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나의 자서전 - 김혜진 소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4
김혜진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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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6. 김혜진 『불과 나의 자서전』 : 현대문학


홍이 다니던 직장을 반강제적으로 퇴사한 이유는 주류와 비주류 사이의 갈등에서 비롯된다. 처음엔 홍도 직장 동료들과 제법 어울리는 사이였지만 모두가 외면한 동료를 감싸면서 홍은 동료들과 멀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은근하게 눈치를 주었고 때로 대놓고 그를 감싸지 말라며 언질 했음에도 홍은 그들의 손을 끝내 뿌리쳤고 결과는 퇴사로 이어졌다.


홍이 태어나 자란 곳은 남일동이다. 달산 아래 허름한 그곳을 사람들은남일도 불렀다. 홍의 가족이 남일동을 벗어난 것은 순전히 우연에 기인한다. 행정상의 구역이 바뀌며 홍의 집이 있던 남일동 일대가 중앙동이 것이다. 단지 행정상의 구역 명칭이 바뀐 것뿐인데 어쩐지 홍의 가족들은 중산층이 마냥 반겼고 남일동에서의 모든 기억들을 지우기에 바빴다. 홍의 부모님에게 남일동은 불경한 것이다. 그러한 시선이 비단 홍의 가족만의 것은 아니었다. 남일동은 사회 보편적 기준에 미치는 곳이며, 경계 밖에 있었다. 희한한 일이다. 변한 것이라곤 행정 구역 상의 명칭뿐인데 홍은 언제 그랬냐는 남일동을 잊고 살았다. 퇴사 알레르기가 심해지며 다시 찾은 제일약국이 아니었다면 홍은 평생 남일동을 잊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홍이 주해와 그녀의 수아와 가까워진 것은 제일약국을 드나들면서였다. 홍은 퇴사 이후 관계에 지쳐있었다. 그러다 친해진 주해와 수아에게는 마음속 깊이 묻어둔 이야기들을 훌훌 털어낼 있었다. 남편 없이 수아를 혼자 키우는 주해는 남일동에서도 달산이 가까운 끝자락에 집을 구했다. 무슨 사연인지 타지 사람이 흔치않은 남일동에 주해의 등장이 반가운 것만은 아니었다. 주해는 많은 것들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올라 했던 좁고 가파른 골목길을 마주하는 대신 이제는 마을버스가 남일동의 구석까지 들어오게 되었고 밤이면 가로등도 제대로 설치되지 않아 달빛에 위험했던 골목엔 띄엄띄엄 밝은 가로등이 설치되었다. 골목 어귀에 쌓인 쓰레기 더미를 이상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동네 사람들을 설레게 하진 않았지만 주해는 남일동을 위해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질 것만 같던 홍과 주해에게 불행이 닥친 수아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였다. 우여곡절 끝에 수아를 중앙초등학교에 보냈으나 문제는 수아가 남일동에 산다는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주해가 전에 살던 동네의 사람들이 남일동까지 그녀를 찾았다. 주해가 남일동까지 이사 이유를 알게 홍은 주해를 외면하며 인물 간의 갈등이 증폭된다.


김혜진 작가는 9번의 일』에 이어 『불과 나의 자서전』에서 역시 사회가 당면한 과제를 첨예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계층 간의 갈등을 그린 문학은 상당히 많다. 그러나 『불과 나의 자서전』은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의 갈등 대신, 피지배계층과 소외계층(비주류) 갈등을 그리고 있다. 서민층과 극빈층의 대립은 다른 계층 간의 대립보다 오히려 가혹하기만 하다.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그랬고, 이청준 작가의 『당신들의 천국』이 그랬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보면 상위그룹과 하위그룹의 갈등이 아닌 하위그룹과 최하위그룹의 갈등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 김혜진 작가의 『불과 나의 자서전』 역시 우연한 계기로 행정구역 중앙동이 되어 남일동을 벗어난 홍과 이제 남일동에 자리 잡은 주해의 이야기를 통해 현실사회의 부조리한 면면을 섬세하게 담아내고 있다. 홍이 퇴사하기까지의 과정은 주류와 비주류의 갈등에 대해 소설의 시작부터 암시한 대목이다. 이후에 벌어지는 남일동 이야기는 중립 영역인 제일약국의 에피소드들로 채워진다.


불현듯 사회과학서 20 VS 80 사회』에서 리처드 리브스가 말한 사회의 불평등 프레임이 생각난다. 모두가 19 구도로 프레임을 나누지만 사실 상위 10% 90%와의 대립 밖에 있다. 사회 불평등에 실제 책임은 90%들의 대립과 갈등에서 생겨난다.

우리는 중앙동이며 동시에 남일동에 살고 있다. 가치의 크기는 상대적이다. 서민층이 극빈층을 외면하며 스스로의 위치를 승격하는 것은 안일한 자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로 가득하다. 눈앞의 횡단보도를 기준으로 인격과 품격을 어떻게 나눌 있단 말인가. 언론이 담지 못한 말들을 문학이 담아주어 고마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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