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광해군 - 역사인물 다시 읽기
한명기 지음 / 역사비평사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영화"광해,왕이된 남자"를 보고나서 이책이 다시 읽고싶어졌다.책앞 여백에 쓴걸 보니 2010년 TV에서 "추노"가 한창일때 읽고나서 독후감을 써놓았었다.그때 캠핑 다녀오는길에 일부러 광해군묘를 찾아 가보기도 했었다.교회 공동묘지를 지나 산비탈 음지에 자리잡은 왕의 묘라니..,그래도 15년을 왕위에 있었던 사람의 묘치고는 너무나 조촐한 묘...,"패자의 묘"...,
조선시대를 통틀어 가장 안타까운 왕이다.연산군처럼 개인적인 부정,타락,등의 이유로 반정의 빌미를 제공한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정책적인 이유로 쫓겨났기 때문이다.
물론,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왕위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한편으로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첩의 자식이었고,첫째도 아닌 둘째였으며,임진왜란이라는 긴박한 상황에서 어쩔수 없이 왕세자지명 등등)왕위에 있던 15년보다 쫓겨나서 섬에서 유배된채 온갖 수모를 겪으며 살아낸 19년의 세월이 있었기에 너무도 안타깝다.가장 높은 지존의 자리에서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져 자식과 며느리,부인마저 처참하게 세상을 등진 세상에서 무엇이 그를 살아가게 했을까?
조선시대를 통틀어 궁궐이 아닌 외부에서 가장 오래 생활해본 왕이 광해군일것이다.임진왜란중 분조를 이끌며 평안도,함경도 북쪽부터 전라도 충청도까지 일본군과 대치하던 전선에서 풍찬노숙을 감당하며 조정을 이끌었던 왕이다.전쟁의 참담함을 몸으로 느꼈기에 그토록 전쟁을 막아보고자 명청교체기의 동아시아 상황을 면밀히 살피며 외교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왕이다.그러나,그당시 "재조지은"을 앞세우던 사대부 주류들에게는 명나라를 거역하고 오랑캐와 친하려 하는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왕일뿐이었다.
노무현과 광해군은 많은 부분이 겹쳐진다.지지기반에서 취약점을 가졌었고(광해군은 출신때문에,노무현은 주류출신이 아닌 변방출신의 상고졸업대통령이라고 조,중,동을 비롯한 주류에서 얼마나 무시하고 멸시했던가?)자주를 외쳤으며,탄핵도 당했었다.헌법재판소에서 승인되었다면 광해군처럼 쫓겨나는것이었다.
광해군의 패착은 내정의 실패다.왕권강화의 상징을 내세우기 위한 무리한 궁궐공사,"폐모살제"라는 집권층의 무리수에 의한 사대부들의 이반,대북파일부에 지나지 않는 취약한 지지기반세력,어려서부터 살얼음을 걷듯 살아오면서 형성된 내성적인 성격과 우유부단함,이이첨,정인홍등 측근들에 대한 관리실패,그리고 궁궐호위를 맡고 있는 최측근 훈련대장조차 반정에 가담하여 궁궐문을 그냥 열어주는등의 인적관리실패등등...
결국,내정을 튼튼히 하고 주류 세력인 사대부들과의 원만한 관계에 바탕을 둔 정치를 펼쳤더라면 그 찬란한 외교노력이 헛되지 않았을것을...그랬더라면 병자호란과 같은 대참사는 막았을 것이거늘....
"반정"에 성공한 세력들이란 자들을 보라.사대주의와 학연,지연으로 얽힌 개인적인 욕망으로 가득찼던 무능력한 세력들은 논공행상을 놓고 "이괄의 난"을 겪고,동아시아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해 "정묘,병자호란"으로 온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린다."반정"의 명분은 어디로 갔는가? 백성들은 죽어가고 끌려가도 지도층들은 대부분 멀쩡히 살아났고,노론 주류세력들이 그후 조선의 "자기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해먹다가 결국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만것이 아닌가?
아쉽게도 ,광해군의 재평가가 일제식민지시절 만선사관론자의 대표자인 이나바 이와키지에 의한 불순한 의도에서 만들어지고 친일사학자인 이병도의 의견이 교과서에 실리면서 지금의 "외교정책을 탁월하게 펼친군주"로 탈바꿈했지만,어찌됐든,인조반정의 후예들이 집권하던 조선에서는 "역사의 패자"로서 철저히 외면받았던 한 군주의 재발견은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고,본 저자인 한명기 교수처럼 뜻있는 젊은 사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우리의 당당한 역사로 자리매김하길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