절한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하수처리장에서 발견된 시하는 인류의 존속 따위엔 관심이 없다. 어쩌면 그녀에게 인류 종말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 앞에 나타난 요정은 인류의 끝을 알리고 있다. 요정 데르긴의 출연은 섬망에 빠진 인간의 환각이며 멸종 직전의 인류가 보는 마지막 환상종이었다.

시하와 함께하던 칸타는 기록자로서 존재한다. 마트에서 벌어지는 인간 무리들과 인류의 마지막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헨리 동물원을 떠나 마트에 도착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간다르바의 공격으로 칸타는 위기에 처한다. 칸타를 남몰래 흠모하던 시하는 그를 구하기 위해 요정 데르긴과 여정에 오른다.


국내 문학계에서 환상 문학의 입지는 여전히 좁다. 역사도 짧은 데다 적극적으로 집필하는 작가 역시 부족한 편이 아닌가 싶다. 그나마도 구병모 작가 정도가 떠오르지만, 『아가미』 같은 소설을 보아도 현실과 평행한 세계 속에 환상적 요소와 환상종을 도입하여 이야기를 끌어가니 독자적 세계관을 확보한 작가의 입지는 좁아지고 만다.

이영도 작가는 『시하와 칸타의 : 마트 이야기』를 통해 독립적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 환상 문학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은 세계 환상 문학에서 이미 많이 활용된 있으나 인류 멸망 전후를 표현한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 동물원이나 마트를 배경으로 한다는 것은 꽤나 신선한 설정이다. 게다가 환상 문학에서 표현되는 가장 강력한 마물 드래곤이 자신의 이름을 헨리 동물원의 주인으로 마지막 인류를 보살핀다는 설정 역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대체로 환상 문학의 난관은 세계관의 이해에서 온다. 환상 문학의 시작이라 불리는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을 보아도 그렇다. 인물과 종족, 배경 세계관의 설명을 이어가기 위해 작가는 엄청난 분량을 할애해야 한다. 이는 다시 말해 독자가 재미를 느끼는 시점까지 오래 걸리기 때문에 진입 장벽이 높아질 있다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이영도 작가의 『시하와 칸타의 장』은 세계관에 대한 이해 없이 시작부터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끌어간다는 장점이 있다. 대신 세계관의 이해를 더할 인물로 요정 데르긴을 해설 장치로 활용한다. 요정 데르긴은 소설의 전반에 걸쳐 주요 인물이기도 하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때에 해설자로서 종족과 배경, 세계관, 설정 등에 이해를 돕는다.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시하와 해설자 요정 데르긴 그리고 기록자 칸타의 이야기는 마트 무리와의 대립에 이어 간다르바, 갓파 종과의 갈등을 통해 긴장을 배가한다. 여느 환상 문학과 다르게 불친절한 요소들은 위트 넘치는 이영도식 대화를 거쳐 재미와 함께 세계관에 대한 이해를 더한다.


다양한 해석과 해설의 여지가 있는 소설이다. 동물원이나 마트, 환상종의 역할이나 사랑의 묘약 등의 의미에 대해 파고들만한 요소가 적지 않다.

작가는 『시하와 칸타의 : 마트 이야기』를 통해 결코 가볍지 않은 환상 문학의 발자취를 남겼다. 시하가 사랑의 묘약을 마시는 대목과 이어지는 엔딩은 명쾌한 답을 대신해 어려운 질문을 남긴다. 어쩐지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라스트 씬이 생각난다. 오랜만에 접한 환상 문학이었는데 기존의 환상 문학에 대한 거부감을 해소한 멋진 소설이며, 나아가 현대문학의 PIN 시리즈에서 『시하와 칸타의 : 마트 이야기』를 선보였다는 사실만으로도 환상 문학계에 의미 있는 행보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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