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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죽음 - 수전 손택의 마지막 순간들
데이비드 리프 지음, 이민아 옮김 / 이후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어머니는 파리 몽파르나스 공동묘지에 묻혔다. 에드가 키네 가로수 길로 난 정문으로 들어가면 바로 오른쪽에 시몬느 드 보봐르의 무덤이 있고, 정중앙 길을 따라가면 어머니가 묻힌 구역이 나온다. 새뮤얼 베케트의 유해를 덮고 있는 수수한 잿빛 화강암 석판에서 백미터 거리에, 광택 나는 검은 석판 아래 한때 미국의 작가였고 1933년부터 2004년까지 살았던 수전 손택의 방부처리된 유해가 누워 있다. 어머니의 친구였던 작가 에밀 시오랑의 무덤이 그 맞은편 약 이백미터 거리에 있다. 사르트르, 레몽 아롱, 그리고 저 유명한 보들레르도 그곳에 묻혀 있다.
여기저기서 짜깁기된 인용문이 아니라, 완결된 수전 손택의 글을 처음 본 것은, 2001년 10월이었다. 9.11 테러가 있은 바로 다음달 초, 어찌어찌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처음 갔었고, 전시장 입구마다 경비가 삼엄했다. 미국관에 한번 들어가기 위해선 매번 가방검사에 몸수색까지 받아야 했다. 베레모를 쓰고 장총을 세워든 미군을 세계적 규모의 도서전시장 입구에서 마주한다는 것은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고, 때가 때인지라 (당연히--그때 난 아직은 세상물정 모르는 이십대였다) 조금은 두려운 일이었다.
일단 전시장 안으로 들어가면 그들은 더이상 눈에 띄지(는) 않았으므로, 온갖 종류의, 세계 각국의 책들을 구경하는 즐거움으로 흥분되고 설레던 일주일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울하기 짝이 없는 10월의 독일 하늘이었고, 전시장 밖에는 무표정한 군인들이 진을 치고 있었고, 전 세계가 아직은 한달 전의 '그 일'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영화의 한 장면에서처럼 뉴욕의 한복판에서 피어나던 그 비현실적인 버섯구름을.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한 권의 책이 도착했다. <Dienstag 11. September 2001>. 토니 모리슨, 폴 오스터, 주제 사라마구, 존 업다이크, 수전 손택... 등 이십여 명 필자들의 9.11 사태 직후의 기고문들 중에서도 "슬퍼는 하되 바보가 되지는 말자"며 미국의 반이성적 태도를 꾸짖는 수전 손택의 짧은 글은 빛났다.
2004년 12월 28일, 이 아름다운 반백의 여인은 눈을 감았다. 이미 열여섯 살에 "언젠가 내가 더이상 살아 있지 않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썼던 그녀가, 아직 쓰지 못한 글을 쓸 시간이 필요하다고, 살면서 하고 싶지 않았던 일을 너무 많이 했으니, 이제 드디어 자신에게 정말로 소중한 일을 하겠다고 다짐한 것은, 혈액암 선고를 받은 그해 3월, 일흔한 살 때였다. 이 책은, 언제나 진실을 향한 갈증으로 목말랐던 이, '살아 있음'을 탐닉했던 이에 대한 마지막 몇 개월간의 기억의 기록이다.(저자는 수전 손택이 죽고 나서도 3년이 지난 후에야 이 책을 썼다.)
수전 손택의 글을 읽을 때마다, 그녀의 글은 단호하고 아름다웠다. 이 책을 보며 다시 한번 그녀가 얼마나 아름다운 이였는가, 생각하게 된다. 삶에 대한 단순한 애착, 갈망, 그리고 낙관적인 희망만이 아니라, 바로 그 때문에 생겨나는 두려움이 얼마나 대단했을까를 감히 상상해보게 된다.
"명랑하라. 그리고 감정에 휘말리지 말라. 차분하라. (...) 슬픔의 골짜기에 이르렀을 때는 날개를 펴라."
아직, 그대는 존재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수전 손택 홈페이지 http://www.susansonta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