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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빨강 ㅣ 창비청소년문학 27
박성우 지음 / 창비 / 2010년 2월
평점 :
1990년대부터 일어났던 아동문학의 붐이 이제 청소년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우리 문학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그 영역이 확대됨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여세를 몰아 이제 시도 본격적으로 청소년시로 들어서고 있나보다.
이 책은 청소년들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청소년시집이다.
그들의 생각, 생활, 고민, 열정 그리고 흔들리는 자아정체성을 말이다.
이 시집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아직은 연두”라고 말하기 시작하더니 “넌 안 그러니?” 하고 묻는다. 그러다가 주체할 수 없는 내재된 열정, 욕망들을 이야기하며 “난 빨강”이라고 선포한다. 그러다 주변을 돌아보며 “지나가는 사람”을 이야기한다.
아직은 연두
난 연두가 좋아 초록이 아닌 연두
우물물에 설렁설렁 씻어 아삭 씹는
풋풋한 오이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옷깃에 쓱쓱 닦아 아사삭 깨물어 먹는
시큼한 풋사과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한 연두
“아직은 연두”에서는 오이 같기도 하고 풋사과 같기도 한 연두 같은 청소년이다. 그런데 그들은 기말고사에 학교와 시험지가 없어지는 “신나는 악몽”을 꾸고, 지독한 가뭄 마른 강가에 “말조개”가 되기도 하고, 우물 속에 빠진 “보름달”이 되기도 하고, 비늘 안쪽을 파고드는 기생충을 털어내기 위한 물고기의 필사적인 몸부림처럼 깜깜한 어둠 속에서 빛나는 학교와 도서관과 공부방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공부 기계
알람 시계가 울린다
고등학교 이 학년인
공부 기계가 깜빡깜빡 켜진다
(중 략)
늦은 밤 돌아온 공부 기계는
종일 가동한 기계를 점검한다,
고장 난 기계처럼 껌뻑껌뻑 꺼진다
“넌 안 그러니?”에서는 그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공원에서 담배”를 피우다 끝내는 싱거워져버리고, “사춘기인가?” 엄마든 아빠든 다 귀찮아서 방문도 틱 잠가버리기도 하고, 동네 오빠가 “서울대”를 가서 엄마로부터 시달림을 받기도 하고, 컴퓨터에 중독되기도 하고, “노래방”에서 목이 쉬어라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같은 “버스”를 타는 누나를 좋아하여 고민하기도 한다.
난 빨강
난 빨강이 끌려 새빨간 빨강이 끌려
발랑 까지고 싶게 하는 발랄한 빨강
누가 뭐라든 신경 쓰지 않고 튀는 빨강
(중 략)
혀를 내밀면 혓바닥이 온통
새빨갛게 물들어 있을 것 같은 달콤한 빨강
빨ㅡ강, 하고 말만 해도
세상이 온통 빨개질 것 같은 끈적끈적한 빨강
“난 빨강”은 청소년들의 성, 가출, 반항 등 숨겨진 욕망, 열정을 드러내 보여준다.
툭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차 있어서 “좀 놔둬요”라고 반항하기도 하고 “신나는 가출”을 계획해보기도 한다. 결국에는 누가 뭐라든 신경 쓰지 않고 튀는 빨강이 좋다고 당당하게 이야기 한다.
이 시집은 청소년들에게는 친구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살아 숨쉬는 일상이다. 한편 한편이 짧은 드라마를 보듯 흥미진진한 스토리로 이루어져 있어 푹 빠져들게 하는 마력이 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청소년들을 웃게도 하고 울게도 할 것이다. 10대 아이들에게 잠시라도 숨통을 틔워주는 여백이 될 것이다.
또한 이러한 갈등이나 고민의 시절을 망각해 버린 어른들은 시를 읽어 과거를 기억하고 감정을 되살려 봄으로써 10대 아이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될 것이다.
혹시라도 자녀와 함께 읽게 되면 그들에게 꼬치 꼬치 캐묻지 말기를... 그래서 그들이 마음의 문을 꽁꽁 걸어 잠그게 하지 말기를... 그들 스스로 부모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그들의 감정을 읽으면서 고개만 끄덕이기를 권하고 싶다. 아이들을 믿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