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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환담
윤채근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1월
평점 :

최근 TV에 자주 등장하는 한국사 강사 최태성 님의 추천사를 먼저 봤다.
“한산 앞바다. 일본 장수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응시하고 있는 한 인물. 그는 바로 조선의 바다를 지키고 있는 이순신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와키자카의 참담한 독백...
흥미진진하다. 이것은 역사인가, 소설인가......”
역사에 관한 한 최대의 싱크홀 수준의 흥미를 가진 채 나이들고 싶지 않은 요즘이다.
수박 겉은 핥더라도 수박맛을 보고 싶듯이 역사를 연대순으로 사건사고 인물을 줄줄 꿰어 차지는 못해도 하나의 사건 속에 담겨진 진심은 알고 싶다.
우리는 역사라고 하면 과거의 진실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과거에 일어난 정확한 사실을 배우는 것이라고 믿으면서 공부를 한다.
당연히 연대와 사건은 정확하다.
하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인물들의 의도와 진심과 의미는 전혀 다를 수 있다.
왜냐하면 역사기록은 철저하게 승리자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불순한 의도를 막은 의로운 승리자이든 피가 끓는 욕망으로 권력을 차지한 파렴치한 승리자이든 기록은 그들을 숭고하고 절대적인 존재로 남기기 위한 것으로 시작된다.
그러므로 역사는 사실이면서 진실이 아닐 수 있다.
혹은 진실이면서 사실로 근접하기에는 음험한 배경이 깔려있을 수 있다.
저자 윤채근은 머리말에서도 말한다.
p.4
사실과 진실은 다르다. 사실은 실제 있었던 일들이 논리적으로 결합해 구성된다.
진실은 사실에 입각하되, 사실과 사실 사이에 벌어진 빈틈을 상상력으로 채워가며 사후적으로 만들어진다. 따라서 진실은 영원하지 않다. 새로운 사실의 발견이나 관점의 변화 또는 시대흐름에 따라 끝없이 조정되고 수정된다.
역사적 사실과 진실은 결론적으로 우리의 시선으로 충분히 달라질 수 있고 달라진다는 뜻과 다름없다.
후세의 판단에 맡기겠다는 말을 쉽게 하는 권력자들이 노리는 것도 이러한 생각과 맞물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내가 옳지만 내가 사라진 이후에 어떤 논란이나 어떤 조명을 받든지 그건 너희들이 알아서 하라는, 독재자적인 발언이 아닌가 한다.
이 책은 1부 9개의 이야기가 담긴 전쟁과 혁명, 2부 9가지의 이야기를 다룬 현장의 미스터리와 3부 8가지의 이야기를 그려낸 시간을 초월한 사랑으로 구성되어 있다.
스물 여섯가지의 이야기 안에는 남겨진 기록과 실존인물, 전해져오는 서책 그리고 작가의 상상이 잘 버무려져 유사현실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인물의 고뇌와 인물을 지켜보는 배경같은 무명씨들의 고뇌와 갈등이 있다.
‘진짜인가?’ 놀라움을 금치 못하다가 ‘작가의 머릿속에는 어떤 우주가 들어 있는 거지?’ 탄복을 한다.
짐작하지 못했던 역사적 인물의 내적 갈등과 사랑이야기는 사실과 진실로 존재했었길 바라기도 한다.
이순신을 존경하는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회고담을 남기기도 했다고 한다.
살수대첩의 을지문덕 장군은 북위를 세운 선비족 울지씨에 대한 기록으로 선비족 가문의 후예일 수 있다는 작가의 추론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방대한 작가의 역사지식은 어디까지 펼쳐질 것인지 궁금증이 커졌다.
신숙주를 살해하려한 윤영손과 성삼문의 이야기를 토해서 창경궁이 과거에는 단종이 머물던 수강궁이라고 한다.
김유신, 단군왕검, 박지원, 인조반정이야기, 개로왕과 도미전, 혜경궁 홍씨와 김은애 사건 등 알았으나 정확하지 않았고 몰라서 더욱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있었다.
원효와 의상이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다가 의상만이 떠나게 된 이야기는 평행우주와 양자물리학을 떠올리게 해서 더 공부해야 할 역사와 과학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역사적 사실은 과학적 근거 또한 분명히 바탕에 깔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과 작가는 창의적인 상상에 넓고 깊은 지식을 반드시 적재해야 함을 깨달았다.
작가의 역량에 뜨거운 존경을 표한다.
세종대왕의 따님이신 정의공주가 훈민정음을 널리 알리기 위해 애쓴 과정을 아들 빈세에게 서간문으로 남긴 이야기는 정소공주를 잃고 실의에 빠진 아버지 세종을 위해서 더욱 매진했을 정의공주의 애절한 효심 덕분으로 정음이 지금에 이르른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성 싶다.
선화공주가 백제 무왕의 왕비로 배웠던 것으로 기억되지만 사실은 사택적덕이 왕비라는 말에 정확하지 않은 역사가 내 안에 켜켜이 쌓여있어 부끄러웠다.
고전환담을 통해서 역사를 배경으로 지어낸 이야기라고만 치부할 수는 없다.
우리의 역사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이 아니라 양수기를 이용해 억지로 물을 솟구치게 한 면은 없는지 관심을 가지는 것이 올바른 태도가 아닌가 한다.
지금 우리의 시대도 훗날 역사의 한 점을 찍을 것이다.
승리자가 남기는 역사가 사실과 진실의 가면을 뒤집어 쓴 채 전해지지 않게 하려면 하나의 점인 우리들이 분연히 일어나 현재를 잘 지켜야 한다.
팩션이라는 새로운 장르, 팩트와 픽션을 버무려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기에 손색이 없는 소설이었다.
흥미를 가진다면 배우지 못할 것이 없다.
역사에 대한 흥미를 충분히 갖게하는 윤채근 소설이다.
역사는 우리 곁에서 표표히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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