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비치 - 꿈꾸던 삶이 이루어지는 곳
앤디 앤드루스 지음, 강주헌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오렌지 비치라고 불리우는 해변마을에 어느날 인가부터 존스라고 자신을 소개한 할아버지가
등장함으로서 소설이 시작된다. 항상 같은 복장인 청바지에 흰 셔츠와 가죽 샌들을 신고 수십년은
되었을 법한 가죽 가방을 들고 다니는 존스가 사람들에게 자신을 친구라고 소개하면서 오렌지
비치에 사는 마을 사람들에게 접근한다.
 인간은 누구나 사회적동물이기에 많은 문제점들을 가지고 살고 있으며 그런 문제점들을 해결하지
못함으로서 서로 불행해지거나 극단적인 방법으로 삶을 마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문제점들
역시 우리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 놓은 올가미가 아닐까? 신이 인간을 만들때 모든 능력을 주는
대신 어떤 문제점들이 생겼을 때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준것은 아닐까? 오렌지 비치에 한
청년이 있었다. 어머니는 암으로 세상을 떠나시고 얼마 후 아버지 또한 그를 남겨둔 채 삶을 버렸
으므로 소년은 세상에 대한 원망과 삶의 부질없음에 낙담한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존스라는 한
노인이 자신을 친구라고 소개하고는 대화를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
야 할 부분은 존스의 접근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접근함에 있으서 아무런 대가나 이익을 따지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아닌 상대방을 위함이었다고 한다면 그 자체로도 우리에게 이런류의 접근은 얼마나
낮설단 말인가? 우리의 삶은 자신의 손익을 따지는 방법으로 삶을 전개하고 있으며 인생의 긴 여정에
중심은 항상 자신만이 있을 뿐 순수한 의미에서의 사랑도 , 사람도 없는것은 아닐까? 사람을 사랑함에
있어서도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이고,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도 어떻게 보면 자신의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아닐까? 그러나 존스라는 노인은 순수하게 상대방의 행복을 위해서 접근을 하고
그네들에게 삶이 이렇게 힘든것은 얼마든지 벗어던저 버릴 수 있으며 그 답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말한다. 자신의 관점을 조금만 바꾼다면 지금의 올가미에서 당장이라도 해방될 수 있으며 또한 행복한
삶이 그리 멀지않은 곳에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일련의 행동들은 개개인과의 만남으로 깨우치게
했지만 그가 진정바라는 것은 우리가 받은 그런 감동을 우리의 좋은 경험에 머무르지 않고 세상의
많은 이들에게 나누어 질 수 있도록 하는게 존스의 바람은 아니었을까? 더불어 우리가 지금 불행하다고
생각하는것은 우리 스스로가 너무 많은 욕심을 부렸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을 우리는 '무료하다' '의미가 없다'라고 표현하지만 불행한 일이 생겼을 때야 비로서 그때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문명이 너무나 빠른 속도로 발전을 거듭하다 보니
우리 인간의 정신적인 속도감 역시 빠른것에만 의미를 둔것은 아닐가? 빠른 차를 타면 많은것들을
볼 수 있으나 자세하게 하나 하나를 관찰하지는 못한다. 한 부부의 얘기또한 마찬가지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동시에 사랑에 빠진다. 그들을 서로를 사랑한다. 하지만 그러는 순간에도 서로는 다른
방법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있으며 다른 곳을 보고있다. 그것또한 자신의 방식으로 상대방을 바라보고
이해할려고 하기 때문에 그 사랑이 얼마나 지속될 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우리가 이제는 잠시 발전이라는 진보적인 생각을 잠시 접어두고 정신적인 궁핍함을 채워야 하지 않을까?
그동안 서로에게 몰랐던 부분을 들어보고 이해하고 받아들일려는 일련의 작은 노력들 말이다.존스라는
노인은 인간의 또다른 이면에 있는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우리가 너무 가볍게 여기고 빨리 빨리만
외치다 보니 잠시 소홀한 것은 아닐까? 이제는 잠시 쉬어서 우리자신과 주변의 이들을 조금은 더
알아야만 할때인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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