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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5년 4월
평점 :
성당의 종소리가 7시를 알렸을 때, 장밋빛 하늘에는 아주 밝은 별 하나만이 떠 있었다. 배는 처량한 작별의 고동을 울렸다. 그러자 나는 내 사랑이 될 수 있었으나 그러지 못했던 모든 사랑들로 목이 메었다.
마음 가는 대로 하세요. 하지만 그 아이를 잃어버리지는 마세요. 혼자 죽는 것보다 더한 불행은 없어요. 최악의 남자라 할지라도 평생 내 곁에 있어주려 했다면, 영혼이라도 바쳤을 거예요. 그러니 당신이 질투심을 불러일으킨 사악한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일지라도, 지금 당장 그 불쌍한 아이를 찾도록 하세요. 하지만 할아버지의 낭만주의는 버려야 한다는 거 잊지 마세요. 그녀를 깨우세요. 그리고 그녀가 흡족해할 때까지 사랑을 안겨주세요. 진심으로 말하는데, 진정한 사랑을 하는 경이를 맛보지 않고 죽을 생각은 하지 마세요.
소녀가 따를 거라고 생각하오?
아, 나의 서글픈 현자 양반, 늙는 것은 괜찮지만 멍청한 소리를 하지 마세요. 그 불쌍한 아이는 당신을 미칠 정도로 사랑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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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놀라운 것은 포주인 로사의 입을 빌려 마르케스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아이에게 상처주지 마세요'가 아니라 '그 아이를 잃어버리지' 말라고. 아흔의 노인에게 이제 겨우 열네 살의 '그녀를 깨워 그녀가 흡족할 때까지 사랑을 안겨주'라고.
아흔 살이 되는 날, 노인은 풋풋한 처녀와 함께하는 뜨거운 사랑의 밤을 자신에게 선물하고 싶었다. 그렇게 만나게 된 열네 살 소녀 델가디나와의 하룻밤. 그날 밤에서야 노인은 깨닫는다. "욕망에 쫓기거나 부끄러움에 방해받지 않거 잠든 여자의 몸을 응시하는 것이 그 무엇과도 비할 바 없는 쾌락이라는 사실을."
열두 살에 처음으로 창녀와 사랑을 나눈 후, 쉰즈음에는 그와 관계한 여자들의 수는 오백이 넘었다. 그사이 돈을 내지 않고 여자와 관계한 적은 한번도 없다.
수많은 사랑이 그렇게 자신을 스쳐 지나가도록 내버려두었던 그 여유로운(그렇게 믿었던) 마음으로 아흔까지 살아왔다. 더 많은 사랑을 위해서 약혼녀까지도 버렸다.
그리고 아흔이 된 지금에야, 그는 고백한다.
"나는 내 사랑이 될 수 있었으나 그러지 못했던 모든 사랑들로 목이 메었다."
길지 않은 작품을 단숨에 읽어내리면서 놀란 것은, 무엇보다, 이것이 '지나간 사랑'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현재의 이야기다. 긴 시간 동안 다양한 경험들을 한 한 남자의 삶에 대한 '현재'의 감정을 털어놓는 이야기다.
거장의 소품,쯤으로 생각했지만, 작품이 남긴 단상은, 그 이상이다. 실제로 1980년대 초부터 쓰기 시작해 이십 여 년만에 완성된 작품을 두고 마르케스는 말한다.
"나는 모든 개인적인 경험이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압니다. 아주 긴 침전의 과정을 통해서만 시적인 무게를 지니게 되지요. 시간과 기억과 노스탤지어만이 줄 수 있는 시적인 무게 말입니다."
2005. 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