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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부터 시간을 다시 쓰는 중입니다 - 인생 후반의 시간을 잘 기획하고 잘 쓰는 법
사이토 다카시 지음, 이혜윤 옮김 / 유영 / 202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50, 쉰이라는 나이는 나와 관계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 나의 오십대는 어떤 모습일까, 인생의 선배들은 오십 이후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이젠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된다.
아직 십년은 치열하게 더 살아가고 싶지만, 동시에 인생 후반을 잘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한편으론....쉰이라니....쉰이라니?! 라는 한숨도...ㅎㅎ)
그래서 읽어보게 된 사이토 다카시의 신간, 55부터 시간을 다시 쓰는 중입니다.
55의 시간, 더는 평가에 연연하지 않는다
이삼십대 때는 누구 '잘 되는 꼴'만 보면 그저 배가 아팠던 것 같다. 나에겐 왜 저런 기회가 안주어지나 한탄도 하면서. 마흔이 넘어가면서 '내가 더 잘하는 부분' '내가 더 집중해야 하는 부분'에 신경을 쓰다보니, 이젠 그런 감정도 조금씩 더디어 가는 중.
한동안은 조직에서 중요한 존재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열패감이 컸었는데, 이젠 핵심 자리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괜찮다는 생각이. (사실 이젠 누가 권해도 가고 싶지 않은..;)
마흔을 불혹으로 쉰을 지천명으로 부르는 것은 일상적으로 흔히 접할 수 있을 정도로 <논어>중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이다. 이 구절에는 사람이 성숙해져가는 과정이 훌륭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 구분법에 맞추어 생각해보지면, 55세란 천명을 아는 50세를 살짝 넘어서 귀가 순해지는 60세로 향하는 시기에 해당한다. ( 24p)
55세, 천명을 깨닫고 귀가 순해진다.
55의 시간, 취미와 교양에 실컷 몰두한다
누군가에게 성과로서 인정받지 않아도 되는 시간.
하고 싶었지만 미뤄왔었던 일들을 할 수 있는 시간.
예술을 익히려는 사람은 항상 '실력이 좋아지기 전까지는 남들 모르게 몰래 연습하고, 능숙해진 뒤 선보여야 멋있어 보이겠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절대 예술을 익히지 못한다. (158p)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선생님에게 무언가를 배우는 일은 정신 건강 면에서도 아주 좋다. (163p)
55의 시간, 잡담력으로 친목을 도모한다
저자의 잡담력이라는 책이 궁금했는데,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잡담'에도 재능이란 것이 존재한다면 나의 점수는 거의 0점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썰렁한 분위기에서 갑자기 화제거리를 만들어 분위기를 주도하고, 편안하게 스몰토크를 이끌어가는 이들을 보면서 '저것도 타고난 능력인가 보다'생각했는데, 저자에 의하면 잡담력도 노력해서 키우는 것이라고 ㅎㅎ (아무래도 난 잡담력이라는 책을 읽어봐야 겠다. 책 읽는다고 잡담력이 정말 생기는 걸까. 개인 성향도 크다고 보는데..)
나이가 들수록 대화하기 편한 사람이 되고 싶고, 늙어서 더 이상 대화가 안통한다는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다. 나이가 들었구나-의 가장 첫 기준점이 '듣는 귀가 사라져버린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가 관심이 끊어지고,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들은지 오래되었다면 - 당신, 늙은 거 맞다.
사교성은 성격이 아니라 기술의 문제다. 사교성을 위해 갈고닦아야 하는 기술이 있다면, 바로 상황에 맞게 거리를 조절하는 방법이다. (196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