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요리책
최윤건.박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9월
평점 :
품절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책으로 나왔다. 외할머니에게 요리를 배우는 것.
결혼 후 아이들을 낳아기르며 밥을 하다보니 외할머니 생각이 종종 났다. 다시는 맛볼 수 없는 맛이기에 더욱 그립고 그리운 맛. 일하고 공부하며 아가들을 키우던 때에는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생각이 안 나다가, 몇 해 전부터 생각이 나는 메뉴들이 있는 것이다. 수제비, 미역줄기볶음, 코다리조림, 콩나물밥, 꼬막무침. 할머니께서 자주 해주시던 음식들이었다. 하나씩 해보지만, 할머니의 맛은 아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맞다하더라도 맞는지조차 모를 것 같다. 유년시절의 기억이 어슴프레한만큼, 할머니 음식 맛에 대한 기억도 희미해져버려서...오로지 이미지만 떠오를 뿐이다. 할머니와 함께 수제비 반죽을 뚝뚝 떼어내던 일, 미역줄기를 먹다가 유난히 오독오독한 부분을 씹으면 즐거워졌던 기분, 콩나물밥의 콩나물과 밥을 골고루 섞어내시던 할머니의 모습,껍질을 반만 떼어낸 꼬막 위에 무심히 올려진 양념장.
내가 더 빨리 요리다운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면 좋았을텐데. 할머니의 맛을 분명 알아보려했을텐데. 남은 것은 후회뿐.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을 본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할머니의 어설픈 한글과 손녀딸의 그림이 어우러진 이 책은 나에게 위로를 안겨줬다. 손녀딸 박린이 쓴 짧은 글에서 할머니를 향한 그의 애정과 할머니와 함께 한 시간에 대한 소박한 행복함이 느껴졌다. 내가 경험하고 느낀 것과 비슷한 감정들, 비슷한 메뉴들 덕에 이 레시피를 따라하면 혹 할머니의 손맛을 느낄 수 있진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일 저녁엔 아이들에게 나의 외할머니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 책에 나온대로 수제비를 끓여먹어야겠다. 혹 진짜 우리 외할머니 맛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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