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봉암과 진보당 - 한 민주사회주의자의 삶과 투쟁 커리큘럼 현대사 3
정태영 지음 / 후마니타스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몇일전 대법원에서 조봉암사형선고에 대해 무죄판결이 났다는 기사를 보았다.당연한 일이 너무 늦게 판결이 난것이다.그래서 관심이 갔고,대략 알고 있던 조봉암이라는 사람과 진보당이란 정당의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을 알게 되었다. 

조봉암은 강화도의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3.1운동이라는 큰 물결을 만나지 않았다면 배운것 많지 않은 시골사람으로 평생을 살다 갔을지 모른다. 3.1운동의 참가자로 1년간의 감옥생활을 통해 평범한 사람으로 사는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살아야겠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고,일본으로 건너가 본격적으로 사회주의 사상에 눈뜨게 되었으며,소련유학,중국과 국내를 오가며 공산당조직활동,신의주에서의 7년간의 감옥생활,해방도 헌병감옥에서 맞는다.조국의 독립을 위해 식민지 조선의 해방을 위해 몸바쳐 싸운사람이다.해방후 소련의 일방적인 지시로 움직이는 공산당에 실망하여 탈퇴하였으며,해방정국에서 현실적인 노선을 견지하여 남한단독정부의 초대 농림부장관과 국회의원을 역임한다.이시점에서 독립운동세력에게 아쉬웠던 점은 조봉암처럼 현실적인 정치세력으로 당당히 국회에 입성하여 이승만과 그 일당들을 견제하고 사회 각층에 영향력을 발휘할수 있었음에도 고지식하게 초기 과도정부수립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정치세력으로서의 자리를 잃어버렸고 이승만과 친일파들의 일방독주를 막아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진보당의 강령이라는 것을 읽어보건대,지금으로 보아도 ,현실정치에 적용하여 보아도 손색이 없을정도의 좋은 정책들이다.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복지국가론이 이미 그 당시에 강령에 나타나 있다.대통령 선거에서 2위를 차지하였고(불법부정선거상황을 감안한다면 투표에서 이기고.개표에서 졌다는 말이 있을정도)충분히 그들의 정책이 호응을 받아 실현될수 있었다면 더 좋은 나라가 되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경제문제,통일문제에서도 평화통일을 주장하던 그당시 가장 진보적인 세력이었음에도,조봉암의 사형이후 한국사회에서 진보,평화통일은 그 세력이 절멸하였다. 

흔히 박정희가 군사독재는 하였지만,경제를 일으켜 우리나라를 발전시켰다고 하지만,진보당의 강령을 살펴보면 이미 이들도 경제개발계획,해외무역,등 충분히 준비되고 있었다.오히려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대미종속적,대기업편중적,남북대결적 구도를가지고 정권을 유지한 박정희정권보다 진일보한 정권이 되었지도 모를일이다.늦었지만,지금이라도 억울함을 푼 고인에 대해 명복을 빌고 현 진보세력들이 충분히 진보당의 강령들을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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