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것을 골똘히 생각해볼 때가 있었고 그때마다 좀 사나운 심정이 되었다. 제희네 부모님은 왜 도망가지 않았을까. 왜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지 않았을까.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고자 하는 것은 자신들의 욕심일 뿐이라는 생각은 안 해보았을까. 빚을 떠안으면서 딸들에게 짐을 지운 것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을까. 자신들의 양심과 도덕에 따랐지만 딸들의 인생을 놓고 봤을 때는 부도덕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내가 두서없이 그런 이야기를 하면 제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그냥 그런 사람들인 거야. 그리고 그대로 도망을 가서 살았다면우리는 만나지도 못했을걸? 제희는 그렇게 말했고 나는 옳다고 생각했다. 제희네 부모님이 도망을 결심했다면 제희는 나와 같은 고장에서 살지 못했을 것이고 고교 동창생인 우리에게는 어쩌면 접점이 없었을지도 몰랐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납득은 하면서도 당시를 상상하면 한숨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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