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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형제의 숲
알렉스 슐만 지음, 송섬별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1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 형제의 숲/알렉스 슈만/다산북스
[이 글은 다산북스 제공으로 쓴 서평입니다.
스포일러를 하지않기 위해 줄거리는 쓰지 않습니다.]
알렉스 슈만은 스웨덴에서 유명한 분이다.
작가, 저널리스트, 팟캐스트 진행자이자 영화 평론가, 번역가, 칼럼니스트 등 다양한 영역에서 자신의 역량을 펼치고 있다.
이 책 ‘세 형제의 숲’은 알렉스 슈만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다섯 번 째 책이면서 첫 번째 소설이기도 하다.
작가는 성인이 된 이후에 만난 세 형제가 서로에 대해 너무나 모르는 면이 많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분명히 자랄 때는 서로에게 의지하고 없으면 안되는 존재였던 세 형제였는데......
돌아가신 어머니의 편지를 형과 동생과 함께 읽은 이후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린 시절 함께 지내던 세 형제가 어른이 되는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고’ 간절하게 묻고싶은 마음 뿐이었다.
글의 서술도 단순 서사형태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의 시점이 교차로 읽힌다.
무엇보다 그들 사이의 암울한 사건이 어디로 사라지고. 어떤 형태로 남아있고. 그 일이 그들에게 어떤 힘을 부여해서 지금에 이르렀느냐는 생각을 하게 했다.
숲 속의 초록 지붕, 붉은 벽면의 별장은 닐스, 베냐민과 피에로 삼형제가 부모님과 여름휴가를 보내는 별장이다.
별장의 모습을 세 개의 구획으로 나뉘어 다른 색깔로 보여주는 표지를 볼 수 있다.
선명한 가운데는 이 글을 가장 섬세하고 보여주는 베냐민의 시선이다.
나머지 두 숲의 모습은 냉소적인 형 닐스와 언제나 형들을 따르고 놀림감이 되는 동생 피에르다.
별장으로 이어지는 길은 도중에 끊어져 있다.
누가봐도 베냐민에게 무슨 일이 있음을, 길이 끊어진 것처럼 망각되어진 어떤 사건이 있음을 보여준다.
세 형제가 숲 속에 있지만 베냐민만이 제대로 갈 수 없는 그 곳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세 형제의 부모님은 철저하게 자신들의 감정과 상황에만 포커스를 맞추는 사람들이다.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기보다는 아이들 스스로 문제를 풀어나가도록 밀어붙인다.
가정학대라고 보일만큼 무심하고 가학적이다.
닐스만이 십대이고 베냐민과 피에르는 아홉 살, 일곱 살임에도 동등한 자격으로 그들을 대하는 부모는 무모해보이기까지 한다.
호수로 뛰어들어 멀리 부표까지 헤엄쳐서 갔다오기를 시킨다.
당연히 아이들에게는 지나치게 위험하고 먼 곳이지만 그들은 더 이상 뭍으로 돌아갈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서 서로를 도와가면서 겨우 도착한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는 세 아이의 무사함을 확인하기도 전에 이미 술이 취한 상태로 별장으로
들어가고 없다.
가정학대와 마찬가지인 상황에서 숨이 막혔다.
제정신이 없다는 식으로 혼잣말을 하면서 늘 뒤로 빠지는 형 닐스.
놀라거나 참을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오줌을 싸는 동생 피에르.
엄마는 항상 ‘우리 아기, 예쁜 아기’라고 부르는 개, 몰리에게만 시선을 꽂는다.
가족들의 모든 상황과 감정상태를 족집게처럼 찾아내서 순응하고 맞추는 베냐민은 항상 곤두선 바늘과 같다.
안쓰러움과 비참함이 교차하는 세 형제의 상황은 형 닐스가 타지로 공부를 하러 떠나면서 더 심해진다.
부모의 모든 시선을 한 몸에 받은 닐스는 그것을 이용해서 부모를 좌지우지한다.
그런 부모를 곁에서 지켜보는 베냐민은 닐스가 부모의 뜻대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감지한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못한다.
세 형제는 생존하기 위해서 가족이라는 울타리내에서 버틴다.
살아가기 위해서 잊어야 하는 것은 빨리 잊고, 새로운 것은 자신을 위해 취한다.
어른이 된 이후의 세 형제는 어릴 때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만난다.
형 닐스보다 동생 피에르가 더욱 폭력적인 것에 베냐민은 이해하지 못한다.
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세 형제의 삶은 어릴 때와 전혀 다른 길을 가는 것인지.
세 형제는 서로에게 어떤 혐오와 원한 혹은 상처가 있었기에 처절하게 피를 보는 폭력을 행사하는 것인지.
그리고 엄마가 사랑하는 몰 리가 어떤 존재였는지 깨닫는 순간, 베냐민은 비로소 자신의 삶 속에서 무엇이 지워져있었는지 떠올린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엄마방을 정리하면서 발견하는 편지.
그 편지로 세 형제는 여름휴가를 보내던 별장으로 가서 지난 날과 오늘의 그들을 만난다.
세 형제는 과연 엄마의 바람처럼 그 곳에서 지내고 싶을까?
지낼 수 있을까?
엄마의 마지막 편지에서 한 구절을 옮기는 것으로 ‘세 형제의 숲’에 대한 서평을 마치고자 한다.
이 책은 단 한마디로 ‘반전’이라는 말도 무의미하다.
삶은 어느 누구의 시선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말하지 않는다고 없던 일이 아니고, 말할 수 없다고 아닌 일도 아니다.
그 곳 깊은 장소에 납작 엎드려 있는 진실은 반드시 있다는 것이다.
P.318~319
사람들 말로는 애도란 지나가는 단계에 불과하다고, 그 단계를 지나면 삶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더구나. 물론 예전과 똑같은 삶이 아니라 다른 삶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은 틀렸어. 애도라는 건 단계가 아니라 상태란다. 결코 변치 않고 바위처럼 그 자리에 우뚝 버티고 있지.
그리고 애도는 사람을 침묵하게 만든다.
피에르, 닐스. 너희들과 대화해야겠다는 다짐을 너무나 많이 하는 바람에 나중에는 이미 했다고 믿어버리게 되더구나. 너희들과 대화를 했어야 하는데. 세상에 이런 엄마가 어디 있겠니? 내가 너희들에게 하지 않았던 말들이 미안할 뿐이다.
베냐민. 네가 가장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았을 거야. 그래서 네가 가장 안타깝구나. 난 단 한 번도 너를 탓한 적이 없어. 다만 네게 그 말을 차마 해줄 수가 없었을 뿐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 입을 다물고 살던 내가 네게 단 한 마디를 할 수 있었더라면, 그 말은 분명 ‘네 잘못이 아니다’라는 말이었을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