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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갱이'의 탄생 - 여순사건과 반공 국가의 형성 ㅣ 선인 현대사총서 27
김득중 지음 / 도서출판선인(선인문화사) / 2009년 5월
평점 :
언젠가 서점에 들렀다가 우연히 "자극적"인 제목으로 눈을 끈 책이다.언젠가 읽어보겠다고 목록에 올려 놓았었다.정병준의 한국전쟁을 빌리러 영통도서관에 들렀다가 우연히 바로 근처에서 발견했고 이책을 먼저 읽게 되었다.6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었음에도 불구하고,관심있는 주제였기에 지루하지 않게 역시 잘 선택했다는 생각으로 읽기를 마쳤다.
"여순사건"-(저자는 "여순반란사건"이라 부르지 않는다).그동안 피상적으로만 알고있던 사건의 전말을 소상히 알게된 계기가 되었고,이 사건은 이후 대한민국은 반공체제를 건설하기 위한 결정적인 계기로 활용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빨갱이"란
단지 공산주의 이념의 소지자를 지칭하는 낱말이 아니었다."빨갱이"란 용어는 도덕적으로 파탄 난 비인간적 존재,짐승만도 못한 존재,국민과 민족을 배신한 존재를 천하게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다. 그렇게 때문에 공산주의자는 어떤 비난을 하더라도 감수해야만 하는 존재,죽음을 당하더라도 마땅한 존재,누구라도 죽일 수 있는 존재,죽음을 당하지만 항변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
"여순사건"이후 공산주의자들은 이념을 달리하는 정치체제자가 아니라 위와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그 바탕위에서 법에도 없는 권한을 가지고 수많은 양민을 학살하게 된것이다.
"여순사건"은 제주항쟁진압을 거부한 14연대 일부하사관들에게 의해 주도되었으나,그당시 친일파들이 득세하고 있던 경찰에 대한 증오와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추진한 이승만세력에 대한 반발심등이 합쳐서 급속도로 퍼지게 된것이다.
그당시 남한정권은 한마디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정권이었다.해방후 민족의 열망인 친일파청산과 토지개혁등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노력이 전혀 이행되지 않았다.미국을 등에 업은 이승만 정권은 친일파들을 경찰,군대,관료로 재등용함으로써 "사회정의"는 없었다.누구라고 분노하지 않았을까.엊그제까지 독립운동하던 사람들을 때려잡던 경찰,만주국군인들이 해방된 나라에서 공산당을 때려잡는다는 명목하에 또다시 그사람들을 잡아 죽이는 일들이 당연시하게 벌어지고 있었으니 말이다."여순사건"진압과정에서도 만주국에서 독립군토벌하던 "간도특설대"출신인 김백일,백선엽등이 만주에서 하던 방법 그대로 적용하여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할 군인들이 국민을 "적"으로만 여기고 학살을 감행한것은 만주에서 독립군 토벌하던 방법을 그대로 쓴것이다.진압이후에 국가보안법제정,상호감시체제등은 일제시대 일본놈들이 쓰던 방법을 그대로 옮겨온것이고,친일파들이 득세하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더구나 안타까운것은 일제하 민족해방을 위해 일제와 끊임없이 투쟁했던 좌익계열의 사회운동가들이 제대로 그 이상을 실현해보지도 못하고 대부분 학살된 것이다.여순사건또는 한국전쟁시기에.
이 불행의 단초는 첫째,미국에 있다.미국은 한반도가 공산화 되는것이 가장 큰 두려움이 있었기에 영어 몇마디 한다는 이유로 독립운동사에서 볼때 가장 공헌도가 낮은 이승만이 정권잡는것을 적극 도와주었고 친일파들은 그대로 살아 남을수 있었다.해방후 전국각지에 자주적으로 설치된 건국준비위원회나 인민위원회가 제대로 임무를 실행할 수 있었다면 그당시 일제하 민족해방을 위해 몸바쳤던 인사들이 대거 등용되었을 것이고, 보다 자주적,민족적,인민적인 정책들이 실행되었을 것이다."여순사건"이후 군대내에서 숙군작업이 진행돼 군은 친일파,반공세력의 구심점이 되었고,한국전쟁을 거치며 그 정도는 훨씬 심해진채 군사독재시절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최근,천안함사태나 현정부의 하는 짓거리들을 보면 그 뿌리는 여전히 단단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국가에 의한 폭력으로 하루아침에 아버지,아들,또는 전재산을 잃고 아무런 항변도 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생각한다면,그리고 분단된 한국에서 언제든지 "국가주의"의 망령이 되살아나 60여년전의모습이 되살아 날수 있음을 생각한다면 어쩌면 실패한 봉기 "여순사건"은 지금 우리가 꼼꼼히 그교훈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는 역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