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찰리 채플린, 나의 자서전
찰리 채플린 지음, 류현 옮김 / 김영사 / 2007년 12월
평점 :
"실망과 근심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절망에 빠지지 않게 위해 선택할 수 있는 탈출구는 철학이나 유머에 의지하는 것이다."
찌그러진 중절모, 헐렁하고도 깡총한 바지, 커다란 구두와 지팡이, 커다란 눈과 딱 어울리는 콧수염. 뒤뚱거리며 걸어가는 뒷모습. 그리고 작은 키 뒤로 끝없이, 화면 밖으로까지 이어질 듯한 긴 그림자.
찰리 채플린은 언제나, 우스꽝스럽고도 쓸쓸한 뒷모습에서 시작되는 기다란 그림자로 기억되곤 했다. 빨리감기라도 한 듯, 경쾌하기 그지없는 음악 위에 덧씌워진 그 침묵과 유머와 슬픔의 힘.
"내가 스크린 위에 내 보이는 가엾은 존재, 그 겁 많고 허약한 친구는 결코 자신을 괴롭히는 이들의 희생양이 되지는 않는다. 그는 결연히 고통을 초극하여 일어선다. 희망, 꿈, 갈망이 덧없이 사그라지고 나면 그는 그저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발길을 돌릴 뿐이다."
1000페이지가 넘는 책장을 순식간에 다 넘기고 나니, 그 우스꽝스러운 몸짓 안에 어떻게 그런 슬픔과 생의 비극들이, 또 그것들을 극복하는 힘들이 녹아들어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온몸으로 겪어낸 생의 비애를 유머로 끌어안고 있는 그 힘이 새삼 놀랍다.
"채플린은 기적의 거울이다. 그의 모습은 그렇게 희극적인데도 번번이 그의 모습 속에서 희극은 휘발돼버리고 증류수처럼 간절하게 남아있는 삶의 비극만을 만나기 때문이다. 그는 기적의 거울 앞에 서서 모던 타임즈의 마지막 장면처럼 아직도 긴 그림자를 우리 앞에 드리우는 것이다."
절망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매달릴 수 있는 것들은 물론 많겠지만,
선택할 수 있다면, 무엇보다 "유머"를.
2007.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