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에게 보낸 편지 - 어느 사랑의 역사
앙드레 고르 지음, 임희근 옮김 / 학고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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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는 언제 이런 사랑 한번 해보나."

예순의 김훈 선생에게 이런 탄식(?)을 하게 만들었다니, 얼마나 대단한 사랑이려나.
하지만 내가 읽은 이 책은, 앙드레 고르의 뒤늦은 (여자인) 아내에 대한 고백이기 이전에, 
글을 쓰는 작가로서의 고뇌, 글쓰기 작업 그 자체(혹은 그 고충)에 대한 것이 먼저였다.
그 다음이, (한 여자로서의 아내가 아니라) '글쓰는 사람의 동반자'인 아내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사랑. 

난 그때 존재론적 위계질서에 따라 타인과의 개인적 관계를 구분하는 논문의 제2권을 쓰고 있었습니다. 내게는 사랑의 문제가 특히 어려웠습니다. 우리는 왜 사랑을 하고, 우리가 사랑하는 바로 그 사람의 사랑을 받거 싶어하는지, 왜 다른 사람은 안 되는지 그것을 철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저는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내가 하고 있던 사랑의 체험 속에서 찾지 않았습니다. 우리 사랑의 기반이 무엇인지를 찾아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당신은 말하곤 했지요. 글을 쓰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사람과 살고 있다고. 또 작가가 되려는 사람은 홀로 되어 밤이고 낮이고 어느 때건 메모를 해야 한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었습니다. 비록 펜을 내려놓은 다음에라도 글쓰는 작업은 계속되며 밥 먹다가도 이야기하다가도 생각이 떠오르면 갑작스레 그 작업에 빠져들 수 있다는 것도 말입니다. (......) 홍수같이 넘쳐흐르다 단단한 결정結晶이 되어 제자리를 찾아가는 단어들, 끊임없이 단련되는 문장의 조각들, 암호나 상징으로 기억 속에 고정시키지 못하면 언제 사라질지 모를 어렴풋한 생각들. 작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가 글 쓴다는 사실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당신은 말했지요. "그러니 어서 써요!"

글 쓰는 사람의 첫째 목적은 그가 쓰는 글의 내용이 아닙니다. 그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쓴다는 행위입니다. 쓴다는 것은 세상에서 사라지고 자기 자신에게서 사라져서 결국은 세상과 자기 자신을 문학적 구상의 소재로 만드는 것입니다. 다루는 '주제'는 그 다음에야 제기되는 것입니다. (.....)

실존을 거부하면서 실존에 대해 쓰다보니, 문학은 나를 실존에 이르게 해주었습니다. (......) 책은 처음에는 예견치 못한 여러 가능성과, 타인들과의 관계에 나를 대면케 하면서 점점 효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 글쓰는 활동은 물질적 현실의 무게와 타인 앞에 나서는 일을 감당할 수 있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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