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와 동해의 주인을 찾아라! : 일본 역사왜곡 2편 반크 역사 바로 찾기 4
키네마인 기획, 이광수 글 / 키네마인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반크 역사 바로 찾기 3권및 4권은 일본 역사왜곡을 다룬 <요코 이야기의
진실을 찾아라!>와 <독도와 동해의 주인을 찾아라!>로 구성되어 있다.
KTF 반크 역사 채널 다큐멘터리 11편 구성했던 이광수저자의 글인 만큼
관심 또한 컸고 그런 만큼 기대도 된것이 사실이다. 일단은 이 책이 만화책
으로 출간이 된점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참으로 우리가 늦었지만 우리의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역사의식을 바로 세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다. 물론 일본은 조상에 대한 왜곡된 의식일망정 그네들의 국민
학교에서 부터 독도를 다케시마로 표시하고 정신왜곡을 통해서 교육을 시키
는 걸 보면서 아주 교활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우리 또한 성인들에게만
이러한 의식을 일깨우는 것만큼이나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올바란 역사의
진실을 알게 해주는게 우리가 독도에 가서 태극기를 휘날리면 일본에 대고
사과를 바라는 것 보다 더 중요한지 도 모른다.
  일본 역사왜곡 시리즈 2권을 보면서 그동안 대한민국의 국민이라고 자랑
스럽게 생각했던 본인에게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어쩌면 반크 역사 바로
찾기를 통해 수많은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고 우리의 역사에
대해서 바르게 인지하고 있을 이 시점에 이제야 정확이 일본이 무슨 이유로
역사를 왜곡하고 과거에는 어떠하엿는 지에 대해서 깨달았으니 말이다.
어쩌면 필자만 그런게 아니라 우리 국민중 많은 이들이 과거의 일본과 한국의
관계를 정확히 모르고 있으며 왜 우리가 독도를 우리땅이라고 주장해야 하는지
의 당위성에 대해서도 대략적인 것만 알고 있지 않나 싶다. 지리적으로도
울릉도에서92km 떨어진 우리나라에 비해 일본의 오키섬에서는 160km나 떨어저
잇으며, 일본은 1600년대부터 물개나 전복을 잡기위해 독도에 들렀건 것이
전부이나 우리는 512년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신라의 장군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복하면서 독도를 영토로 간주햇었다. 그리고 그러한 진실을 뒷
바침 하기위한 많은 자료들이 있는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세상은 그리 쉽게
살아가지지 만은 않는 것이다. 아무리 진실이 이렇다 해도 그것을 증명하지
못하고 이기지 못한다면 그 것은 더이상 진실로 받아들여 지지 않는 것이다.
우리 그러한 세상에 살고 잇다. 즉, 우리가 일본의 망언과 시네마현의 '다케
시마 지정의 날'제정 같은 뉴스 기사를 보고 쉽게 흥분하고 일시적인 관심만
보여서는 결코 되질 않는다는 것이다. 그네들은 거짓을 진실로 만들기 위해
100년 전부터 세계를 대상으로 엄청난 인내와 자금력으로 로비를 했었고
그리고 지금 그 결과가 조금씩 들어나고 잇는 실정이다. 이는 우리가 그동안
독도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있는 그 100년 이란 세월동안 말이다. 상활이
이쯤되니 이제야 우리는 독도를 찾고 그곳에서 태극기를 흔들리며 일본에
사과 성명을 요구하고 있으나 그들은 아무런 대꾸 조차도 없는 실정이다.
 이 책이 너무나 중요한 점은 그러한 점들을 냉철히 비판하고 독도 영유권에
대한 정당한 논리와 역사적 사실을 바로 아는것 그리고 세계를 대상으로
잘못된 자료를 수정하는 노력만이 우리가 독도를 지킬 수 있다고 말하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쉽게 붙었다 꺼저버리는 촛불같은게 아니라 지속적
이고 논리적이며 우리나라의 온 국민이 관심을 가져줄 때에만 가능하지 않나
싶다. 만화로 쓰여졌기에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으며 초등학생부터 청소년
그리고 성인에 이르기 까지 누구나 재미있게 쓰여졌다는 점이 무척이나 마음
에 든다. 이 책을 통해 tv언론 매체를 통해서 일부만 인지한 상태에서 일본에
대해 흥분하기 보다는 정확히 알고 뚜렷한 목표를 갖고 대응해야 할 것이다.
<반크 역사 바로 찾기>는 온국민의 필독서가 되어야 한다. 초중고교에서
이런 책을 읽히게 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공부가 다 뭐란 말인가? 나라가
없는 개인을 존재할 수 없는 만큼 그네들이 정확히 역사를 인지하고 애국심을
갖게 하는것이 우리 어른들의 몫이 아닐까 한다. 이 책이 교과서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아니, 교과서보다 더 중요하다. 특별교과서란 제목을 붙여서라도
우리의 모든 청소년들에게 읽게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책을 집필하고 편집
하기 위해 노력하신 모든 분들의 노고가 헛되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에게 가는 길, 청소
범일보성 지음 / Y브릭로드(웅진)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나에게 가는 길 청소>란 제목의 책을 받아들고 나니 이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뇌리를 스쳤다. 가난은 그 자체로 훌륭한 수행이라고 말씀하신 보성 스님의
생활이 보여준 실천이 이 책과 다르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경제상황이 어려운 시기가 오면 사람들은 먹고 살기 힘들다고 하면서 자신을 돌아
볼 겨를이 어디 있느냐구 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럴 때 일수록 자신을 되돌아 보고
버릴 것과 취할 것을 구별한다면 마음속의 짐과 세속의 짐을 덜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중생을 구하는 것은 스님들의 어려운 말씀이나 스님들을 신비주의로 삼아서 그들
이 보고 잇지 못하는 것을 보고있는냥 떠드는 것이 아니라 검소한 생활과 끊임없는
공부에 있다고 보여주는 보성스님의 실천하는 삶이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불교에서
인연을 중요시하듯 보성스님께도 그분이 큰 스님이 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많은
지신과 스승님들이 계신것을 보고 사람이 사람에게 배우는 것 이상으로의 참 된
진리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효봉 스님이 항상 대중과
함께 판단하고 행동하신 모습을 보고 큰 깨달음을 얻고서 보성스님역시 그 길을 가기
위해 끊임없는 정진을 하신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런 깨달음과 공부는 '효봉 스님이
세상을 떠나시던 모습'에서 효봉 스님께서 말씀하신 "공부하다 죽어야 겠다. 그러니
나랑 같이 지내자. 내가 잠이 들었는지 늘 살펴보라. 잠들었으면 흔들어 깨워라."에서
너무나 짙게 묻어있다. 우리 중생들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고자 이리도
아둥바둥 사는데 정작 그분께서는 풍요롭게 사는것이 아닌 잘 사는것이 중요하다는
걸 몸소 보여주신게 아닌가 한다. 그리고 잘 사는것은 내 손에 가진게 없을 때가
진정으로 잘사는 삶을 실천할 수 잇는 방법이다고 말씀하신는 듯하다. 우리들이
기억하고 있는 큰 스님들을 보면 거의 모든 스님들께서는 입고 있는 옷과 신발등이
전부이지 않는가..무소유를 실천하기 위해 종교인이 되었지만 그 안에서 진정
무소유를 실천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제목에서 처럼 진정한
무소유를 실천하는 길은 자신에게 가는길인 청소를 해야한다. 현실의 삶에서의 내
주위부터 해서 맘속의 모든 것들을 지워버리지 않고서는 절대 무소유를 할 수 없다는
것인데 그 범위를 깨닫는 것이 무소유의 진정한 진리가 아닐까 한다. 어떤 종교를
불문하고 가름침이 중요한게 사실이고 이러한 가르침을 설파하기위해서 많은 시간이
쓰여지고 있는 게 현실이지만 보성스님처럼 진정 자신의 몸이 보여준 실천이 곧
진정한 교육임을 보여주신 분을 그리 많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부디 그분의 생각처럼
우리 자신의 과오나 잘못 그리고 욕심으로 부터 청소를 먼저 시작하는것이 진정
우리가 바르고 잘 살 수 잇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코끼리가 떴다
김이은 지음 / 민음사 / 200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 만큼이나 색다른 표지의 코끼리들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얼마나 보이는
시각적인 부분에 삶을 의지하고 지탱하고 있는 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물론 이
특이한 표지를 보고도 이상하다고 절대로 낯설다고 느끼지 않는다면 할말이야
없지만 말이다. 책을 받아보기 전까진 <코끼리가 떴다>는 제목을 두고 한참을
궁금해 하고 나름대로의 해석을 붙여보기 위해 노력했었다. 코끼리들이 고층
건물들위를 걸어가고 있다. 동화책에서나 나올법한 이 상황을 우리가 이상하다고
믿지 못하겠다고 여긴다는 것 그게 우리가 지금껏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다.
  <코끼리가 떴다>를 통해서 김이은 이라는 작가를 만난것에 대해 왜 이제야
만났을까 하는 아쉬움이 기쁨보다 먼저 나를 마중나온다. 이 처럼 색깔이 있고
나름대로 특별한 것이 없을 정도로 특별한 부드러운 문체를 느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뿌듯하다. 9편의 단편중 <코끼리가 떴다>을 읽는 동안 허구의 세계를
여행하는 듯 하지만 결코 허구가 아닌 현실임을 받아 들이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많은 수의 꼬끼리들이 동물원을 탈출하면서 도시에 공포와 혼란을
야기시키는 내용이다. (물론 정부의 알 수 없는 어떤 목적에 의해 많은 코끼리들이
동물원에 투입되었기 때문에 수가 많은 것이다.) 이상한 것은 코끼리들이 탈출을
하고 어딘가로 향하지만 정작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데 있다. 어디
가냐고 묻는 s의 물음에 코끼리는 "응....원래 왔던 곳으로"라고 대답하는 대목
에서 막연하게 대답할 수 밖에 없는 , 그러나 탈출하지 않으면 안되는 코끼리의
삶을 느낄 수 있다. 어쩌면 코끼리는 우리의 이면에 있는 또다른 자아가 아닐까?
고대화된 물질문명의 발달로 인간의 삶은 풍요로워지고 삶의 가치또한 너무나
좋아졌다고 혹자는 말하나 힘없고 나약한 우리 서민들은 결코 감옥에 갖힌
죄인처럼 고통과 억압속에서 살지만 우리가 진정 어떻게 해야 이 고통과 억압
속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어디로 탈출해야 하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탈출을
위한 일탈은 정부의 권력에 의해 번번히 제압당하고 더 나아가 위험한 존재로
인식되면 모두의 평화를 위해 라는 미명아래 사살되기도 하지. 우리는 어쩌면
우리안에 갖힌 코끼리처럼 먹고 싸는 동물인지도 모른다. 사고를 하고 목소리를
내 보기도 하지만 그것은 울타리안에서 허용된 만큼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결코 그 이상의 것들은 기대할 수 조차 없는것은 아닐까? 김이은의 단편소설
9편의 대부분이 우리인간의 삶의 알레고리가 아닐까 한다. 가장 기본적인 인간
으로서의 삶의 은유말이다. 그러나 그의 소설이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것은
그러한 어려움과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보여준다는 것이다.
강하게 외치고 투쟁하는 것만이 진정 강한 것이 아님을 말하고잇다. 인간과
인간의 연대감,의무감 같은 기본적인 소통만으로도 그 이상의 것들을 이룰 수
있으며 살 과 살의 접촉만으로도 그 시작은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러한
일련의 노력들을 통해 코끼를 다시 우리의 삶으로 흡수시킬 수 도 있으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임으로서 내면의 얼굴의 가면을 쓸 수도 있으니
말이다. 참 쉽게 읽히는 책이다. 하지만 쉽게 읽힌 만큼 그 의미를 의해하고
그 뉘앙스의 뚜렷한 한점을 찾기란 그리 만만치 않는다. 곱씹을 수록 감칠맛
나는 소설이 아닌가 한다. 앞으로도 더 생각하는 소설을 통해 우리인간의
내면의 작은 고리들을 엮을 수 있는 소통의 끈이 되어주었으면 좋겠고 우리
나라에도 이런 멋진 작가가 많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변신
프란츠 카프카 지음, 곽복록 옮김 / 신원문화사 / 200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 날 아침, ~ 그레고르는 잠자는 자신이 어느새 거대한 벌레로 변해 침대
위에 있는 것을 깨달았다'로 시작하는 <변신>은 그 시작만큼이나 결론 또한
우리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쪽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거대한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르가 자신의 이해할 수 없는 신체에 대한 좌절을
느낄 새도 없이 출근을 해야 한다고 발버둥 치는 대목이다.
  그레고르는 왜 이상하게 변해버린 자신의 몸을 걱정하기 보다는 출근시간을
지키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컸던 것일까? 그에게는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다. 몇년전 사업이 망해서 집에 계시는 아버지, 몸이 불편한 어머니 그리고
음대를 가고싶어하는 철부지 여동생이 있다. 어쩌면 그가 벌레로 변한 자신을
위로하고 자신의 인생을 살펴볼 겨를도 없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고
상황을 몰고간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것은 가족에 대한
아주 일차원적이고 실질적인 애정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점은 가족은 그에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가족간의 맹목적인 사랑이든, 이성간의 자기중심적인
사랑이든 우리 인간은 철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사랑은 같이 하면서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다른 곳을 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현실의 무거운
짐을 버리고 싶어서 더 편한 직장을 구할 수 도 있는 그레고르가 왜 그렇게
결단을 내리지 못했겠는가?  인간은 자신만의 허용과 한계의 수치가 가지고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러한 수치는 정확한 커트라인이 있는것도
아니고 우리가 인식할 수도 없지만 말이다.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한다음 가족
들의 태도는 -어쩌면 우린 이렇게 쉽게 말하는지도 모른다. 그레고르가 하반신
마비가 되었든, 식물인간이 되었든 최소한의 인간의 모습만이라도 간직하고
있었더라면 그런 극단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지만 - 실로 충격적
이였다. 아들의 이상한 변신에 충격을 받지만 한달이 흐른뒤에도 직접 보기를
거부한 어머니, 그에게 일격을 가한 아버지의 행동이 너무나 이질적이였으며
-상황자체가 이질적이였기에 그랬을 지도 모르나 - 여동생만이 그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듯하였다. 하지만 상황이 계속 전개되면서 여동생의 행동이 그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노력하는 모습이라고 느꼈던 것은 그레고르의 바램이
그렇게 보였을 뿐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시대 상황으로 보아 여동생의
나이면 학교가 아니라 일을 할 수 도 있었을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경제적상황으로는 이룰 수 없는 막연한 꿈을 꾸고 있으며 그의 아버지 또한
경제적 활동을 할 수 있는 나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에만 있다는 점에서
일차적인 이기주의적인 행동양식을 보인게 아닌가한다. 그러다 자식이 벌레가
되니 일을 하게 되고, 이제는 자기와 아내 그리고 딸이 일을 갖게 되니 아들이
꼭 벌레에서 인간으로 되돌아 오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그러한 희망이
그레고르를 외면하게 하는데..
  이처럼 우리 인간은 상황이 좋을 때는 느끼지 못할 자신의 잔임함을 극한
상황에서는 그것을 합리화 하고자 하는것 같다. 그레고르의 가족들은 처음에는
벌레를 아들로 믿고 최소한의 희생을 보여주지만 각자가 '허용'할 수 있는
희생의 수치에 도달하고 결국 '한계'의 종을 울리자 마자 그를 버리고자 하지
않는가? 혈연으로 맺어진 맹목적인 사랑을 하는 가족간에도 우리는 '허용의
수치'와 '한계의 수치'를 가지고 있고 결국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가족이라는
틀을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은 체험으로서만 알 수 있는 것이기에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며 가족을 잔인하다고 매도할 수 도 있으나 그것은 아무도
알 수 없다. 누구나 그렇게 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레고르가 죽은 뒤에
어떤 감옥에서 해방된 듯 야유회를 떠나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때문에 사는가?'라는 가장 기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음에 가슴이
아프다. 수십년이 흐른뒤에도 카프카의 <변신>이 우리에게 읽혀 지는것은
세상이 고도화 문명으로 발전하고 인간의 수명이 길어졌고 더욱더 이성적으로
변했다고는 하나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항상 그자리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다시한번 <변신>을 만날 수 있게 해준것에 대해 감사한다. 우리 항상
이문제를 외면한 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마추어 메리지
앤 타일러 지음, 민승남 옮김 / 시공사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진주만 기습 사건이 터지고 루스벨트 대통령이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미국
전역에 2차 대전의 광풍이 휘몰아치던 1941년 12월, 마이클이 일하고 있는 앤턴
식품점에 폴린이라는 아가씨가 다친 몸으로 친구들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오는데..
12월 초순의 햇살이 내리듯 사랑이라는 이름의 느낌이 그네들의 눈을 멀게 한다.
<아마추어 메리지>는 이렇듯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닷없는 예외성에서 시작되고
누구나 겪는 그런류의 가정생활을 하게 된다.
  사랑이 그들의 눈을 멀게 하는걸 비가 내리듯 막을 수 없었다면 그들의 가정
생활에서 오는 틈의 벌어짐 또한 그들이 막기엔 너무나 벅찬 것이였을까? 나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신도 어쩔 수 없는 결혼생활에서 오는 남녀간의
문제임을 알기에 마이클이나 폴린중 어느 누구를 탓하거나 미워할 수 가 없었다.
사랑은 함께 하는 것이다. 결혼은 육체가 함께 하는 것이고 정신또한 같은 곳을
본다고 생각하나 다른 방법으로 다른 곳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삶을 살고 있는 현실이 아닐까 생각된다. 너무나 이성적이다 못해 차갑가까지한
마이클 (린디가 가출을 하는 상활에서도 남의 이목을 신경쓰는 탓으로 바로
경찰에 연락을 하지 못한다거나, 자식이 몇이냐고 묻는 이들에게 가출한 린디는
제외한채 2명이라고 말하는 대목) 과 보고싶은 것만 보고 약간은 비현실적인
곳에서 살고 있는 폴린의 행동양식을 탓할 수 없는 것은 그네들이 어떤 뚜렷한
의지를 가지고 범죄를 저지른것도 상대방을 미워한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고자 했으며 이는 우리 인간의 가장 큰 단점이자 고도의
문명이 발전한다고 해서 같이 발전할 수 있는 류의 성질의 것도 아니다. 린디가
가출을 했을 때 폴린은 얼마나 많이 절망햇던가! 과연 그 여자를 보고 누가 욕을
할 수 있었단 말인가. 이처럼 이 <아마추어 메리지>는 너무나 일상적이지만
결코 우리가 평생을 살아도 고칠 수 없는 인간관계에서 오는 오류같은 문제점
들에 대해 우리에게 제3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앤 타일러 역시
앞으로 어떻게 해야한다거나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누구이며 누가 잘못햇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 조금씩 고치고 노력해서 고쳐나가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평균수명이 100도 안되는 우리 인간의
생명으로는 우리는 평생 앤 테일러의 말처럼 아마추어로 밖에 살 수 없는 지도
모른다. 마이클이 다른 부부들은 적응을 하며 살고 있는 데 우리 부부만 아마추
어에서 벚어나지 못한다고 했는데 생각을 바꾸었다고 해서 그런 문제점들이
고쳐졌을까? 알고 있지만 알고 있다고 해서 다 되는것은 아닌게 우리의 인생이
아닐까?
  너무나 평범한 소재를 가지고 다루어진 <아마추어 메리지>. 너무나 평범하기에
너무나 쉽게 생각하고 그런 문제쯤은 어쩔 수 없는 우리의 평생의 동행인이라고
치부해 버린다면 우리 인간의 문제점들은 결코 고처질 수 없을 것이다. 인생의
답이 없듯이 이 문제또한 답은 나와 있지 않다. 다만 좀 더 상대를 알려고 노력
하는것, 그것만이 우리 인간이 풀어야 할 과제가아닌가 한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앤 타일러에게 정말 고맙다는 말을 하고싶다. 물론 미혼이라 이 책이
더 도움이 되고 기혼이라 덜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이 책을 통해
답을 얻을 수 는 없을 지라도 문제점들을 항상 기억하고 고쳐야 겟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 말이다. 정말 소중한 책이될것 이다.
자신에게 재미있고 중요한 책들은 많겠지만 이책은 결혼을 해서도 계속해서 봐야
할 책이며 자식이 생기면 그들에게도 보여주어야 할 책이다. 이렇게 소중한
책을 쓴 저자에 대해 다시한번 감사드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