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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부 - 소금이 빚어낸 시대의 사랑, 제2회 고창신재효문학상 수상작
박이선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2월
평점 :
염부(鹽夫)/박이선/다산책방
소금이 빚어낸 시대의 사랑.
책의 전면부에 세로로 길게 늘어진 문구다.
농사를 지으면 농부이고 바다에서 생업을 이어가면 어부다.
염부란 소금을 만드는 사람을 뜻한다.
소금을 팔러 다니는 소금장수는 알아도 염전에서 일하는 그들을 염부라고 불러본 기억도, 들어본 기억도 없다.
소금을 매개로 벌어지는 사랑이야기 쯤으로 짐작하면서 읽기 시작한 책은 의외였다.
1940년을 시작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일제강점기의 최고점이라 할 수 있는 중일전쟁과 황국신민화 교육의 강화가 사회전반을 휩쓸던 무렵이다.
염부의 가난한 아들인 염길의 주변인과 시대상황이 맞물려 벌어지는 일은 근대사를 이해하는 것도 도움이 되지만 그 당시 조선인(한국인)과 일본인들의 관계를 새롭게 보는 시선을 가지게 된다.
특히 전주, 고창 등지의 일본인들은 지역의 문화에 잘 흡수되어 조선인들과 화합하여 비교적 잘 살아가고 있었다.
게다가 일본인 1세와는 달리 2세대는 조선을 고향으로 여겼으며 조선말도 곧잘 배워 조선인 친구를 예사로 사귀며 지냈다.
물론 일본 거류민단이 총독부의 관리로 일인과 조선인들의 행태를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할 수는 없다.
이 책의 등장인물은 성씨와 이름을 거론하여 통틀어서 자그마치 서른 네명이다.
404쪽의 장편소설이기는 하지만 한권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치고는 대단한 숫자다.
소금으로 맺어진 사랑보다 변해가는 일본의 상황과 사회현상을 더 깊숙하게 서술한 책이라서 역사서로서도 한몫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흔히 염전에서 만들어지는 천일염을 전통 소금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자염 혹은 화염이라는 서해의 전통소금을 배운 좋은 기회였다.
일본에서 건너온 코코네와 아들 다케시, 염봉 스님의 만남을 기점으로 70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인 여관집 아들의 가정교사로 들어간 염길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읽다보면 박경리님의 ‘토지’가 생각난다.
‘염부’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의 개성과 역할, 중일전쟁과 미일전쟁, 위안부 모집, 조선인 엘리트들의 고뇌와 코뮤니즘을 받아들인 지성인들의 활동, 고창지역의 판소리 명인들의 이야기, 청년들의 육군특별지원병과 징병제에 대한 그 당시 생각을 알 수 있다.
또한 1940년 이후 운전면허시험이 바뀌어서 지금과 유사한 형태로 되었다는 점, 1945년 8월에 있었던 변호사시험이 광복으로 인해서 취소되어 응시자 전원이 합격처리된 웃지못할 사건도 있다.
작가는 몇 년 동안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며 책을 쓰는 동안 고뇌에 빠졌을 때 우물을 파놓고 물이 차오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정신으로 글이 나오길 기다렸다고 한다.
올해로써 고창신재효문학상은 2회로 운영되었고 이 글이 그 수상작이다.
신재효 문학상은 제한이 상당하다.
‘고창의 역사.자연.지리.인물.문화 등을 소재와 배경으로 한 작품’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말 할 필요도 없이 ‘토지’와 맞먹는 글을 쓸 수 밖에 없는 조건이다.
이에 ‘염부’는 그에 합당하다는 생각을 나 또한 가지게 되었다.
등장하는 서른 네명의 사람들에게 숨겨진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궁금하다.
재취로 들어온 줄포댁이 염길을 애지중지 키운 고단한 삶부터 징집을 피해 도망간 염길의 친구 필석이야기 또한 흥미로워 궁금해진다.
아케미와의 사랑이야기도 안달이 날만큼 기대했지만 지면이 모자란 탓인지 뭉덩뭉덩 잘려나간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더군다나 일본 패전후 고향을 버리고 일본 본국으로 돌아간 아케미 가족들의 생활사도 궁금해졌다.
고창고보의 4거두 김동수, 박학준, 최승근, 강염길의 성장기도 각자 다른 집안배경을 가졌기에 풀어볼만 하겠다.
신재효의 고택 동리정사에서 우리의 예기(藝妓)를 교육시키는 과정에도 호기심이 갔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궁금증을 내려놓지 못했던 것이 있다.
친일파라는 딱지를 붙일 수 있는 사람들은 과연 어디에서 어디일까?
일본으로 유학을 하고, 일본인 수하 관리가 되고, 일본인 학교에서 선생을 하는 조선인 엘리트들에게 친일파라고 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고창고보의 4거두는 말한다.
비록 일본국의 지휘로 치러지는 변호사시험이지만 배워놓지 않으면 독립이 되었을 때 이 나라의 무정부를 누가 재정비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일본패망의 기미가 보였을 때 일본은행에 다니는 것을 수치스러워하는 친구에게 돈의 흐름을 배우지 않으면 일본인들에게 돈을 빼앗기고 나라의 경제를 지킬 수 없으니 배울 것은 배우라고 한다.
나라의 광복을 위해서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독립운동을 하는 것도 훌륭하다.
하지만 배움을 향한 열정을 가진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꿈과 역량을 키우기 위해 수치심을 덮고 교육현장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고민이 컸다.
그들의 정신 아래 깔린 애국심을 보지 않고 일본인 학교와 관청에 육체가 속했다고 하여 광복 후 친일파라고 매도해도 되는 것인가?
물론 일본 앞잡이로 나섰던 이들에 대해서는 유구무언이다.
염길과 아케미의 사랑은 아버지 강석대와 어머니 줄포댁의 소금으로 끊어지고 이어진다.
맛을 변하지않게 하는 것은 소금이다.
영원히 맛을 지켜내는 소금의 힘은 작은 알갱이의 힘이 모여서 가능하다.
그 소금을 얻기 위해 바닷물을 길어올리고 끓이는 염부의 검게 탄 얼굴은 마침내 독립을 하게 된 대한민국의 얼굴일 것이다.
박이선 작가님께서 이 책을 기점으로 새로운 ‘토지’를 써주시길 바란다.
그런데 말이다. 나라 잃은 백성이 제 한 몸 살고자 민족이 어려움을 모른 체한다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가인 김병로 선생이 강의할 때 학생들에게 해주었던 말씀을 전해 듣고 생각을 바꾸게 된 거야."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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