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가 세운 평균은 사회를 움직이는 기준이 된다. 그리고 그 기준 안에 들어오지 못하는 소수는 어떻게든 틀 안에 구겨넣으려 한다. ‘치유의 섬으로 보내진 아이는 몸을 가릴 수 있는 최소한의 천 조각도 없이 감옥처럼 생긴 틀 안에서 괴로워해야 했다. 그런데 이렇게 소수가 당하는 고통의 이유를 우리는 사회가 정한 기준에서 찾지 않는다. 대신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보는 시선이 보편적이다. "노력해도 안 되는데요"라는 말에 "그냥 노력하면 안 되지. ‘노오력‘을 해야지"라고 답하는 사람들을 겨냥한 ‘노오력‘이라는 말은 이제 보편적으로 쓰인다.
- P48

 다수에 속할 때 우리는 나 자신이 높고 단단한 벽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깨지기 쉬운 껍질속에 담긴, 고유하고 대체될 수 없는 영혼이다. 나도, 너도 모두 달갈과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최소한 누군가에게 배척당할까 봐 두려워 다른 누군가를 비웃거나 깃발는일은 없지 않을까.  - P50

"선생님, 이거 잘하면 뭐 해줘요?"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뭔가를 시키면 자연스럽게 물질적인 보상을 바라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나는 땅을 파내려가던 샘과 데이브처럼 아이들이 과정의 즐거움을 알았으면 좋겠다. 자기만의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을 발견하면 더욱 좋겠고,
- P59

달리기를 경험하기 전의 나는 <로지가 달리고 싶을 때>의 로지를 보러 경기장에 온 사람들처럼 오직 1등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고 여겼었다. 하지만 마라톤에서 중요한 것은 옆 사람을 제치고 빨리 도착점으로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도착점에가겠다는 목표를 포기하지 않는 것임을 배웠다.  - P73

그러나 과하게 잘 듣는 약에 부작용도 있는 법. 나 자신이 못 견디게 좋음과 동시에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 P93

공감의 핵심은 《가만히 들어주었어》의 토끼처럼 대답을 채근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것이었다. 상대방의 고통에 진심으로눈을 포개고 듣는 것이었다. 상대방의 ‘때‘에 상대방의 ‘방식‘으로 그 존재를 존중해주며, 상대방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가는 것이었다. 때론 나와 전혀 다른 생각을 하더라도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게 공감의 핵심이었다.
- P106

《타인의 고통》을 쓴 수전 손택은 ‘연민이 내 삶을 파괴하지 않을 정도로만 남을 걱정하는 기술이라면, 공감은 내 삶을 던져 타인의 고통과 함께하는 삶의 태도‘ 라고 했다. 처음에 수민이는 캄보디아 아이들과 멀찌감치 떨어져 맨발로 축구하는 장면을 관망했다면, 종내에는 그들 사이로 성큼 들어가 함께하기로 결정한다. 그들의 삶에 동정이나 연민을 보내지 않고, 공감한 것이다.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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